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아무리 투정을 부려봐야 그 마음을 증명할 길이 없듯이 북한이 진짜로 핵을 포기할 생각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이 비핵화 하겠다고 했을 때 이를 잡아채서 비핵화의 길로 가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북한 비핵화 의지만 따지고 있어봐야 실질적으로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논쟁의 공허함을 꼬집었다.
◇북한 '비핵화 의지' 없어서 하노이 노딜? 미국 책임도 커
특히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하지만 '하노이 노딜'이 과연 북한의 진정성 결여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북한의 진심을 누구도 알기 어렵다는 근본적 한계는 차치하고라도 노딜의 책임을 전적으로 북한에 떠넘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물론 북한은 세계 패권국가와의 협상이라는 특수성을 충분히 감안하지 못하고 상황을 오판했다.
영변은 '같은 말(馬)을 두 번 사지 않는다'는 미국 입장에선 이미 값어치가 떨어진 것이고, 그보다는 장거리미사일(ICBM) 등이 당면한 위협이고 훨씬 큰 관심사였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선 '뉴스 가치'가 낮은 영변보다 ICBM 등 '과거 핵'에 대한 협상 전리품이 필요했다.
실제로 미국은 9월 평양 공동선언 이후 영변 뿐 아니라 '비욘드 영변'(영변 외 핵시설 4~5곳)과 '원 모어'(one more·과거 핵)를 언급하며 신호를 보냈지만 북한은 결과적으로 무시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북한이 너무 준비가 안 된 상태로 (회담에) 나왔다. 트럼프가 (김 위원장에게) 당신은 합의할 준비가 안 돼있다고 했는데 그냥 나온 얘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볼턴 '빅딜문서' 압박에 트럼프 정치적 셈법 작용…실패의 교훈 필요
당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핵무기는 물론 생화학 무기까지 협상 대상에 포함시키며 압박한 사실을 자랑했다. 이른바 '빅딜 문서'가 들어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볼턴의 '노란 봉투' 사건이다.
심지어 로이터 통신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유를 미국이 사실상 '리비아식 해법'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고 뉴욕타임스도 수위는 다르지만 비슷한 맥락의 분석을 내놨다.
이밖에 당시 코언 청문회로 곤경에 처한 트럼프 대통령이 예상밖 '노딜' 선언으로 국면을 전환하려 했다는 정치적 셈법도 회담의 돌발 변수였다.
정의용 장관은 이달 초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은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을 못했던 것 같고 미국은 당시 존 볼턴이 대표하는 네오콘들의 '모 아니면 도' 방식의 경직된 자세가 문제였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협상 결렬 책임을 북한에 일방적으로 씌우고 이를 통해 비핵화 의지마저 부정하는 것은 공평한 태도가 아니다.
◇55 대 45, 타결도 가능했던 아쉬운 결과…바이든 '단계적 해법' 주목
톱다운 협상에 의존해 부실하게 추진된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1년 전 싱가포르 선언의 실질적 이행을 위해 양국 정상이 직접 패를 맞춰본 것은 중요한 성과다.
일반적 고정관념과 달리 북미 간 입장차가 그리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타결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볼턴 회고록은 "만약 그랬다면 미국에 재앙적이었을 것"이라면서도 "김정은이 플러스 알파를 조금만 내놨어도 트럼프는 바로 승낙했을 것"이라고 기술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 역시 "오늘 서명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해 인사청문회 때 "100과 0의 차이가 아니었다. 50이 기준이라면 어느 한쪽은 55, 다른 한쪽은 45를 말해서 (결렬된 것이라) 아쉽다"고 밝힌 것은 이런 상황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하노이 회담은 숙명론적 체념보다 오히려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다.
비록 북한이 회담 결렬에 대한 반발로 대화 문턱을 더욱 높이고 미국은 인권 문제까지 새롭게 거론하며 맞서고 있지만 접점이 전혀 없지는 않다.
하노이 회담 실패를 복기해 북한의 영변 플러스 알파(+α) 같은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를 다시 잘 조합해 낼 필요가 있다. 실패의 경험조차 재활용이 필요한 엄중한 시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