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연휴를 앞두고 최근 페이스북 등 SNS에서는 간단한 설문조사만 작성하면 제주도 여행권을 무료로 준다는 광고가 기승하고 있다. CBS노컷뉴스가 직접 체험해 본 결과 이름과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입력하게 한 뒤 만남을 유도해 보험을 판매하는 '미끼'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대부분이 여행을 가지 못하고 있는 점을 이용해 이벤트로 만남을 유도한 뒤, 이름·연락처·주소 등 개인정보와 이미 가입된 보험의 증권 등 자산정보까지 빼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개인정보를 악용할 수 있다"며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2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한 달 동안 페이스북에는 '무료 제주여행권을 준다'는 광고가 5건 이상 발견됐다. '안전수칙 꼭 지켜주실분 여행보내드려요', '서울X제주 환상콜라보' 등 계정명을 사용하는 이들은 하나 같이 "간단한 설문조사만 완료하면 여행권을 준다"고 광고했다.
설문조사 작성 페이지에는 연령대와 이름, 휴대번호 등을 적으라고 나온다. 이때 연령대별로 100명씩 '선착순 마감'이라면서 남아 있는 경품 숫자가 92, 87, 76 등으로 적혀 있다. 얼핏 보면 실시간으로 숫자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숫자의 변동은 없었다. '마감되기 전 빨리 신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유도한 것이다.
이후에는 '평소 보험에 대해 가지고 있던 걱정은?' 이라고 물으며 '혹시 내 보험료만 비싼 게 아닐까', '노후준비 방법에 대해 알고 싶다', '기타 돈 모으는 방법을 알고 싶다' 등 항목에 선택하도록 한다. 이때도 '가입은 안 해도 되고, 상담만 잘 받으시면 된다'는 등의 안내가 나와 있다.
취재진이 직접 신청을 하자 몇 시간 후 "경품에 당첨되셨다"는 전화가 왔다. 그는 먼저 생년월일 등 개인정보를 요구하더니 "가입된 보험이 어떻게 되냐", "본인이 보험 가입에 대한 결정권이 있느냐" 등을 캐물었다. 그리고 "항공권 수령을 위해서는 일단 만나야 한다"며 "편한 장소와 요일·시간 등을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취재진이 '혹시 만나서 보험 가입을 해야만 여행권을 받을 수 있냐'고 재차 물었지만, 상담원은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상담만 받으면 된다"고 답했다. 만날 장소와 시간 등 약속을 정하자 그는 "지금부터 통화 내용이 녹음된다"며 전화로 나눴던 내용을 정리해서 읽기 시작했다. 마치 정식 행사를 통해 경품에 가입된 것처럼 보였다.
약속 장소에 나타난 사람은 한 중견 보험대리·중개업체의 지사장 직함이 적힌 명함을 내밀었다. 그는 "보험 가입과는 별개로 상담만 받으면 제주도 여행권을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개인부담금 15만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조건을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가입된 보험 중 쓸데없는 보장이 포함돼 있거나, 꼭 필요하지만 포함되지 않은 보장들이 있다"며 '보험 리모델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때도 조회를 위해 필요하다며 주소와 주민등록번호 등을 요구했다. 또 본인인증을 해야 한다며 가입된 통신사를 통한 인증 절차도 밟았다. 휴대전화로 한 보험회사에 가입됐다는 문자메시지가 왔지만, 지사장은 "가입된 보험 확인 용도일 뿐, 실제 가입된 것은 아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그렇게 약 30분 동안 각종 보험 상품에 대한 안내를 한 그는 "가입된 보험 증권을 본인한테 전달해 주면, 2차 상담을 진행한 다음에 제주도 여행권을 주겠다"고 말했다. 역시 마찬가지로 '보험 가입 여부'와는 별개로 오직 상담만 받으면 여행권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후 보험 증권을 전달하자 그는 이메일을 통해 "금번 저희 회사와 제휴한 제주투어와의 콜라보가 아쉽게도 마감됐다"며 "이번 콜라보는 보험상담을 필요로 하는 고객 확보를 위한 좋은 취지에서 조인이 됐는데 일부 고객들의 편향적인 제주여행권 요구로 인해 일찍이 마감됐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제주도 여행권 확보만이 아닌 보험상담 니즈(요구)가 있어 제대로 된 보험상담을 받으려는 분들과 가입한 본인 보험 리모델링을 통해 추후 관리를 받게 해드리는 게 저희 이번 콜라보의 취지였다"며 "다음에 보험가입 니즈가 있으실 때 더 좋은 기회로 만나뵙길 기대하겠다"고 덧붙였다.
처음엔 '보험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경품을 주겠다'며 만남을 유도하더니, 연락처·주민등록번호·주소 등 개인정보와 증권 등 자산정보만 빼간 뒤 말이 바뀐 것이다.
◇법 사각지대 악용…"경품에 현혹돼 개인정보 주지 말아야"
문제는 이처럼 경품 등 '미끼'를 이용해 만남을 유도하고, 개인정보를 취득하거나 보험을 판매하는 등 영업하는 것을 법적으로 단속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개인정보를 본인 동의로 제공했기 때문에 문제 삼기 어려울뿐더러, 애초에 '보험판매'라는 표현을 적지 않았기 때문에 '광고'로 볼 수 없어서 관리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만남을 유도하기 위한 용도로 경품 제공이 사용된다면, 그 자체로 문제 삼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만약 보험 가입을 대가로 여행권을 제공한다면, 그 자체로 '3만원 이상의 상품'에 해당하기 때문에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즉, 실제 보험 가입으로 이어지더라도 그와 같은 경품 제공은 불법이라는 설명이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법의 사각지대를 악용, 일부러 회사명을 노출하지 않고 '경품'을 미끼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이다. 유사한 피해사례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최근 피해 사례로 접수되고 있는 사례 중 하나"라고 말했다.
반면 해당 업체 측은 자신들과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업체 관계자는 "창립 이래로 단 한번도 회사 차원에서 그와 같은 광고나 마케팅을 한 적이 없다"며 "그 사람(지사장)이 개인적으로 진행을 했거나, 타사에서 사칭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개인이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소비자시민모임 윤명 사무총장은 "처음 봤을 때 보험회사가 마케팅으로 경품 행사를 하는 것처럼 생각이 들지 않게끔 광고를 한 것 자체가 문제"라며 "처음부터 광고의 주체가 '보험회사' 또는 '보험 중개업체' 등이라고 표시했다면, 소비자들이 선택하지 않았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불법 대부업 같은 곳에서 이런 식으로 경품을 준다고 하고 개인정보를 받아내서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며 "경품 등에 현혹돼서 자신의 개인정보를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만약 보험에 가입한다면 사업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확인해야 한다"며 "상담사가 어떤 보험사에 소속돼 있는지, 보험 설계가 가능한 업체로 등록돼 있는지, 보험설계사 자격증은 있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