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1990년대에 발굴조사에서는 동성벽과 북성벽 위주로 진행하며 서성벽과 서문지에 대해서는 추정만 할 뿐 정확한 범위와 축성의 실태를 알 수 없었지만, 부여군 등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진행한 발굴조사 결과 서성벽 성문 흔적과 백제 포곡식 성(계곡을 감싸도록 성벽을 쌓은 성)의 동선을 파악했다. 배수와 출입 관련 시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군은 설명했다.
이번에 조사한 서성벽 구간은 부소산성 성벽 중에 중심토루가 가장 견고하고 반듯한 상태로 확인됐다. 성벽의 판축층 너비가 약 4.8~4.9m로 현재 남아있는 성벽의 높이가 최대 4.4m고 훼손된 점을 고려하면 더 거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성벽의 중심을 이루는 판축층의 내외벽은 모두 흙으로 보강했는데 일부는 가공한 석재를 이용해 마무리한 특이한 양상도 확인됐다.
백제 포곡식 성은 통일신라 시대에도 재차 보수작업을 거쳐 꾸준히 활용됐다. 그만큼 부소산성이 중요한 위치였음을 알 수 있다고 군은 설명했다.
통일신라 시대 성벽 보수는 성안쪽 벽면으로 와적층과 부석층을 조성해 보강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일부 구간만 석렬이나 석축이 덧대지기도 했다.
추정 서문지 지점은 부소산 남록의 추정 사비 왕궁지에서 서복사지를 거쳐 성 내로 진입하는 길목에 해당한다. 이곳은 원래 골짜기를 이루는 지점에 해당하며 조사 결과 백제 성벽 판축층 위로 암거가 형성돼 있었다.
백제와 통일신라 성벽이 연접한 지점에서는 백제 성벽 위로 통일신라 테뫼식 성벽이 만들어졌다. 테뫼식 성의 외벽은 기존의 백제 성벽을 수축해 사용했지만, 내벽은 백제 성벽 위에 기단석축을 부가해 축조했다.
성벽 시설층에서 축성과정 중 유입된 '회창7년(會昌七年)' 명문와가 출토되며 성벽의 조성 시기는 9세기 중반 이후임을 알 수 있다고 군은 설명했다.
문화재청과 부여군은 23일 오후 3시 부여군과 문화재청 유튜브 채널을 통해 현장을 공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