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15. 김석균 전 해경 청장 등 1심 판결 후 세월호 유가족 기자회견 |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문재인 대통령님. 오늘 재판 어떻게 보셨습니까. 한 달 전에 나온 세월호 특수단 수사 결과 보셨죠. 수사와 진상규명 해달라는 우리에게 대통령님 이렇게 말했잖아요. 수사 결과 지켜보겠다고. 그 결과가 미흡하면 나서겠다고 약속해서 기다리게 하지 않았습니까. 특수단 수사결과가 발표된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왜 아무 말 없으십니까. 그리고 오늘 이 재판 결과는 또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런 엉터리 수사와 재판이 공공연하게 자행되는데, 무엇으로 진상규명과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하신 겁니까?" |
오늘 법정B컷에선 1심 재판부가 주목한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몇몇 장면들을 다시 되짚어보려 합니다. '책임자의 책임자'격인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 당시 지휘부를 끝내 형사법정에서 처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러한 고위·특수공직자의 무책임과 무능, 안일함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물리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SCENE#1 "구조 책임자들, 세월호와 교신을 시도하지 않았다"
승객 447명, 승무원 29명 등 총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갑자기 기울어진 것은 아침 8시48분경이었습니다. 최초 신고자는 승무원이 아닌 고(故) 최덕하 학생. 8시 52분에 119에 전화를 걸어 사고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 신고를 전달받은 목포해양경찰서 이모 상황실장은 8시 57분에 진도 연안에서 경비임무를 수행 중이던 김경일 123 정장에게 출동을 지시했습니다.
비슷한 시각 8시 55분에 세월호 선원들도 제주항해상교통관제센터(이하 제주VTS)에 구조요청을 했습니다. "본선 위험합니다. 지금 배 넘어갑니다." 긴급한 신고였죠.
최초 신고 후 20분 안에 윗선 보고가 완료됐고 지휘체계도 마련한 셈이죠. 그런데 그 뒤부터는 아수라장이었습니다.
2021.2.15. 서울중앙지법 김석균 전 해경청장 등 1심 판결문 |
(가장 먼저 출동한) 123정은 9시 2분부터 초단파(VHF) 16번 채널로 세월호에 3차례 교신을 시도했지만 실패하자 교신 시도를 포기했습니다. 반면 진도VTS는 9시 6분부터 37분까지 VHF 67번 채널로 세월호와 교신이 되고 있었는데, 이를 각 구조본부나 현장 구조세력에게 제대로 전파하지 않았습니다. 진도VTS는 9시 25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에 "세월호 선장이 승객들의 비상탈출 여부를 해경에 문의한다"고 알렸습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이미 배가 40~50도 기울어 배가 전복될 수 밖에 없다는 사정을 알 수 있었고 목포해양경찰서에서도 세월호 선장과 교신이 되지 않는다는 보고를 계속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비상탈출은) 선장이 결정할 사항이고 우리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일축했습니다. 세월호와 교신이 되고 있던 진도VTS에 다른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하라고 지시하지도, 선장이 비상탈출 문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구조본부나 현장 구조세력에게 전파하지도 않았습니다. |
◇SCENE#2 청와대 보고는 완료, 현장 파악은 뒷전
세월호와 교신이 잘 되지 않았더라도 방법은 있었습니다. 목포해양경찰서는 최덕하 학생 신고 이후 8시 54분부터 세월호 승객과 선원 등으로부터 다수의 신고를 접수했습니다. '승객들이 선내 대기 중으로 비상탈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겁니다. 9시 4분에는 신고자 중 세월호 승무원 강모씨의 휴대전화번호를 파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연락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2021.2.15. 서울중앙지법 김석균 전 해경청장 등 1심 판결문 |
9시 33분까지 청와대, 해양수산부, 안전행정부 등 관련기관에 상황전파를 하던 상황이었음에도 정작 초계기, 헬기 등 현장출동 중인 항공 구조세력에게는 세월호의 사고 상황을 전파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중앙·광역·지역구조본부 및 123정 등 구조세력 모두 세월호와 교신을 시도하지 않거나 교신유지에 실패했습니다. 진도VTS와 세월호가 교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거나 이를 알고도 교신 내용을 알아보거나 전파하지 않았습니다. |
위로, 더 위로 사건을 보고하고 누가 책임자인지 찾는데 분주했을 뿐 사고현장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은 겁니다. 최초 신고부터 40분이 지난 9시 30분쯤 구조세력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지만 세월호 선체 상태나 내부 승객들의 상황, 비상탈출 준비 여부 등 아무것도 파악이 안된 상태에서 구조에 투입됐습니다.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헬기는 '배 우측 45도로 기울어져 있고 지금 승객들은 대부분 선상과 배 안에 있음. 해상 위에는 인원이 없고 선상 중간에 전부 다 있음'이라고 보고했습니다. 123정도 '사람이 하나도 안보이고 구명벌 투하한 것도 없고 아마 선박에 있나봅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SCENE#3 "선장의 거짓말·교신불통·과다적재…책임 묻기 어려워"
재판부는 "인명사고에 대한 역량이 부족하고 체계가 정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해경 지휘부를 구성한 피고인들에게 상급자로서의 관리 책임을 질책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책임을 이유로 구체적인 구조 업무와 관련해 형사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김 전 청장 등 지휘부의 무책임과 무능을 처벌하기엔 △이준석 선장의 거짓말이나 △교신이 어려웠던 환경 △과도하게 적재된 짐과 수밀문 개방으로 빨라진 침수 등 특수한 사정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2021.2.15. 서울중앙지법 김석균 전 해경청장 등 1심 판결문 |
진도VTS와 교신하던 세월호 선장은 '승선원들에게 라이프자켓을 입고 대기하라고 했다'거나 '선원들도 브릿지에 모여 있다'고 하면서 여러 차례 '지금 탈출하면 바로 구조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진도VTS는 물론 이러한 교신내용을 보고받은 서해지방해양경찰청도 세월호에서 어느 정도의 비상탈출 준비가 이뤄졌다고 오해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월호 선장이 승객들에게 객실 내에 대기하라는 안내방송만 계속하고 비상갑판 집결이나 해상투신 등 탈출 준비는 전혀 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을 인식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중략)… 지휘부가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구조조치를 취하지 않고 먼저 선박을 탈출하리라고 예상할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설령 교신을 통해 비상탈출 지시를 했더라도 선장과 선원들은 이를 묵살하거나 탈출방송을 했다고 계속 거짓말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조치를 취하지 못한 데 피고인들의 업무상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
유가족의 탄식 속에 선고를 마친 재판부는 "여러 측면에서 돌아봐야 하고 법적 평가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누군가는 '모든 잘못을 형사법정에서 물을 수는 없다는 원칙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할 테고, 다른 누군가는 법원이 여전히 고위 책임자 처벌에 미온적이라거나 이준석 선장 한 명에게 잘못을 떠넘긴다고 비판할 겁니다.
다만 '판사도 무죄라는데 이제 그만 해라. 언제까지 세월호냐'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시스템이 그렇듯 형사재판 역시 완전하지 않습니다. 유죄와 무죄의 심증이 50대 50이라면 무죄를 선고해야 하는 시스템이니까요. 무죄는 무결하다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의 죄 있음을 법의 언어로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이번 판결은 세월호 참사의 해결을 수사와 재판에 미뤄버린 문제를 드러낸 것으로 봐야할 겁니다. 피해자들은 책임회피와 은폐에 급급했던 박근혜 정부 만큼이나 '촛불정부'를 자처하고도 임기 말이 되도록 제대로 수습을 못한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실망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오늘 재판 결과 어떻게 보셨습니까" 오래된 질문에 이제는 답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