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통일문제연구소가 자리잡은 서울 혜화동은 골목마다 간밤에 내린 눈이 햇살에 반짝여 눈이 부셨다.
그 때 선생의 연세는 78세. 인사치레나 의례적인 덕담은 없었다. 이야기 도중 탁자도 여러 번 내려쳤다. 여든을 바라보는 반백(半白)의 할아버지지만, 그 강렬한 눈빛과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아직도 기억 속에 또렷하다.
◇"한반도 전쟁세력·독점자본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그는 "욱끈(몸과 마음의 건강)은 어떠시냐"는 인사말에 "몸은 분노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고, 정신은 팽팽한 긴장으로 가득 차있다"고 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늘 싸움터 한복판에 서있던 그에게 분노와 긴장은 필연이었다.
"새해에는 이 땅에서 '전쟁', '전쟁'하는 이야기와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깡그리 몰아내야 해. 그런데 그 전쟁은 남북 간에만 있는 게 아니야. 가난한 사람들을 죽음의 수렁으로 몰아넣는 독점자본과의 싸움도 벌어지고 있다니까. 세 번째는 말의 자유, 예술 창작의 자유, 학문·문화·교육의 자유를 지키려는 싸움도 있어. 또 하나는 자연을 죽이고자 하는 세력과의 싸움도 일어나고 있다고. 새해에는 이 싸움에서 반드시 인간적으로 승리하도록 온 시민이 정말로 피눈물의 노력을 기울이자 그런 이야기야."
선생은 젊은이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무엇보다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무엇인지를 자각하는 젊은이가 돼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요새 젊은이들은 '환호'만 있지, '감격'을 할 줄 몰라. 축구장이나 공연장에 가서 '와~'하고 환호만 할 줄 알아. 옳은 일을 위해 싸우다 핍박받아도 같이 울어줄 줄 몰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굴레 속에서 노동자들이 서로 싸우는 피눈물의 현장을 보고도 아무것도 못 느껴. 요새 젊은이들은 환호는 있어도 감동을 빼앗긴 껍데기야. 그걸 우리말로 '개죽'이라고 그래. 그러니까 젊은이들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먼저 자본주의 문명의 피해가 뭔지를 똑똑히 깨달아야 한다고!"
선생은 대한민국 언론에 대해서도 강한 분노를 표출했다. 한 마디로 '참 언론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CBS 노컷뉴스부터 언론의 자유를 위해 싸워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지금 이 땅의 언론은 이명박 정권의 대변지만 있지, 참 언론은 없어! 두 번째로 미국 오바마 정권의 대변지만 있지, 우리 민족 언론은 없어! 마지막으로 이 땅의 언론은 신자유주의 대변지만 있지, 서민의 아픔을 대변하는 언론은 없어! 언론의 자유는 언론기관의 소유물이 아니야. 언론기관 종사자들의 생활수단이 아니라니까. 그럼 뭐야? 사람, 특히 일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살티(생명)의 자유가 언론의 자유라 이 말이야! 그걸 위해서 CBS 노컷뉴스부터 싸워주길 바래."
선생은 이 땅의 노동자들이 누려야할 '생명의 자유'가 곧 언론의 자유라고 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만큼 언론인들도 목숨을 걸라고도 했다. 그는 피를 토하듯 언론인들의 자각을 촉구했다.
"이거 봐. 신문기자라는 건, 글 한 줄을 쓰더라도 목숨을 거는 거야! 방송인이라는 것은 입에서 뭔가 한마디가 나오더라도 목숨을 걸어야 돼! 그래야 그 글 한 귀, 말 한마디가 예술이 되는 거야. 예술은 타협할 수 없어. 무슨 이야긴 줄 알아? 장사꾼들의 나발은 빛깔을 막 바꿀 수 있어. 그런데 예술은 빛깔을 바꿀 수도 없고 내용을 바꿀 수도 없어. 그 한마디, 그 한 글귀에 사람의 목숨이 달렸으니까. 살티가 달렸다고 살티!"
◇"가난 타파 위해 사적소유제도 인간적으로 바로잡아야"
선생의 한살매(일생)을 매겨온 새김말(좌우명)은 '노나메기'다.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벗나래(세상)'라는 뜻이다.
"가난이라는 것은 모든 짐승 가운데 사람의 세상에만 있어. 참새도 가난이 없고, 멧돼지도 가난이 없고, 범도 가난이 없거든. 그러면 가난은 어디서 오느냐? 간단하지 뭐. 내 것은 내 것이라고 안 내놓는 거야. 그러니까 사적소유제도를 인간적으로 바로 잡아야만 가난은 없어지는 거요. 새해에는 노나메기가 이 땅의 민중 아니, 전 인류의 새김말이 되는 것이 내 바램이야. 노.나.메.기!"
선생의 말씀은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곱씹어봐도 여전히 힘이 있다. 세상은 크게 변한 것이 없기에 '울보 투사' 백기완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우리는 시대의 거목을 잃었다. 그의 한살매 앞에 한없이 부끄러울 뿐이다. 앞서서 나간 그를 산 자로서 묵묵히 따르는 것이 그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씻어내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