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 의정부를 떠나와 서울역 생활만 벌써 18년. 길거리에서 잔뼈가 굵은 60대 남성 최모씨는 코로나19 감염 우려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지난달 30일, 서울역 노숙인 지원시설 앞에서 만난 그는 "원래는 바닥에서 잤다. 겨울이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지원시설을 통해 3개월 전쯤 고시원 방을 하나 얻었다"고 말했다.
"침낭이 없는 사람들은 바깥에서 양말도 안 신고 맨바닥에서 그냥 자기도 해요. 술 먹고 취해서 잠드는 건데, 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와 몸이 망가지니까..."
코로나19 집단감염의 여파 탓일까. 주말 낮 시간대 서울역 부근은 다소 한산한 모습이었다. 점심시간을 맞은 선별진료소 근처에는 낡은 캐리어를 옆에 세워둔 노숙인들이 침낭 속에서 띄엄띄엄 잠들어 있었다. 최씨는 "어저께도 (코로나19에 확진된 노숙인) 4명이 잡혀갔다. 여기(서울역 임시선별진료소)에서 검사한 사람들이 돌아다니지 않나. 대합실 쪽으로도 가고 요 모퉁이를 내려가면 나오는 지하 대피소에서도 한 명 잡아갔다"며 서울역 쪽을 가만히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만 1년을 넘어선 코로나19 사태는 혹한기 노상(路上)을 거처 삼아 지내는 노숙인들을 무심하게 덮쳤다. 지난달 17~18일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다시서기희망지원센터(센터) 종사자 2명이 확진된 이후 센터를 이용하는 노숙인들까지 추가감염되면서 시(市)는 같은달 26일 센터 운영을 잠시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나흘간 '셧다운'됐던 센터는 이날 '음성 판정을 받은 노숙인'에 한해 조건부로 다시 문을 열었다. 식사 제공을 중단한 센터에는 다른 목적보다 코로나19 음성 확인증을 받기 위해 발걸음을 한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최씨는 "원래 여기서 전화기(휴대전화) 있는 사람만 검사를 해줬는데 다들 전화기들이 별로 없다. 이곳에서 확인서 용지를 갖고 저기서(서울역 임시선별진료소) 검사를 하고 다시 와서 확정된 걸 받아갖고 간다"며 "번거로워도 할 수 없다. 이 표(음성 확인증)를 갖고 밥을 먹으러 가야 하는데, 없으면 아웃이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지닌 스마트폰으로 결과를 '직통'으로 받는 일반 시민들과 달리 절차가 다층적이다 보니 이사흘 새 검사를 중복으로 받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
최씨와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은 노숙인 김모(66·남)씨는 "이틀 전(지난달 28일)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가) 여태 안 나왔다"며 "그런데 오늘 아침에 (센터에서) 검사를 다시 받으라 해서 용지를 또 받았다"며 검사 의뢰서를 들어보였다. 해당 용지에는 '상기 노숙인은 서울특별시립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를 이용하는 인원임을 확인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는 "중구청이고 어디고 간에, 다 노숙인들 밥 못 주게 하려 난리"라며 "확인증이 없으면 밥을 안 준다고 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휴대전화가 있는 노숙인들도 확진에 대한 공포는 매한가지다. 부산 출신으로 사업 실패 후 서울에서 노숙생활을 2년째 하고 있는 김모(63·남)씨는 많게는 하루에 2번, 구를 달리하며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다. 그는 영등포구 보건소에서 온 메시지를 보여주며 "2시간 전에 검사를 받았다. 전날도 할 일이 없어서 검사를 받았는데 음성이 떴다"고 말했다.
함께 어울리던 '친구'가 하루 전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김씨는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있는 더리센츠 호텔에 격리수용됐다고 하더라"며 "시설이 좋다고 한다. 밥 세 끼 다 주고, 뜨거운 물이 '콸콸콸' 나오고...잘된 거다"고 전했다. 잠시 호흡을 고르는 눈빛에서 문득 부러움이 스쳤다.
호텔에서 투숙 중인 동료와 며칠 전까지 같이 식사를 하는 등 '밀접접촉'을 했다는 김씨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비슷한 게 생기는 것 같다. 같이 있고, 먹고 했던 사람이 확진되니 조마조마하더라. 잠이 안 왔을 지경"이라며 "따로 밀접접촉자로 분류되거나 연락을 받진 않았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재 영등포 서울교 밑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그는 "센터는 소변 마려울 때 한번씩 이용하고 양치, 목욕 같은 걸 한번씩 하고 있다. (지금은) 먹을 걸 안 주다 보니 저도 오늘 물 한 모금 마신 게 다다"라고 밝혔다.
지난 11일 기준 94명을 기록한 센터 관련 확진자는 어느덧 100명을 넘보고 있다. 노숙인 지원단체들은 이번 집단감염이 '예고된 참사'였다며, 서울시와 방역당국의 대처가 여전히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가설 건조물이나 모듈형 등 현재 가능한 방식을 시급히 동원, 화장실 등이 갖춰진 격리공간을 제공해 안전하고도 기본적 편의를 갖춘 공간에서 후속 조치로 연계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홈리스행동 이동현 활동가는 지난달 28일 센터에 머물던 80명 중 30여명이 호텔로 임시수용된 것을 두고 "확진자가 나오는 동안 같은 기간에 용산구와 중구의 지원센터를 이용하신 분들이 300명 정도 되는데 임시시설 제공은 이번에 처음 이뤄진 것"이라며 "밀접접촉자로 분류하는 기준이 심층상담이라는 건데, 얼마나 엄밀하게 이뤄지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이용자 규모를 고려할 때) '30명'은 너무 적다"고 우려했다.
이어 "밀접접촉자로 컨테이너에 격리된 노숙인들은 밖에서 임시로 쓰고 있던 깡통에 소변을 보고, 대변 같은 경우 시설 실무자에게 전화해 이용해야 하는 구조다. 임시격리되신 분들에게 물어보니 '민폐스럽다'며 밥을 가능한 안 먹는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하더라"며 "외부자를 통해 전파된 코로나인데, 그 안에 있는 사람들만 피해를 보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시가 뒤늦게 '센터 입소자와 종사자를 전수검사하겠다'는 방침을 내놨지만, 서울역을 제외하곤 검사 접근성이 여전히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 활동가는 "지난달 말 확진자를 접촉하신 분이 검사를 못 받고 계셔서 여쭤보니 휴대전화가 없는 상태였다. 다행히 저는 며칠 전에 먼저 검사를 받고 이미 음성을 받은 상태라 휴대전화 번호를 빌려드리는 게 가능했다"며 "만약 같은 시기 검사결과를 대기하고 있었다면 이 방식도 불가하단 뜻"이라고 짚었다.
홈리스행동 안형진 활동가 역시 "용산역 같은 경우만 해도 텐트촌도 있고, 거의 40~50분 정도가 주무신다. 절반 정도는 용산역에 상주하지만, 또 절반 정도는 서울역을 왔다갔다 하는데 검사를 받은 분들이 한 분도 없더라"며 "텐트촌에 사시는 한 노숙인의 경우,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있어 지역을 옮길 경우 더 증상이 나빠지셔서 용산역을 못 벗어나신다. 서울역 외 (노숙인) 밀집지역에선 검사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 활동가는 지원 중인 60대 노숙인 A씨가 지난달 말 확진판정을 받으면서 자체적으로 자가격리에 들어가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확진 하루이틀 전 만난 A씨에게 검사를 권유했던 그는 "확진 소식을 듣고 보건소에 연락하니 아직 역학조사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라 '조치 관련해 말씀드릴 게 없다'고 하더라"며 "역학조사가 전반적으로 지연됐다곤 하는데, (그런 점을 고려해도) 다소 느린 것 같다"고 말했다.
센터 이용과 식사 제공 등 복지서비스를 빌미로 노숙인들에게 검사를 강제하는 행정이 '인권침해적' 발상이란 쓴소리도 나왔다.
아울러 "잠복기 과정에 있는 사람들을 걸러내기 쉽지 않기 때문에 신속항원검사도 답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관료주의적으로 사태 수습을 위해 기술적인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 같다. 홈리스는 '그래도 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홈리스행동에 따르면, 최근 용산역에서는 벤치를 모두 치워낸 대합실에서 역무원들이 그 자리에 앉아있던 여성 노숙인을 이동시킨 뒤 곧바로 소독을 실시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안 활동가는 "피해자도 피해자지만, 그 상황을 지켜본 목격자들도 수치심을 느꼈을 거라 생각한다. 사람을 '병균' 취급하는 거잖나"라며 "당국이 노숙인들에 확진 책임을 전가하는 말들을 쓰다 보니 언론에서도 '잠적' 등 홈리스의 현실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 워딩들이 단정적으로 나가고 있다. 시(市)가 차별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시민건강연구소·건강과대안 등은 지난 2일 성명을 통해 "(서울시가 운영하는) 집단밀집 시설인 '응급잠자리'는 노숙인을 코로나19로부터 보호할 수 없다. 응급잠자리는 1m 정도의 간격으로 집단 거주시키고 취사시설과 화장실 등을 공용으로 사용해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밀집시설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검사량을 늘려도 집단감염의 확산을 막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응급잠자리라는 이름의 임시보호시설이 아니라 노숙인을 감염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주거환경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노숙인복지법'이 정한 '임시주거비 지원'을 보강하고 확대해, 공간이 분리되고 취사시설과 위생시설을 개별사용할 수 있는 주거를 보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안 활동가는 "제일 핵심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 (지원책이) 변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라며 "지금 같은 사태 속 응급잠자리 등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것이 오히려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4월 유엔(UN) 주거권특별보고관이 '홈리스 보호를 위한 코로나19 지침'에서 잠자리를 공유하는 응급쉼터는 바이러스 확산에 기여할 수 있다고 한 권고를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