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더 서글픈 광주 고려인들의 '쓸쓸한 설 명절'

광주 고려인마을 고려인들 코로나 여파에 설 행사 '취소'
대부분의 고려인들 설 연휴 '방콕'
가족 보고 싶어도 코로나에 오지 말라 '당부'
고려인 선조들 즐겨먹던 만두와 순대 등 먹으며 향수 달래

11일 광주 광산구의 고려인마을 종합지원센터를 찾은 고려인들. 김한영 기자
가족 간의 따뜻한 정을 나누는 설이지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고향 대신 먼 곳에서 설 명절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설을 보내는 고려인들이 그 어느 때보다 쓸쓸한 명절을 맞고 있다.

지난 11일 광주시 광산구의 고려인마을 종합지원센터.


러시아에서 온 고려인 3세 엄엘라(70·여)씨는 올해 설이 유난히 길게만 느껴진다. 과거에는 설 명절이면 다양한 행사가 열려 따뜻한 설을 보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올해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엄씨는 "코로나19 때문에 조심하느라 경북 경주에 사는 아들과 왕래를 못했다"며 "반년 가까이 손주들을 보지 못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어 "매일 아침 손주와 통화를 하면서 보고 싶은 마음을 참고 있다"며 "혹시나 왔다가 코로나에 감염되는 등 문제가 생길까 봐 이번 명절에는 오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엄씨는 이번 설에 아들과 손주들을 보지 못했지만, 함께 사는 딸과 함께 고려인 선조들이 즐겨 먹던 만두와 순대, 팥시루떡을 만들어 먹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고려인마을에 사는 고려인들은 그동안 설 명절 기간에 맞춰 각종 행사를 진행해 왔다. 고려인들은 풍족한 설 명절 분위기와 맞게 모든 사람이 함께 음식을 나눠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왔다.

하지만 코로나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명절 대이동'을 자제하자는 정부 권고에 따라 올해는 고려인들의 설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고려인들은 지난 추석 때부터 단체 활동을 자제하고 이른바 방콕(외출하지 않고 방에만 있는 상태)하는 명절을 보내고 있다.

광주 고려인마을의 대모 신조야씨. 김한영 기자
광주고려인마을에서 '대모'(大母)로 통하는 고려인마을 신조야(64·여) 대표는 이번 설 명절이 아쉽기만 하다.

신 대표는 "설 명절이면 노래자랑과 체육대회를 하거나 선물을 나누어 가지면서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랬다"면서 "이번에는 모든 행사가 취소돼 쓸쓸한 설을 보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2000년에 우즈베키스탄에서 건너와 20여 년을 넘게 한국에서 살아온 신 대표지만 올해처럼 유독 설 명절 분위기가 나지 않는 것은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최근 광주고려인마을은 '설맞이 사랑의 물품 나눔' 행사를 진행했다. 광주고려인마을 제공
광주 고려인마을에서는 설 연휴를 앞둔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1일까지 '설맞이 사랑의 물품 나눔'행사를 진행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기부의 손길이 줄었지만 고려인마을은 후원자들이 보내 준 쌀과 식용유 등 생필품을 어린이집, 청소년문화센터, 가정형편이 어려운 200여 가정에 전달했다.

고려인마을 이천영 공동대표는 "고려인 동포들의 안정된 정착을 위해 후원자들이 보내 준 물품을 고려인들에게 전달했다"며 "과거보다 후원 등은 눈에 띄게 줄었지만 그래도 명절을 맞이해 단체와 개인들의 손길이 이어져 매우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시 광산구 월곡동에 있는 고려인마을에는 지난 2000년대부터 고려인 후손들이 모여 현재는 6000여 명이 모여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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