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죽백동의 A아파트 지하 주차장.
최근 내린 눈이 조금씩 녹으면서 곳곳에 물이 고인 지하 주차장 입구로 배달 오토바이 한 대가 진입했다.
배달 기사는 천천히 경사진 입구를 지난 뒤, 지하주차장에 들어와서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우레탄으로 코팅된 주차장 바닥에 물기까지 더해지면서 미끄러지기 쉬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소 위험해 보이던 오토바이는 결국 발견하지 못한 물을 밟고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 했다가 가까스로 주차장 기둥을 짚고 중심을 되찾았다.
배달 기사 김모(42)씨는 "배달이 늦으면 음식점에 항의는 하면서 배달 기사들은 미끄러지기 쉬운 지하 주차장을 이용해 배달하라는 건 좀 너무한 거 같다"며 "눈이나 비가 오는 날에는 더 위험해질 수밖에 없어 배달하는 게 무서워지기도 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A아파트는 지난해 8월부터 배달 오토바이의 지상 통행을 못하도록 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지상에 배달 오토바이들이 다니면 밖에서 노는 아이들이 다칠 수 있다는 민원이 있어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다"며 "입주자 협의체를 거쳐 입주자들이 모두 동의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잇따른 아파트 갑질…언제 해결되나?
6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동조합 배달서비스지부 등에 따르면 아파트 입주민들이 배달 노동자들에게 갑질하는 아파트단지가 서울에만 최소 81곳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부는 지난달 25일부터 일주일 동안 배민라이더스, '바로고', '생각대로', '부릉' 등에서 일하는 배달라이더 조합원 400여명에게 설문한 결과를 토대로 지난 2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이들 아파트단지들은 배달 노동자들에게 입주민의 안전과 음식 냄새 등을 이유로 헬멧과 패딩을 벗도록 강요하기도 하거나, 계단이나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도록 강제했다.
배달 노동자들은 아파트 입구 상가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세운 뒤, 배달통에서 음식을 꺼내 200m 정도 떨어진 아파트 현관으로 직접 뛰어서 배달했다.
지하 주차장을 통하면 이동거리가 2배 이상 늘어나는 데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사고 위험까지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배달 노동자 박모(36)씨는 폭설이 내렸던 지난달 6일 지하 주차장을 이용했다가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일주일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박씨는 "그나마 입구에서 가까우면 다행이지만 멀리 있는 동 같은 경우는 한숨부터 나온다"고 하소연했다.
이들 아파트단지들은 입주민들의 안전만을 우선시한 채 배달 노동자들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다고 지부측은 지적했다.
지부 관계자는 "배달 노동자들이 아파트 입주민의 갑질에 피해를 입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며 "배달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이들을 무시하는 갑질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