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와 형제복지원사건피해생존자모임·선감학원대책위원회 등 20여 개 단체들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화해위가 천신만고 끝에 출범한 지 거의 2개월인데 위원회는 식물조직이 돼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민의힘이 위원으로 추천했던 정진경 변호사가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재직 시절 성추행 혐의로 정직처분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퇴한 것을 두고 "외견상 1차적 이유는 국회 본회의에서 선출한 위원 내정자 8명 중 1명이 스스로 부적격자임을 인정하고 자진사퇴함에 따라 법적 분쟁가능성을 우려한 문재인 대통령이 나머지 내정자 7인에게 아직 임명장을 수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앞서 국회는 지난달 8일 본회의에서 여당이 추천한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재승 교수 △이상희 변호사 △임승철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최광준 교수 등 4명과 정 변호사를 비롯해 야당 추천 몫인 △이옥남 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장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 △차기환 변호사 등 8명을 진실화해위 위원으로 선출하는 안(案)을 가결했다.
하지만 정 변호사가 이튿날 스스로 물러나겠단 뜻을 밝히면서, 불가피하게 선정 절차를 다시 밟게 됐다. 위원 구성이 매듭지어져야 민관조사관 채용을 비롯해 접수 사건들에 대한 조사를 개시할 수 있는 진실화해위로서는 난감한 상황이다. 위원회는 지난달 26일 기준 1347건에 달하는 신청이 접수됐다고 밝힌 바 있다.
과거사 단체들은 온전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위원을 추천한 국민의힘이 과거사를 '물 타기' 식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국민의힘은 오늘 이 시간까지 일언반구도 없고, 자진사퇴를 요구받은 (위원 내정자) 당사자들도 시종일관 변명과 궤변 등을 일삼고 있다.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5·18 민주묘지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무릎 꿇고 사과했던 일이 엊그제인데 이게 무슨 망발이자 추태인가"라고 되물었다.
또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대해서도 "위원회 위원후보들에 대한 인사검증을 소홀히 한 무거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즉흥적 인사, '나눠먹기' 식 인사, 무능력한 부적격 인사, 잿밥에 눈독을 들이는 인사 등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국민의힘이 추천한 위원 내정자들을 전원 교체하고, 여당이 추천한 위원 4명도 철저한 '재검증'을 거칠 것을 요구했다. 만약 검증과정에서 부적격 사유가 확인될 경우 여남은 내정자들도 즉각 물갈이를 해 위원회의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과거사 관련단체와 민주시민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여야정당이 구성하는 국회를 한 축으로 하고, 진실화해위와 각종 유관 협력부서 및 지자체 등 행정부를 또 다른 한 축으로 하는 삼위일체가 필요하다"며 "이념과 사상 등의 족쇄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구성원을 불행하게 만들었던 각종 비극적 사건이 왜, 어떻게 발생하게 됐는지 등 진실을 낱낱이 규명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또한 "이제 수십 년 동안 피눈물을 흘리면서 피 멍든 가슴과 마음을 서로 보듬고 풀어줄 때"라며 "더 이상 이러한 불행과 비극 등이 반복되지 않을 철저한 대책을 마련하고, 이제 서로 원한과 증오, 경계와 불신 등을 깨끗이 쓸어내고 참된 화해를 일구어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12월 10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시행에 따라 10년 만에 재출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