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희는 '펜트하우스'에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유제니 역을 맡아 강마리 역 신은경과 모녀 호흡을 맞췄다. 그야말로 베테랑과 베테랑의 만남이었다. 돈 없고, '빽' 없는 아이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짓밟는 유제니는 후반부로 갈수록 어딘가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변했다.
진지희가 김순옥 작가와 함께 한 작품은 이번이 벌써 두 번째다. 비록 소재나 수위, 묘사 부분에서 '막장'이라 비판 받을지라도 김순옥 작가의 필력은 배우들에게 일종의 '넘치는 기회'다. 캐릭터에 입체성을 입히고 기억에 남도록 해주는 작업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힘든 배로나의 식사를 챙겨주는 유제니는 겉으론 차가워도 속은 따뜻한 '빵꾸똥꾸' 정해리와 닮아 있기도 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성장한 진지희의 연기력이 자칫 잘못하면 악행으로만 남을 수 있었던 유제니를 개연성 있게 살려냈다.
다음은 코로나19로 인해 화상으로 진행된 진지희와의 인터뷰 일문일답.
▷ '펜트하우스' 유제니 캐릭터와 함께 한 시간을 돌아보자면
- 이 작품에 유제니 캐릭터로 참여하게 돼 큰 영광이다. 처음 유제니를 만났을 때 제니도 다른 헤라팰리스 아이들처럼 악행을 저지르는 아이지만, 밉지 않게 보여드리고 싶었다. 제니는 마음도 따뜻하고 정도 많고 엄마한테 사랑받은 아이이고, 단순한 면모도 있다. 물론 배로나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마냥 미워할 수 없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유제니 캐릭터를 보여드리기 위해 체중을 증량, 감량해가며 노력했다.
▷ 지금까지 작품 속에서 다양한 엄마들을 만났다. 배우 신은경과의 모녀 호흡은 어땠나
- 신은경 선배님은 굉장히 따스하게, 저를 보면 '어머 제니 잘 지냈어'하며 반갑게 맞아 주셨다. 연기할 때도 리허설에서 제가 어떻게 하는지 보시면서 더 호흡을 잘 맞출 수 있도록 제 의견을 들어주셨다. 또 어떻게 하면 더 귀여울지, 재밌을지 조언도 해주셔서 많이 배웠다. 촬영하면서 계단에서 뛰어내려가다 발을 삐끗한 적 있었는데 그 얘기 들으시고 '많이 안 다쳤냐, 병원 꼭 가보라'고 해주셔서 감동받았다.
- 이번이 김순옥 작가님과 함께하는 두 번째 작품인데, 이전에는 '언니가 살아있다'였다. 작가님 대본은 반전의 반전이 다양하게 있고, 정말 버리는 캐릭터들이 없다. 작가님께서는 항상 어떻게든 캐릭터의 매력을 최대로 끌어 올려주시는 필력이 있으시기에 저도 대본 읽을 때 마다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작가님을 정말 존경하고, 작가님의 대본을 사랑하는 부분이다.
작가님 세계관은 굉장히 화려하고, 상상하려해도 그 이상의 것들이 담겨져 있다. 시청자 분들이 보시기에 '어? 갑자기?' 하실 수 있지만, 저는 그 안에서 최대한 제니 캐릭터에 가깝고, 드라마 전개에 맞게끔 진실성과 모두가 실감나는 상황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한것 같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그렇게 해주신 것 같아 더 좋은 작품이 나온 것 같다.
▷ 시즌2에 대한 궁금증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만큼 드라마가 잘됐다는 방증이기도 한데, 주위 반응은 어땠나
- 제가 잠시 몸이 좋지 않아 약국에 간 적 있는데 다음 스토리를 물어보시는 분도 계셨고, 주위 지인들도 많이 물어봤다. 스포(일러)나 결말 얘기 못하게 이미 사인까지 했다, 절대 말 할 수 없다고 했었다. 사람들이 다음 내용에 대해 궁금해하고 간절해하는 반응이 재밌었다. 말은 할 수 없어 입은 간지러웠지만, 매회 끝날 때마다 지인들에게 연락 많이 받았다.
- 첫 대본에서 봉고차 장면을 보고는 놀랐다. (주동민) 감독님은 악랄한 게 아닌, 순수하고 아무것도 몰라서 하는 행동이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야 이 장면이 잔인하지 않게 담길 수 있다고…. 최대한 잔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분석도 많이 했고, 아이들 간 호흡도 중요해 현장에서 배우들끼리 이야기도 많이 했다. 교복은 오랜만에 입다보니 처음에는 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아 설렜다. 저는 제니처럼 학교에 사복 입고 다니지 않은 것, 절대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은 것에서 많이 다른 학창시절을 보낸 것 같다.
▷등장 인물들 안에는 각자 욕망이 있는데, 인간의 그릇된 욕망이나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지
- 사실 이런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인 것 같다.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고, 돈을 더 잘 벌고 싶고 등등. 일반인들은 절제를 하며 살지만, 이 헤라팰리스 안에서는 표출을 하니까 욕망과 올바른 삶의 방향성이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펜트하우스 식구들은 욕망을 표출하고 이뤄내는 것 자체를 올바른 방향성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제니 또한 욕심이 많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지만, 이상하게 상 받으려고 노력하고 질투도 하고…. 아쉬운 건 실력이 안돼서 1등 자리에 올라가지 못하는 건데 어떻게든 욕망을 이루려고 하는 모습이 펜트하우스 안에 있는 사람들과 공통점인 것 같다.
▷ 실제로 헤라팰리스에 입성할 기회가 있다면 실제 본인이 이루고 싶은 성공이나 욕망은 무엇일까
- 촬영장 갔을 때 세트장이 화려하고 멋져서 놀랐었다. 이런 곳에서 살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저희 배우들끼리 얘기한 적 있다. 헤라팰리스 사람들이 착하다는 전제하에서는 살아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웃음) 성공에 대한 욕망보다는 꿈이 있는데, 제가 원하는 목표가 있으면 어떻게든 이루려고 한다. 위기도 있고 흔들릴 때도 있지만, 이뤄내려는 의지는 강한 것 같다. 특히 연기에서는.
- 성인이 됐기에 사실 저도 고민이 많았다. 아역을 넘어 더 좋은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어서 저에 대한 의심과 걱정도 했었고, 흔들리기도 했었다. 그래도 꾸준히 마음을 다잡았는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관심과 사랑을 주셔서 다양한 꿈을 꾸고 나아가는데 큰 버팀목이 됐다. 더 긍정적으로 제 삶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작품에 임하면서 느낀 점도 많았다. 더 열심히 연기하고 더 많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게 공부하고, 흔들리지 않는 내가 될 것을 스스로 다짐한 시간이었다.
▷ 아역 배우에서 이제 성인이 됐다. 데뷔 18년 차인데 날마다 좋기는 어렵고, 중간에 고비가 온 적도 있었을 것 같다. 다른 길을 꿈꿀 수도 있었는데 최종적으로 어쨌든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고비의 순간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지
- 고비는 스무살에 살짝 왔었다. 다른 길을 고민하기도 했는데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희열이 안 나오더라. 보여 드리고 싶은 연기는 많은데, 그런 상황이 되지 못했다. 캐릭터 적으로 한계가 있는 거 같아서 어떻게 하면 색다른 내 안에 있는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게 왜 안되지 싶었는데, 2020년에는 '모단걸'도 하고 '펜트하우스'도 하면서 바쁜 2020년을 보냈더라. 두 작품 속에서 상반되는 캐릭터를 하다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연기 아니면 안되겠다는 걸 느껴서 스스로 깨달음이 고비를 넘기는데 도움이 된 거 같다. 주위에서 조언도 많이 해주셨다. 지금은 예전의 긍정적인 지희로, 미래와 앞을 생각하며 살고 있다.
▷ 잘 자란 아역의 대표격으로 꼽히는데, 앞으로 갖고 싶은 수식어가 있다면
- 잘 자란 아역이라고 해주실 때마다 몸 둘 바를 모르게 감사하다. 잘 자랐다는 말씀에 부합할 수 있게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 거 같다. 이렇게 나를 기대해주시는 분들을 위해 쉬지 않고 더 좋은 모습을 보여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전하는 배우, 열정 갖고 열심히, 시청자 분들과 공감하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제 연기를 보고 힐링 받거나, 악역이라 스트레스를 풀 수 있거나, 캐릭터 감정을 공유하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