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돌린 EU와의 ILO 협약 분쟁…"韓, FTA 위반 아냐"

한국의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 검증한 전문가 패널 보고서 공개돼
"한국의 ILO 협약 비준 노력, 협정문 위반한 바는 없어" 판단
"모든 노동자 노조할 권리 보장하고 자유로운 임원 선출 보장토록 법 개정해야" 권고
정부 "노조법 개정돼 이미 권고사항 만족…ILO 협약 2월 국회서 비준 추진"

연합뉴스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규정에 따라 한국의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문제를 검증한 전문가들이 '한국이 FTA 협정문을 위반한 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논란이 됐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에 대해서는 3가지 쟁점 중 2가지를 국제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이를 개선하도록 권고했다.

다만 한국 정부는 이미 지난해 12월 관련 법 조항을 개정했기 때문에 이미 권고사항을 이행했다는 입장이다.

◇'ILO 협약 준수하라' 韓-EU FTA 줄다리기 판가름할 전문가 패널 보고서 공개

지난 2019년 1월 서울에서 열린 한-EU 무역 분쟁 절차 정부간 협의
25일 고용노동부는 한국-EU FTA 전문가 패널이 양국에 제출한 보고서 내용을 요약해 공개했다.

EU는 한국이 FTA 제13장(무역과 지속가능발전)에 규정된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며 2018년 12월 FTA 상의 분쟁해결절차에 돌입했고, 2019년 7월에는 분쟁 해결 절차 수위를 한 단계 높여 '전문가 패널' 소집까지 요청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 패널 3명이 2019년 12월부터 활동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활동이 사실상 잠시 중단됐다가 지난 20일 보고서를 제출했다.

EU가 제기했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한국이 FTA가 효력을 발휘한 2011년 이후 계속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기 위해 계속적이고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는 조항도 부합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 하나는 한국의 노동법 일부 조항이 "ILO 회원국 지위와 ILO 기본권 선언에서 발생하는 의무에 따라 노동기본권 원칙을 국내법과 관행에서 존중, 증진, 실현하기로 약속한다"는 FTA 협정문 조항을 어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즉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도록 노력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고, 이를 뒷받침하도록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 한국의 노동법과 관행을 개선하라는 요구다.

◇"韓 협약 비준 노력, FTA 위반 아냐…결사의 자유 원칙 맞춰 노조법 개선해야"

이에 대해 전문가 패널은 한국의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에 대해서는 2017년 이후 3년 동안 한국이 이를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며 "한국이 협정문을 위반한 바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

위에서 EU가 제기한 사항에 대해 '구속력이 있는 의무'로 인정하면서도,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 의무'는 비준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실제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더라도 FTA 협정 위반으로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2019년 10월 '결사의 자유(제87호·제98호)'와 '강제노동 금지(제29호) 등 3개 핵심협약에 대한 비준의뢰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양대 노총의 ILO 핵심협약 비준 촉구 기자회견. 연합뉴스
다만 노조법의 경우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개선을 권고했다.

우선 전문가 패널은 노조법상 근로자의 개념 규정과 노동조합의 결격사유에 대한 규정을 자영업자, 해고자, 실직자 등 모든 근로자가 기업·초기업 단위노조에 가입할 권리를 보장하도록 보완하라고 권고했다.

간접고용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등을 노동자로 규정하지 않는 노조법상 '근로자'의 정의를 넓히고, '근로자가 아닌 자'는 노조에 가입할 수 없도록 하면서 단서조항을 통해 해고자는 기업별 노조에 가입할 수 없도록 막은 것도 개선하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노조 임원의 자격에 대해서도 노조 임원은 조합원 중에 선출돼야 한다는 요건을 노조법에서 삭제해 노조가 자유롭게 임원을 선출하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다만 또 하나의 쟁점이었던 노조설립신고제도에 대해서는 "FTA 협정문 위반으로 볼 수 없다"며 앞으로 FTA 협정에 따라 설치된 무역과 지속가능발전위원회에서 논의할 것을 권고했다.

◇정부 "노조법 개정해 전문가 권고 이미 이행…ILO 협약 2월 국회 비준 위해 노력"

고용노동부 제공
이러한 권고사항에 대해 정부는 지난해 12월 노조법 개정을 통해 이미 이행했다고 보고, 이를 EU에 적극 설명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패널 보고서는 노조법을 개정하기 전인 지난해 11월 25일을 기준으로 작성됐기 때문에 노조법 개정사항이 반영되지 않았을 뿐, 개정된 노조법이 시행되면 해고자 등의 노조 가입이 가능하고 노조의 임원 자격도 자체 규약으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부 박화진 차관은 "우리 정부의 판단이지만, EU가 그동안에 문제 제기했던 부분은 대부분 해소됐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전문가 패널이 지적했던 근로자 개념에 대해 "우리 노조법상 매우 폭넓게 규정돼 특고의 노조 설립과 가입을 인정하는데 문제가 없다"며 "배달기사, 보험설계사 등 다양한 특고 노조가 설립되어 활동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개정 노조법에서도 기업별 노조의 임원은 회사에 종사하는 조합원으로 제한한 것에 대해서는 "결사의 자유 원칙을 준수하면서도 국내적 특수성을 함께 고려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이어 "2월 국회에서 외교부와 협력해 3개 비준동의안이 국내 외통위를 통과해 본회의에 의결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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