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구 사건 또 '부실'→'진상조사'…警 수사권조정 최대 위기

이용구 법무부 차관 택시기사 폭행 사건 재점화
블랙박스 영상 놓친 경찰 지휘부…수사관은 '덮기' 논란까지
정인이 사건 등 수사권 조정 이후 최대 위기…근본적 쇄신책 마련돼야

이용구 법무부차관. 윤창원 기자
'정인이 사건' 부실수사 논란으로 연초부터 고개를 숙였던 경찰이 이용구 법무부 차관 택시기사 폭행 사건 재점화로 또 치명타를 입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조직 신뢰도 자체에 '비상등'이 켜진 양상이다. 거듭 진상조사 카드를 꺼내들며 위기를 수습하려 하지만, 보다 근본적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블랙박스 영상 '못 본 거로 할게요'…치명타 입은 경찰


국가수사본부장 직무대리인 최승렬 수사국장은 25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본청에서 열린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블랙박스 영상 확인에 대해 일부 사실이 아닌 것이 확인돼서 다시 한번 그 당시 수사국장으로서, 국수본부장 직무대리로서 국민께 송구한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경찰 유감 표명의 배경은 이 차관 사건의 핵심 증거인 '블랙박스 영상'이 발단이 됐다. 지난해 11월 6일 이 차관이 택시기사를 폭행했을 당시 차량 블랙박스 영상 확보는 수사의 중요한 단서였다.

연합뉴스
하지만 경찰은 영상을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경찰청 고위 관계자들이 나선 브리핑에서도 "이번 사건은 피해자 진술 밖에는 사실 관계 확인할 직접 증거가 없었다"고 명확히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경찰청의 판단은 틀린 것이 됐다. 사건을 담당한 서초경찰서 수사관이 블랙박스 영상을 본 것으로 일부 확인됐기 때문이다.

해당 수사관이 영상을 확인한 것은 지난해 11월 11일로 전해졌다. 피해 택시기사는 4일 전인 7일, 한 블랙박스 업체를 찾아가 영상을 복원한 뒤 이를 자신의 휴대전화로 촬영했고, 11일 수사관에게 이 영상을 보여줬다고 한다. 하지만 수사관은 "차가 멈춰있네요", "영상 못 본 걸로 할게요"라고 말했다고 택시기사는 주장했다.

경찰이 차가 멈춰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영상을 '모르쇠' 한 배경에는 이미 폭행 혐의를 기정사실화 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운전자 폭행을 가중처벌하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은 운전 중인 자동차에 적용된다. 게다가 11일은 이 차관과 택시기사가 합의한 이후다. 폭행은 피해자 처벌 의사가 없으면 처벌 불가능한 '반의사불벌죄'다.

경찰 관계자는 "폭행이라고 판단했고, 피해자가 처벌 불원해 수사 필요성이 없어 최종적으로 내사 종결을 진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2015년 특가법은 '여객의 승하차를 위해 일시 정차한 경우'도 포함되도록 개정됐다. 차가 멈춰 있어도 상황을 따져 특가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가법은 또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당시 영상을 제대로만 조사했다면 이 차관에게 특가법을 적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부실 수사', '봐주기 의혹'이 재점화 되는 대목이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 이한형 기자
게다가 이 차관 부실수사 논란이 터졌던 지난해 12월, 경찰은 내부적인 조사나 감찰에 집중하기보다 비슷한 사건에서 특가법이 적용되지 않는 '판례' 찾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폭행죄 판단이나 내부 사건 처리 지침을 따져봐도 문제가 없다고도 강조했다. 사건 책임자였던 서초서장의 경우 최근 경찰 인사에서 서울청 수사과장으로 영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치명적 실수가 드러나면서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됐다. 수사관 뿐만 아니라 서초서 형사과장, 경찰서장, 서울경찰청, 경찰청 등 지휘 라인이 블랙박스 영상 존재를 정말 몰랐느냐는 의구심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최 수사국장은 "(담당 수사관이) 허위보고나 미보고 등 보고를 안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진상조사단에서 자세히 파악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수사권 조정 이후 최대 위기…'부실논란'→'진상조사' 도돌이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올해부터 '1차 수사종결권'을 획득하면서 '책임수사' 원년을 강조하던 경찰이 위기에 빠진 것은 분명한 모양새다. 이미 '정인이 사건'으로 부실 수사 홍역을 치르기도 했고, 김창룡 경찰청장은 사태 수습을 위해 대국민 사과에 나서기도 했다.

경찰은 정인이 사건 파장이 거세지자 '태스크포스'를 꾸려 내부 감찰 및 징계에 착수한 바 있다. 이번 이 차관 사건 역시 뒤늦게 진상조사단을 만들어 조사에 나섰다. 문제를 조기에 파악해 조치하기보다 '사후약방문' 방식의 대응을 되풀이하는 셈이다.

특히 이 차관 사건의 경우 검찰이 수사를 통해 '키'를 쥐고 있는 상황이어서 경찰은 난감한 입장이다. 검찰은 택시 기사의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해 블랙박스 영상을 복원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담당 경찰 소환이나 압수수색 등도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황진환 기자
'수사 업무'이기에 이번 사안을 최종 점검해야 하는 국수본부장은 현재 선발 과정 중으로, 수사 국장이 직무대리를 하고 있다는 점도 대응의 한계로 꼽힌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이번 사안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밖에 법무부 법무실장 출신인 이 차관과 경찰 윗선의 관계 등이 수사를 통해 드러난다면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전망이다. 일단 이 차관은 "경찰 고위층과 연락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고, 경찰 역시 "담당 직원 모두 이 차관이 변호사 신분인 것만 알았다"라고 밝히는 상태다.

경찰은 진상조사단을 통해 사안을 철저히 조사하겠다면서도 '이 차관 사건', '정인이 사건' 등이 수사권 조정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최 수사국장은 "미흡한 조치로 국민을 불안하게 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잘못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형사사법체계가 바뀐 큰 배경을 이어나가는 데 걸림돌이 안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논란이 계속 불거지게 된 원인부터 되짚고 좀 더 근본적인 쇄신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건국대 한상희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 조직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철저한 정비와 쇄신이 동반됐어야 했다"며 "앞으로 이러한 문제가 계속 불거질 가능성이 높은데 시민사회, 전문가 등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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