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서울시 전직 비서 A씨를 지원해온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 공동행동'(공동행동)은 25일 오전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6개월 전 시청 앞에서 이곳까지 (인권위의) 직권조사를 촉구하는 연대행진을 했던 바 있다. 제대로 된 인권위 결과 발표를 촉구하며, 이 촉구가 환영으로 바뀔 수 있는 오늘이길 바란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이날 오후 2시 위원회 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전원위를 열고 박 전 시장 관련 직권조사 건을 유일한 안건으로 상정해 의결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앞서 피해자 측은 지난해 7월 인권위에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포함해 박 전 시장 피고소사실의 유출 경위, 서울시 관계자들의 방조 의혹 등을 전방위적으로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인권위는 같은 해 8월 차별시정국 강문민서 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직권조사단을 출범시켜 관련 내용을 조사해 왔다.
공동행동은 박 전 시장 관련 검·경 수사가 별다른 성과 없이 마무리된 점을 들어 인권위 조사결과가 진실을 규명할 마지막 기회란 점을 강조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송란희 사무처장은 "피고소인 사망으로 인해 피해자의 권리를 사법적으로 구제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말 (박 전 시장의) 성추행 관련은 '공소권 없음', (서울시의) 방조 혐의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송치한 경찰 수사결과도 이를 보여준다"며 "인권위의 발표는 사실상 마지막 공적 판단"이라고 밝혔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부소장 또한 "성폭력사건이 발생하면, 신고·고소·제보·진정 이후 전문적이고 절차에 따른 조사를 통해 사건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또 조사결과에 입각해 징계·처벌·권고 등의 결정이 내려지면, 같은 사건이 재발되지 않게 제반사항을 점검, 개선해야 한다"며 "이 사건은 피고소인이 바로 사망함으로써 고소 이후부터 바로 보장되었어야 할 피해자로서의 보호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전 시장의 지지자들은 '죽음으로 모두 끝냈는데, 왜 조사를 더해야 하냐'며 공소권 없음을 합창인 듯 외치고 있다. 이 단계들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은 피해자 개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라며 "인권위는 박 전 시장이 스스로 책임과 응답의 자리를 회피해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매일 산더미처럼 겪는 상황에서 이 과정을 복원하고 제대로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씨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안경옥 대표가 대독한 입장문을 통해 "위원회 결정을 앞두고 간절한 마음으로 저의 심정을 전한다"며 "저의 고통에 공감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결정에 힘을 보태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A씨는 "6개월이 넘도록 (저를 향한) 신상털이와 마녀사냥은 날마다 더욱 심해졌다. 이제는 그 일들을 견뎌낼 힘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며 "잘못한 것 없는 제가,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보려 했던 제가 왜 이렇게 숨어서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저의 마지막 희망은 인권위 조사결과 발표"라고 호소했다.
이어 "박 전 시장을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 현재 저를 상처주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지금껏 누려온, 앞으로 누릴 모든 것을 위해 제 인생을 망칠 것이 분명하다 생각했고, 그 추측이 상당한 정도로 합리적이었음이 드러났다"며 "약자 보호와 인권을 강조하던 박 전 시장과 보좌진을 둘러싼 이중적·위선적 모습을 드러내는 행태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A씨는 "이제는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반성하고, 용서하는 사회로 나아가길 바란다"며 "저는 거짓으로 누군가를 아프게 할 만한 어떤 동기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다. 모두가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고 이 순간에도 고통받고 있을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우리 사회가 다신 이같은 상처를 반복하지 않도록 제도 개선에 힘써 달라"고 덧붙였다.
인권위의 권고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적' 업무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여성노동자회 배진경 대표는 "이 사건을 돌이켜 보면 그 속엔 고위직은 모두 남성, 하위직은 모두 여성으로 구성된 기이한 구조 등 성차별이 촘촘히 있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름을 달리해도 별반 다르지 않은 사건들이 이 시간에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더불어 피해자의 피해를 치유하고 성평등한 일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행동은 이날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인권위 주변에서 1인 시위도 이어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