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학대로 아이가 숨지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지만 "진지한 원인 진단과 평가 없이 당장의 여론을 달래기 위해 급히 내놓은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22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91개 시민사회인권단체는 공동성명을 통해 "우리는 정부에게 아동 최상의 이익이 무엇인지, 아동권리 보장을 위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는 아동 인권의 관점에서 '아동학대 대응 체계 방안'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양천사건(정인이 사건)의 본질적인 문제는 아동학대 예방과 피해아동 구제를 위한 아동보호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총 3번의 학대신고가 있었고 아동을 살릴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며 "몇 년 전부터 아동학대사망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시민사회가 지적했던 아동인권 문제에 대한 공공기관의 이해도와 부족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정부가 '현장인력의 전문성 강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를 위한 방법과 세부내용이 부족하다는 비판이다. 아동보호체계 담당 인력의 전문성은 아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교육·훈련을 통해 형성돼야 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조직과 인력, 예산이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단순히 전담공무원에 대한 직무교육과 보수교육 시간을 늘리고 순환보직을 금지하는 정도의 대책으로 전문성 강화를 외치는 것은 현장의 부담만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아동보호 공적 체계 및 인력 확충을 위해 '획기적인 수준'의 공적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재 아동보호관련 예산의 대부분을 법무부 소관 범죄피해자보호기금과 기획재정부 소관 복권기금으로부터 조달하는 비정상적인 예산조달 구조를 정상화하여 보건복지부의 일반회계 예산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가 강조했던 '2회 신고시 즉각분리' 제도 또한 충분한 고려 없이 나온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단순하게 신고 횟수만을 기준 삼아서는 안되며 1차 신고라도 신속히 현장에 출동해 조사를 해서 아동 보호에 필요하다면 긴급하게 분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아동의 '원가정 지원·복귀'를 원칙으로 해야 하는데, 횟수를 기준으로 아동을 분리하는 것은 '행정편의적인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준비 없이 무조건적인 분리조치가 실행된다면 아동은 갑작스럽게 낯선 생활환경으로 강제 이동당할 것이고, 대규모 양육시설에서의 생활은 아동으로부터 개별적 삶의 자유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이어 "아동보호체계의 중요한 한 축인 '입양제도'에서 공공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돼 있지 않다. 2014년 미국으로 입양된 한인아동 사망사건에서도 정부는 입양기관에 대해 '분기별'로 점검을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제대로 이행한 바 없다"며 "입양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없이 제시된 '입양절차의 공적 책임 강화' 방안은 허울 좋은 포장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출생통보제'가 이번 대책에서 빠진 점도 도마에 올랐다. 출생통보제란 '보편적 출생등록제도' 중 하나로 출산에 관여한 의료기관이 의무적으로 아이의 출생을 정부 등 공적기관에 등록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르면 태어난 아동의 출생신고는 '부모'가 하는 것을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다. 만약 부모가 이를 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아이가 존재하는지 조차 알 수 없다.
이외에도 이들은 △지역사회 기반 아동보호체계 즉각 수립 △아동학대대응 부처와 기관 간 소통을 위한 시스템 마련 △위기 임신·출산지원 체계 구축 △원가정에 대한 양육지원 서비스 지원내용 및 접근성 강화 △국가차원의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한 아동학대 대응시스템 전반 점검 등을 촉구했다.
이날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또한 최영애 위원장 명의 성명을 통해 '모든 아동이 출생 후 즉시 등록되는 것이 아동인권의 시작'이라며 출생통보제 도입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