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한미훈련을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하는 것에 과연 대한민국 대통령이 맞는지 아연실색"이라고 날을 세웠고 일부 언론의 비판도 뒤따랐다.
이들의 논리는 간단명료하다. 군사훈련 할지 말지를 어떻게 주적과 협의해서 결정하느냐로 요약된다. 언뜻 듣기에 지당한 말이고 문 대통령의 안보관은 위험천만해 보인다.
하지만 한 번 차분히 살펴보자. 우리는 이런 '적'을 상대로 이미 많은 군사 협의를 이뤘고 합의까지 맺었다.
문 대통령이 "필요하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통해서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한 것은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 1조 1항에 근거를 둔다.
어쩌면 '적'과의 군사 협의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며 오히려 필요하기조차 하다. 역사상 숱한 군축협상과 군비통제는 아군이 아닌 적군끼리 이뤄졌다.
적이 있어서 훈련을 하는 것이지 훈련을 위해 적이 필요한 건 아니다. 적이 사라진다면, 최소한 위협과 적대상태가 줄어든다면 군사훈련은 얼마든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손자병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상책으로 본다. 이를 까딱 잘못 해석하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훈련을 강화해 적이 감히 넘볼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자해적 군사 경쟁의 악순환을 자초하는 하책이자 단견이다. 유례없이 치열한 남북 군사대결은 지난 70년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 민족의 소중한 역량이 안타깝고 부질없이 허비되는 동안 정작 주변국의 잠재 위협에는 대비하지 못했다.
서슬 시퍼런 냉전 시절에도 남북이 잠시나마 화해를 시도한 것은 제 나름의 정치적 속셈도 작용했겠지만 한반도 지정학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심모원려(深謀遠慮)가 있었다.
다만 불필요한 적대감과 군사적 긴장을 불러오지 않도록 규모를 조정하고, 필요하다면 다른 쪽으로 방어태세를 강화하는 것은 충분히 '협의' 가능한 일이다.
문 대통령은 북미 간 충돌 위기가 감돌던 2017년 12월에도 평창행 KTX 내에서 외신 회견을 통해 한미훈련 '연기' 검토를 거론함으로써 국면을 바꿨다.
그때 뿌려진 씨앗이 열매를 맺은 9.19 군사합의가 시들어버린 지금 문 대통령은 다시 한 번 북한에 한반도의 미래를 묻고 있다. 한미훈련 중단 요구를 되받아 북한에 공을 넘긴 것이다.
이 와중에 거의 맹신적인 군사훈련 집착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우를 범하며 또다시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릴까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