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부터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 대책을 논의해온 사회적 합의기구는 21일 새벽 합의안을 도출했다. 합의안에는 분류작업을 택배 노동자의 기본 작업 범위에서 제외하고, 사측이 분류작업 전담 인력을 투입하며 근로 시간을 60시간으로 제한하는 등 택배 노동자의 과로 방지를 위한 내용이 담겼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1차 합의문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대책위 진경호 수석부위원장은 "택배가 도입된 지 28년 동안 공짜 노동으로 일해왔던 분류작업으로부터 택배 노동자들이 완전히 해방됐고 벗어난 날"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합의에 따라 노조는 사회적 총파업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노조에 따르면 전날부터 이틀 동안 진행한 조합원 총파업 찬반 투표 결과, 찬성 의견이 91%로 압도적이었다.
노동계는 이번 합의안이 택배기사들의 업무를 집하와 배송으로 규정하고 분류작업에 대한 책임이 택배업체에 있다는 점을 명문화했다고 짚었다. 생활물류법에는 '택배종사자 업무를 집하, 배송 등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어, 분류작업을 두고 현장에서 택배 사업주와 기사들 간의 갈등이 있었다는 게 노동계의 설명이다.
아울러 합의안에 따라 택배 사업자는 분류작업 설비 자동화 추진 계획을 수립하고, 국회·정부는 예산·세제 등을 통해 이를 지원할 방침이다.
다만 자동화가 완료되기 전까지 택배 사업자와 영업점은 분류 전담 인력을 투입하거나, 불가피하게 택배 노동자들이 분류작업을 할 경우 적정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진 부위원장은 "택배기사에게 전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지는 못해 아쉽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빠른 시간 내에 택배사들이 자동화 설비를 갖추도록 강제하기 위해, 인력을 투입했을 때의 비용보다 높아야 한다는 원칙하에 (분류작업을 하는) 기사들에게 추가 수수료를 지급한다고 돼 있다"고 설명했다.
대책위는 근로시간 단축은 건당 배송 수수료 인상 등과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 부위원장은 "현 수수료 체계에서 택배 기사들은 건당 수수료를 500원가량 받아간다. 이런 구조에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했다.
택배사들이 약속을 지키도록 어떻게 강제할지도 관심사였다. 앞서 CJ대한통운, 한진택배 등 주요 택배사들은 택배 노동자 과로사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해 10월 분류작업 인력 충원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사회적 합의기구는 이번 합의문에 담긴 내용을 표준계약서에 넣기로 했다. 국토부는 계약서 이행 여부를 택배사 등록을 인증하는 조건에 포함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계약 내용을 이행하지 않는 택배사들은 택배사업자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국토부는 매해 택배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등록 인증을 실시한다.
노동계는 오는 2월 17일 예정된 2차 사회적 합의기구에서는 택배비·택배 거래 구조 정상화, 주 5일제 등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 이조은 선임간사는 "지난해 10월 택배사들이 과로사 대책을 내놨지만 노조 있는 영업장에만 분류인력을 찔끔 투입하는 등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을 기억한다"며 "국회와 정부가 나서 택배기사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노조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