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방호복을 입고 피켓을 든 채 서울시청 앞에 선 간호사 안세영(47)씨는 "이제는 진짜 역부족"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안씨는 "코로나 병동은 간병인, 보호자가 들어가지 못한다. 간호사 혼자 환자들을 돌봐야 한다"며 "그런데 환자 대부분은 요양병원에서 오신 분들이다. 식사 보조, 화장실 보조, 기저귀 갈기, 가래 뽑기 등 이런 처치를 9명 한다는 건 (업무강도를)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라고 토로했다.
이날 오전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10명은 시청 앞에서 '1인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대부분 전·현직 간호사인 이들은 '1년을 버텼습니다. 지금 인력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듭니다', '보라매병원 임용 대기 간호사 270명, 이제는 제발 발령을 내 주십시오', '간호사 1명이 최대 몇 명의 코로나19 환자를 봐야 하는지 인력기준을 마련해 주십시오'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약 한 시간 동안 서 있었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인력 충원'이다. 이들은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분류 방법으로 간호사를 배정하니 현장은 살인적인 업무강도에 제대로 된 간호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현실적인 간호사 증원 기준을 마련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이를 위해 서울시에 면담을 하자고 요청하기도 했지만, 시는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간호사들이 시청 앞에서 피켓을 들게 된 이유다.
하지만 노조는 "마치 270명의 간호사를 현장에 투입한 것처럼 시민을 속였다. 서울시는 이 인력은 이미 투입했고, 그 외에 5명을 더 투입한 것처럼 발표했다"며 "5명은 외부에서 뽑아 보라매병원으로 파견한 인력으로 밝혀졌고 한시적으로 지원하는 인력이다. 겨우 5명을 외부 임시 파견인력으로 지원할 것이 아니라 집에서 발령을 기다리고 있는 270명에 대해 즉각 발령과 교육을 시작하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들은 "임기응변식의 병실운영으로 간호사들은 너무나 혼란스럽다. 주먹구구식의 간호인력운영을 중단해야 한다"며 "간호사들은 레고블럭이 아니다. 인력수만 계산해 간호사들을 여기저기 끼워맞추기 식으로 배치 전환한다면 결국 환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서울시는 적정 간호인력배치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시 박유미 시민건강국장은 이날 오전 코로나19 정례브리핑을 통해 "감염병 전단인력의 적정 수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추가 (인력)배치에 대해 노력하겠다"며 "현재 시에 있는 공공보건의료재단을 통해 코로나19 병상에 맞는 적정 간호인력에 대한 연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이어 "필요하다면 그들의 의견을 수용하기 위해서 면담이나 의사소통 채널도 가동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의료연대본부는 최근 SNS에서 보라매병원 간호사가 적은 '코로나 병동 근무 수기'를 공개했다. 다음은 수기 전문.
#글쓴이주
저는 2월부터 코로나 전담병동을 운영한 보라매병원에서 코로나 병동 근무하고 있는 간호사입니다. 방호복을 입고 근무한 시간이 어느덧 1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사이 3~4월 1차(대구, 해외 입국), 6~8월 2차(이태원, 사랑제일교회), 11월부터 수도권 중심의 3차유행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민들께서 덕분에챌린지를 포함한 많은 관심을 주셔서 의료진들의 수고를 기억하고 인정해주시지만 최근 요양병원 집단감염으로 인해 이전보다 더 희생해야 하는 간호사들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알리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앞서 전국의 병원내 의료진을 포함한 혹한의 겨울 건물 밖에서 고생하시는 역학조사관, 선별진료소, 이송요원 등 각자의 자리에서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20년의 마지막 날 (부제: 1인 3역 철인의 간호사)
오늘은 12월 31일, 전국·전세계가 멈춤의 시간이었던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2020년은 지나가지만 환자들의 상태는 호전이 없다. 요양병원 집단감염으로 인해 와상환자와 치매환자가 폭발적으로 밀려들어와 오늘 내가 감당해야 할 9명의 환자 중 3명은 간호사의 도움 없이는 대소변을 처리할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다. 나머지 6명은 그럼 괜찮냐고 물으신다면 "전혀요"
서울 전체 하루 확진자 수가 1000명대를 오가고 누적 중환자 수가 늘어남에 따라서 병상 부족이 심각하여 종합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환자들은 대부분 80대 이상 고령의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들이다. 원래 드시던 약만 해도 한주먹인데 폐렴까지 진행되어 투약되는 항바이러스제, 항생제, 스테로이드제, 영양제까지…한번 격리구역 입실시에 가져가야 하는 약만 해도 두 손으로 들 수가 없어서 양 팔로 품에 안고 들어간다.
기본적으로 환자에게 증상을 물어보고 활력징후를 측정한 후 약을 투약하는데 이 일만 해도 보호구를 착용한 채로 한 번 8~9명을 다 돌려면 1시간 30분이 훌쩍 넘으나 이렇게 끝나는 건 최근엔 기대하기 어렵다. 환자에게 가자마자 N95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악취, 또 설사하셨군요 할머니…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증상 중 하나인 설사로 인해 이 환자분은 기저귀 발진이 심각하다. 설사 시에 간호사에게 연락할 수 있는 의식만 있으면 좀 덜할텐데 직접 가서 기저귀를 들쳐보지 않는 한 확인할 방법도 없어서 자주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담당 간호사가 휴게시간을 미루고 식사를 걸러도 이 환자를 대면할 시간은 최소 2시간 뒤, 이 환자분만 돌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악조건 속에서도 욕창으로 진행되지 않게 하기 위해 각 듀티의 간호사들이 열심히 체위를 바꾸고 닦고 말리고 두드리고 파우더를 뿌리면서 아기마냥 돌본다. 대소변을 처치하고 나면 이제 식사타임. 이미 식사를 할 수 없어서 콧줄로 경관식을 하시는 환자도 있고 30분 가까이 옆에 서서 한 숟가락씩 도움을 드려야 하는 분도 있다. 이미 내 등에는 땀이 한가득이지만 그래도 한수저라도 더 먹어달라고 고개 젓는 환자를 어르고 달래본다.
사실 기저귀 갈고 식사 보조시에 가만히만 있으면 그나마 사정이 좀 낫다. 중증 치매나 정신질환자들은 그마저도 거부하며 이리저리 움직이고 폭력적으로 굴며 산소기계와 겨우 잡아둔 주사를 뽑아대는 등 협조가 전혀 안되어 그런 환자를 담당하는 간호사들은 하루하루 전쟁이다.
일반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에는 간호사 한 명당 약 10명의 환자를 담당하는데 그 병동에는 간병을 해주는 조무사와 간호사가 따로 있어서 기저귀교환, 식사보조를 도와준다. 그리고 완전 와상환자들은 보호자 동의하에 보호자나 간병인들을 상주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격리병동에서는 보호자를 둘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보호구를 입은 담당 간호사가 보호자, 간병인, 간호사 이 모든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병원 측에서는 이미 격리병동을 운영하기 위해 간호사 인력을 최대한 빼줬으나 서울시에서 요구한 병상을 감당하려면 간호사 수가 부족하다. 그렇다고 간호사 수 보충을 위해 일반병동의 중증질환으로 입원한 환자들을 내보내면 그것이야 말로 의료체계 붕괴의 시작이 될 것이다. 답은 이때까지 그래왔듯 간호사의 희생밖에 없는건가 하며 오늘도 허리에 파스를 붙이며 내년엔 사정이 나을거라고 사직을 운운하는 후배 간호사를 다독이는 수밖에 없다.
고령의 환자들이라 휴대폰도 사용하지 못하여 병동 스테이션에는 걱정하는 보호자들의 전화로 낮밤으로 전화벨소리가 멈추질 않는다. 걱정하는 보호자의 마음 왜 모르겠냐마는 하루 3번씩 전화와서 환자 밥은 먹었냐 상태 어떠시냐 물어보면…적극적인 응대가 어려울 때도 있다.
심지어 아무리 정성스레 설명해드려도 이번엔 해당환자의 다른 보호자가 전화와서 똑같은걸 물어본다. 그마저도 담당 간호사는 이미 격리구역에 들어가서 3시간 가까이 환자들의 늪에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는데 그 환자를 모르는 간호사가 받으면 면담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과한 요구사항(매일 영상통화 연결, 간식 보충 등)에 대해 그렇게 까지는 못해드린다고 말씀드리면 돈 받고 일하는데 그것도 못하냐 라는 폭언을 듣기도 한다. 저도 월 35만 원 안 받고 이 일 안하고 싶어요…
이렇게 관심가져 주시는 보호자가 있으면 '그나마 낫다' 이제는 이 단어가 코로나병동 간호사들에겐 유행이 될 것 같은데…악조건에서 일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나은 상황에 대해서는 다행이라는 말을 달고 산다. 요양병원에 방치되었거나 재활원이나 정신병원에서 온 보호자가 없거나 연락이 안되는 환자들은 물티슈나 기저귀를 보내줄, 억제대나 중증치료를 위해 동의서를 받을 때 유선상 논의 할 보호자도 없다.
위생관리와 치료는 어떻게든 진행되어야하니 담당간호사는 무조건 이 일을 해결해내야만 한다. 지원물품, 역학조사시 누락된 보호자 연락처, 조사되지 않은 기저질환과 투약력들을 알아내는 것도 모두 간호사의 일이다. 오늘도 환자에게 필요한 처치와 물품을 위해 연락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는 보호자에게 받을 때까지 전화연결음이 끝나길 기다린다.
#괜찮은 것 맞아요?
코로나 신환이 배정될 때 역학조사지를 수령하는 것도 신환을 대면하는 것도 간호사다. 역학조사지를 수령 후 이송된 환자를 실제로 대면하여 현 상태와 증상 및 기저질환을 파악하고 먹는 약을 조사해서 유의미한 환자 정보를 의료기록 시스템에 저장하고 필요한 처방을 주치의에게 요구한다. 사실 현재 원내 시스템상으로는 코로나환자 파악에 전반적인 비중이 간호사에게 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담당 주치의는 매일 환자를 대면하지도 않을 뿐더러 입실 시간을 최소로 하기 때문에 간호사의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담당 의사 수도 부족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역학조사서를 통해 그리고 환자 및 보호자 연락처로 유선상으로 입실 전 환자정보를 파악하지만, 환자가 도착하고 나서 먼저 조사된 정보와는 다른 경우가 많다. 거동 가능하고 약간의 생활 도움만 필요하다고 했으나 기립조차 안되는 경우, 기침 등의 경미한 증상만 있다고 했으나 병실 도착하자마자 폐렴진행으로 인한 높은 산소 요구로 인해 고유량의 산소호흡기를 적용하기도 한다.
중증환자만 있는게 아니라 경환도 있으니 환자를 많이볼 수 있다고 하는 일부 주장에 화가 나는 경우가 바로 이 때문이다. 코로나병동의 각 병동 전체 병상수가 많은 병동은 53병상인데 신환을 받는 간호사는 낮번과 초번 1명씩 뿐이다. 하루 입원이 많을 땐 10명이 넘는데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많다. 부족한 사전정보로는 중/경환을 나누기가 쉽지 않고 경환이라도 질환의 특성상 세균성 폐렴과 다르게 단기간에 기관 삽입이 필요한 정도로 빠르게 병세가 진행될 수도 있다.
그 누가 이 환자는 괜찮을거라고 장담할 수 있나?
제발 이 환자가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길 기도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