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의 외교 치적 차원을 넘어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2018년 잠시 '봄날'을 만끽했지만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동력이 싸늘히 식어가는 중이다.
북한은 최근 8차 당대회에서 핵무력 등 국방력 강화 방침을 밝혔고,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다소 불투명한 가운데 북한문제가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정권 5년차의 임기 말 상황에서 한반도 시계를 다시 앞으로 돌리려면 외교 수장의 깜짝 교체 등을 통한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금명중 중소벤처기업부 등 소폭 개각이 예상되긴 했지만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대상에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2017년 6월 취임한 강 장관은 다주택 문제나 남편의 '요트 구매 출국' 등으로 구설수에 올랐고 업무 능력에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중도하차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최초 여성·비(非)외무고시 출신 장관에다 뛰어난 영어실력 등을 바탕으로 코로나 방역 외교 등에서 장점을 발휘한 측면도 적지 않았다.
또 일관된 외교의 필요성을 감안할 때 정권 말에 굳이 외교 사령탑을 교체할 이유도 크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오(5년)경화'나 'K5'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던 이유다.
문 대통령은 지난 18일 신년회견에서 "바이든 행정부 출범으로 북미대화, 남북대화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며 기대감을 나타냈고 바이든 정부와 '코드'가 맞는다고도 했다.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강조한 '싱가포르 합의' 계승은 물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자체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가 과연 얼마나 동조할지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차라리 차제에 전면 재검토할 것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문재인 정부로선 그러나 상호 출혈의 강압적 방식이 아닌 대화·협력을 통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이외의 대안은 없다는 게 확고한 입장이다.
정 내정자는 지난해 7월 국가안보실장직에서 물러나면서도 "현재 한반도 상황이 어렵기는 하지만 그동안 남북미 3국 정상이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한 바 있다.
정 내정자는 바이든 차기 미국 대통령이나 카운터파트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후보자 등과 직접적인 인연은 특별히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양국 외교 수장 모두 직업 외교관으로서 경험이 풍부하고, 다자주의와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성격상 비교적 원활한 관계가 기대된다.
정 내정자는 장관 지명 소회를 통해서도 "(인사청문회 등) 모든 절차가 끝나고 임명이 된다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 온 외교정책이 결실을 맺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