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김정훈 기자 (CBS 심층취재팀)
◇ 김현정> 뉴스 속으로 훅 파고드는 시간, 훅!뉴스. CBS 심층취재팀 김정훈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오늘은 낳아준 엄마에게 죽임을 당한 여덟 살 여자아이 사건, 정말 충격적인데요. 이 사건을 갖고 오셨다고요?
◆ 김정훈> 네. 인천에서 일어난 일인데, 친모가 만 8세 딸을 숨지게 했고, 그 충격에 친부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그런데 의문스런 점들, 아쉬운 점들이 한둘이 아니어서 취재해 봤고요. 취재 결과를 전해드리겠습니다.
◆ 김정훈> 지난 15일 오후였습니다. 인천 문학동의 한 주택에서 44살 백모씨가 119에 신고를 한 거예요. 아이가 숨졌으니 와달라는 건데, 당시 상황을 119구급대 관계자의 말로 들어보시죠.
[녹취/119구급대 관계자]
"(신고 내용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구급차를 보내 달라, 아이가 죽었다. (그래서) 주소를 물어보니까 주소만 간단하게 대답하고 끊은 겁니다."
"(갔을 때는) 집안에 혈흔이 조금 있었고요. 엄마 상태는 구급 대원이 말을 거니까 눈은 뜨는데 말은 못 하는 상태. 호흡과 맥박은 있었지만, 의식이 좀 낮은 상태라 대답은 못 했습니다."
◇ 김현정> 119 구급대가 가보니 아이는 이미 숨져있었고, 엄마도 의식을 잃어가는 상태였다는 얘기네요?
◆ 김정훈> 네. 발견 당시 친모 백모씨는 자해를 한 상태였는데, 화장실에서는 옷가지를 불에 태운 정황도 있었습니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현재는 의식을 되찾았고요. 다만 8세 딸은 숨진 지 이미 며칠이 된 상태로 발견됐다 하네요.
◇ 김현정> 그럼 엄마는 이미 아이를 며칠 전에 이미 죽이고 나서, 본인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다가 119에 연락한거에요?
◆ 김정훈> 현재까지의 경찰 조사 결과, 친모 백씨는 지난 8일 딸을 숨지게 한 뒤 일주일이 지난 15일 바로 그 집에서 자해를 하다 119에 신고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참극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 김현정> 딸의 아버지까지 목숨을 끊었다면서요.
◆ 김정훈> 친부는 백모씨가 자해를 시도한 그날, 경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사실 친모와 친부 이 둘은 그간 동거를 했을 뿐이고, 법적 부부가 아니고요. 반년 전부터는 따로 떨어져 지냈던 것으로 알려지는데요.
◇ 김현정> 동거를 하다가 별거를 했어요?
◆ 김정훈> 네. 그렇게 지내다 갑작스런 연락에 친부가 경찰서에 와보니, 딸은 숨지고 백씨가 자해했다는 거예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그날 밤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 김정훈> 처음엔 생활고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는데, 문제는 이들의 생활상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는 점입니다. 정 어려우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을 했을 법도 한데 그렇지도 않았고요, 이곳에 주소지 등록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 김현정> 주소지 등록도 안 했어요? 주변 이웃들도 그 형편을 모르던가요?
◆ 김정훈> 이웃들의 말을 들어보려 그 모녀가 살던 곳을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그 집 현관은 폴리스라인으로 봉쇄돼 있었고요, 베란다 햇살이 비치는 쪽에는 아직도 두 사람의 옷이 나란히 걸려있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집은 조금 외진 곳에 위치해 있어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았는데, 그나마 만난 이들은 이 모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더라고요. 그 지역 복지담당 공무원에게도 모녀에 대해 물어봤는데, 이전에 살던 곳에서 주소지 이전이 안 된 터라 어떤 사연도 알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들어보시죠.
[녹취/사회복지 담당 공무원]
"특별한 게 없어요. 그 사람이 유대 관계가 있다거나…통장님들도 활동을 하지만, 각각 누가 어떻게 사는지 알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주소가 돼 있으면 주민등록 조사 같은 걸 하니까 일일이 방문해서 확인해 볼 수는 있는데."
◇ 김현정> 주소지 등록도 안 돼 있어요. 법적으로 이 마을 사람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더 기가 막힌 건 숨진 딸은 8살이 되도록 출생신고가 안 돼 있었다는 거예요?
◆ 김정훈> 8살이 될 때까지 출생신고조차 돼 있지 않았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행정적으로 법적으로 이 아이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얘기네요?
◆ 김정훈> 형식적으로 그렇습니다. 원래는 지난해 학교에 입학했어야 하는 나이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요새는 아동학대나 방임이 의심될 경우 행정관청이 적극적인 조사에 나서거든요. 만약 어머니나 딸이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였다면, 또 딸이 학교의 관리망 안에라도 있었다면 그 생활이 어떻게든 포착됐을 가능성이 높죠. 하지만 출생신고도 돼있지 않았던 터라 이들이 극단적 상황으로 몰리는 동안 누구도 그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 김현정> 한두 살도 아니고 8살이 될 때까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건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데. 그러면 어머니나 아버지가 딸이 클 때까지 방임했다는 겁니까?
◆ 김정훈> 그런데 친부는 딸을 각별히 아꼈다는 게 경찰의 설명입니다. 친모와 갈라진 후에도 택배일을 하면서 번 돈으로, 넉넉지는 않아도 꾸준히 생활비를 대줬다고도 하고요. 또 어떻게든 딸의 출생신고를 하려고 법원에 민원도 넣고 경찰서를 찾아다니며 백방으로 노력했다고 하는데요, 경찰 관계자의 말로 들어보시죠.
"심사를 받으려고 노력을 했었어요. 친부가. 법원에 그런 것도 민원실에 해보고, 경찰에도 알아보고 구청에도 알아보고 많이 그랬던 건 맞아요."
"이 사람들 생활비를 친부가 대줬어요. (아빠도 넉넉지 않을 거 같은데?) 그래도 생활비를 대줬던 걸로 알고 있어요. 넉넉지는 않게 대줬지만…"
◇ 김현정> 넉넉지 않은데 생활비 대주려고 했고 출생신고를 시도했던 흔적이 있고 그런데 왜 안 된 겁니까
◆ 김정훈> 친부가 노력해도 딸의 출생신고도 못하는 상황이 얼핏 이해되지 않죠. 그렇게 만든 큰 장애가 있는데, 친모는 앞서 다른 사람과 결혼했던 그 혼인관계를 아직 법적으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 김현정> 정리하면, 친모는 이미 결혼한 사실이 있는데 이혼하지 않은 채로 다른 이와 만나 딸을 낳았다는 것이죠? 새로 만난 남성, 또 그 사이에서 낳은 딸이 이번에 숨졌고요.
◆ 김정훈> 그렇습니다. 그 친부가 딸의 출생신고를 할 때 걸림돌이 뭐냐면,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친생자로 법률상 강한 추정을 받는다'는 우리 민법 조항입니다.
◆ 김정훈> 그러니까 결혼한 상태의 여성이 낳은 아이는 일단은 법률상의 남편 자식으로 간주된다는 얘기죠.
◇ 김현정> 그렇죠 그런데 10년 가까이 키워온 친부가 ‘아닙니다. 내 딸입니다. DNA검사 해보세요'라고 주장해도요?
◆ 김정훈> 친모와 친부가 함께 주장한다 해도, DNA 분석 결과로 친생자 관계를 증명한다 해도 어렵습니다. 일단은 다툼의 여지가 없는 친모, 그리고 그 친모의 법률상 남편과의 딸로 출생신고를 해야 하고 이후 소송을 통해 부녀 관계를 사실에 맞도록 바꿔야 한다는데, 이 설명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회 신수경 변호사의 말로 들어보시겠습니다.
[녹취/민변 아동인권위원회 신수경 변호사]
"생부, 아이의 생부는 혼인관계가 없잖아요. 그 사람은 출생신고를 원칙적으로 못해요. 엄마만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엄마는 출생신고를 하게 되면 자기의 호적상의 남편의 아이로 올라가게 된다. 다시 소송을 통해 자기가 아빠라는 것을 유전자 검사 등을 증거로 제출해서 다시 가져와야죠. 그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분명히 갈등이 발생할 거라고요."
◇ 김현정> 법적으로 결혼 상태에 있는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가 누구의 아이건 무조건 법적 남편의 아이가 된다…
◆ 김정훈> 친모 입장에서, 얼굴을 본 지도 오래된 법적 남편에게 갑자기 혼외 딸이 생겼다는 통고가 전해지는 일, 그리고 그 남편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해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럽기는 했을 겁니다.
◇ 김현정> 그런데 이혼을 왜 10년 동안 못했어요? 법적으로 정리를 못했어요?
◆ 김정훈> 그 상황을 저희도 취재해 보려고 했는데 그 부인, 10년 전에 헤어진 남편과의 얘기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어쨌든 과거의 법적 남편과 만나서는 안 될 곡절이 있다면 이 상황을 해소하기는 더욱 어려워 지는 것이죠.
◆ 김정훈> 이 때문에 출산이 이뤄지는 의료기관이 곧바로 출생 사실을 관청에 통보하도록 하는 제도 도입을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논의로 이어지진 않고 있습니다.
◇ 김현정> 결국 부모들의 복잡한 관계, 그리고 까다로운 규정으로 인해 딸은 유령이 됐어요. 법적인 인간으로 인정되지도 못했고, 관리의 사각지대 속에서 목숨까지 잃게 된 끔찍한 비극이네요.
◆ 김정훈> 친부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자신의 휴대전화 메모장에 먼저 숨진 딸을 혼자 보낼 수 없고 딸 없이 살 수 없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가능한 방법들을 더 알아보았더라면, 딸의 출생신고라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더 지켜줄 수 있지 않았을까 자책하고 후회한 것 같네요.
◇ 김현정> 사정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저는 이런 식으로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가정, 아이들이 더 있을 것 같거든요. 조금 전에 얘기했던, 아이가 출생하면 의사가 의무적으로 출생신고 하도록 하는 것이나 법적으로 정리가 안 되더라도 일단 아이는 출생신고 할 수 있도록 하는 대안이 마련돼야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