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여기에 '실화'라는 힘이 더해지면 관객들을 스크린으로 한 발짝 더 끌어들인다. 영화가 끝난 뒤 현실로 나갔을 때 한 걸음 더 들여다보게끔 한다. 그렇게 세상을 향해 새로운 시선을 던지고 다른 질문을 하게 만든다. '파힘'은 그런 영화다.
'파힘'(감독 피에르 프랑수아 마르탱-라발)은 사랑하는 가족을 다시 만나기 위해 체스 챔피언이 돼야 하는 천재 소년 파힘(아사드 아메드)이 포기하지 않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린 감동 실화다.
실제로 '파힘'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의 주인공인 파힘 모함마드가 프랑스로 망명해 월드 체스 챔피언이 되기까지의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담았다.
방글라데시 체스 신동 파힘은 체스 챔피언이 되기 위해 아빠와 프랑스로 떠난다. 언어도, 생활도 전혀 다른 파리는 낯설기만 하다. 그곳에서 만난 괴짜 체스 선생님 실뱅(제라르 드빠르디유)은 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파힘은 실뱅에게 체스를 배우기 시작하고, 체스 수업 친구들과도 친분을 다져나간다.
체스 챔피언이 되기 위해 온 파리였다. 그러나 대회 당일 체류증을 구하지 못한 아빠에게 추방 통보가 떨어지면서 체스 챔피언의 꿈도, 프랑스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자 한 꿈도 파힘에게서 멀어져 간다.
영화는 위기에 처한 소년이 재능을 바탕으로 난관을 극복하고 체스 챔피언에 오르는 과정을 그린다. 파힘이 체스 챔피언에 오르는 과정은 무난한 연출로 표현된다.
영화 속 다양한 체스 전술 역시 관객들을 체스의 세계로 유혹한다. '베를린 디펜스'(스페인 오프닝에서 파생되는 오프닝으로, 베를린 장벽이라 불리기도 하는 디펜스 기술) '시실리안 디펜스'(흑의 전술 중 가장 높은 점수 획득을 자랑하는 디펜스) '용의 변주곡'(시실리안 디펜스에서 파생되는 전술로 체스 오프닝 중 가장 날카롭고도 공격적인 전술로 평가받음) '유고슬라브 어택'(용의 변주곡 라인의 체스 오프닝) 등이 그 면면이다.
무엇보다 '파힘'이 갖는 가장 큰 힘은 실화라는 점인데, 난민과 인권 문제에 관해 다시금 질문한다는 데 있다.
지난 2006년 10월 베굼 칼레다 지아 정권 퇴진 후 방글라데시는 혼돈에 휩싸인다. 차기 총선을 앞두고 민족주의당과 아와미 연맹 사이 극한 대치로 인해 전국적인 폭력 사태가 지속된다. 과도정부는 군부의 지원을 받아 약 2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자국 내 위험을 피해 많은 이가 난민이 되어 전 세계로 흩어진다.
영화 속 파힘과 그의 아버지 누라(미자누르 라하만) 역시 정치적 위협을 피해 프랑스 망명길에 오른다. 자유의 나라, 유럽 대표 복지국가 중 하나라는 프랑스지만 자유와 인권의 혜택이 난민들에게까지 미치지는 못한다. 파힘의 아버지는 불법체류자가 되어 추방 위기에 놓이고, 파힘 역시 위탁가정에 들어갈 처지가 된다.
자유와 인권의 나라이지만 프랑스 외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보편적인 권리는 멀기만 하다. 단, 파힘이 체스 챔피언이 된다면 프랑스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할 능력을 인정받아 프랑스에 머무를 수 있다. 체스 천재인 파힘이 일으킬 기적에 기대어 인권을 보장받아야 할 상황이다.
여기서 다른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일반의 난민들, 천재적인 능력이 없는 보통의 대다수 난민은 작은 희망조차 잡지 못한 채 인권의 테두리 밖으로 밀려나야 한다는 점이다.
이 복합적인 문제와 고민에 관해 파힘에게 언제나 든든한 조력자였던 마틸드(이자벨 낭티)가 프랑스 정부를 향해 묻는다.
"프랑스는 진정한 인권 보장 국가인가요?"
이는 어쩌면 파힘이 체스 챔피언이 된 기적적이며 감동적인 이야기보다 더 집중하고 고민해야 할, 분명 그러길 바라며 영화가 던진 질문일 것이다.
108분 상영, 1월 21일 개봉, 전체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