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측은 이번 선고 결과와 관련해 말을 아끼면서도 충격에 휩싸인 모습이다.
파기환송심 과정에서 삼성 측은 준법감시위원회 설치·운영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했고, 또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를 통한 무노조 경영 폐기 및 경영권 승계 종식 선언 등 변화한 모습과 의지를 강조하면서 내심 집행유예형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건희 회장의 별세로 그룹의 공식적인 총수가 된 이 부회장이 다시 수감되면서 중요한 시기에 굵직한 의사결정이 지체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 2017년 2월 구속 이후 1년동안 '비상경영 체제'…재연된 '악몽'
삼성은 지난 2017년 2월 이 부회장이 처음 구속됐을 때, 그룹 운영을 총수 중심 경영 체제에서 계열사별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구속 1년만인 지난 2018년 2월 이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자 이 부회장과 계열사 CEO들은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하며 '뉴삼성'을 이끌어갔다.
하지만 풀려난 지 3년만에 이 부회장이 다시 수감되면서, 코로나19 장기화와 미중 무역 분쟁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뉴삼성'으로의 발걸음은 주춤거리는 모양새가 됐다.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미래전략실이 폐지된데다 이 부회장까지 부재 상황이 연출되면서 그룹의 중요 사안에 대한 결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 등 실패시 책임이 뒤따르고, 그룹의 명운을 좌우할 결정은 결국 총수의 영역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이 부회장이 처음 구속되기 3개월 전에 자동차 전장업체 미국 하만을 인수한 이후 삼성은 최근까지 이렇다할 인수합병 소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최근 SK하이닉스를 비롯해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대기업들이 미래 먹거리를 위해 인수합병을 적극 추진하는 것과 대비된다.
계열사별 일상적인 경영은 가능하겠지만 그룹 전체의 동력 저하는 불가피해 보이는 대목이다.
◇ 이 부회장의 "거듭나겠다"는 호소도 무위로 끝나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30일 이 부회장에게 징역 9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결심 공판에 나선 이 부회장은 당시 최후 진술에서 "과거의 잘못은 모두 제 책임이며, 최고 수준의 도덕·투명성을 갖춘 새로운 삼성으로 거듭나겠다"며 재판부에 눈물로 선처를 호소한 바 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설치, 무노조 경영 폐기, 경영권 승계 종식 선언 등 변화에 대한 의지를 거듭 피력했지만 결국 뜻한 바를 얻어내진 못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 준법감시위 역할을 평가하는 여론 등이 있어 삼성이 파기환송심에 기대를 걸만했지만 형량은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반대 분위기가 있어, 자연스레 이 부회장도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속에서도 지난해 깜짝 실적을 냈던 삼성전자가 그 기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
코로나19 장기화와 미중 무역 분쟁 등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회사의 운명을 책임질 총수가 다시 구속되면서 이 부회장이 지난해 5월 대국민 사과와 함께 내놓은 '뉴삼성' 선언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최근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기류는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으로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나서는 등 치열한 기술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시스템 반도체 부문 1위를 차지하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선언했으나 아직 파운드리 부문에서는 대만의 TSMC에 크게 뒤쳐져 있다.
특히 TSMC의 경우 올해 우리 돈으로 30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설비투자를 예고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삼성은 팹리스 시장에서도 미국 퀄컴, 대만 미디어텍 등에 밀리고 있다.
반도체 업계 특성상 적시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총수 부재 상황에서 이를 실행해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 속 경영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기업이 경쟁에 뒤처질 경우 언제나 위기에 닥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인수합병 등을 통해 미래성장동력 발굴에 적극 나서야 하는 시기에 총수 부재는 그룹 경영에 있어 큰 공백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