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열종대로 줄을 선 군인들이 발을 맞춰 유명 대형 호텔로 들어가고 있었다.
취임식장 보안을 지키기 위해 동원된 주 방위군 2만 5천명 가운데 경계 교대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러 들어가는 인원으로 보였다.
백악관에서 600m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 호텔은 보통의 취임식 같았으면 할리우드에서 날아 온 연예인들로 북적였어야 할 호텔이다.
워싱턴 정가 사람들을 초대해 마련할 사교 파티에 얼굴 마담으로 동원된 연예인들 말이다.
그러나 올해만큼은 그들 연예인들 대신 군인들이 호텔 숙소를 점령했다.
호텔측은 "취임식을 앞두고 문을 닫던지 아니면 군대나 보안요원들을 받던지 선택하라고 해서 군대를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취임식을 앞두고는 다운타운 호텔이나 연회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었다는 워싱턴 정가 관계자도 "보통은 각종 파티에 초대돼 들뜬 분위기에서 취임식 무렵을 보냈는데 올해는 그런 게 없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식당도 마찬가지다.
뮤리엘 바우저 워싱턴DC 시장과 인근 메릴랜드, 버지니아 주지사도 최근 3자 명의의 공동 성명을 통해 "제발 워싱턴DC로 오지 말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취임식을 즐기려는 인파들이 차지하던 워싱턴 DC 거리는 적막감이 그들을 대신해 메우고 있었다.
미인가 차량을 통제하는 마지노선인 '엘 스트리트'는 워싱턴시내 가로축 가운데 의사당을 기준으로 북쪽 11번째 도로다.
결국 워싱턴DC 중심 가로축 11개 도로가 취임식을 앞두고 봉쇄된 것이다.
의사당에서 왼쪽 끝단을 1번으로 서쪽으로 '애비뉴'로 이름붙은 45개의 세로축 가운데는 23번 애비뉴부터 차단된 곳이 있었다.
의사당 주변으로 직각이 아닌 사선으로 그어져 각 주의 이름이 붙은 '매사츄세츠 애비뉴'와 '펜실베니아 애비뉴' 등 주요 간선도로들 역시 모두 차단됐다.
이렇게 볼 때 워싱턴 DC 백악관 주변 반경 1~3km내 차량이 전면 통제된 것으로 보인다.
차량 단속 지점에는 국방색 군용 차량 2대와 1대의 험비 차량이 경찰 순찰차량과 함께 배치돼 외부인 단속을 하고 있었다.
의사당에서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애비뉴는 의사당 정북쪽의 '뉴저지 애비뉴'였다.
의사당으로부터 1km 떨어진 지점부터는 군인들이 검문을 하고 있었다.
중무장을 한 군인들은 허가증이 없는 차량은 돌려보냈다.
도보로 '뉴저지 애비뉴'를 걷는 것은 막지 않아 인근에 주차를 하고 의사당 쪽으로 걸을 수 있었다.
시민들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고 각국에서 몰려든 취재 기자들의 움직임만 분주했다.
이 곳에서 만난 한 프리랜서 기자는 "의사당 취임식 스케치를 매연을 내뿜는 군대 차량 옆에서 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아쉽다"고 말했다.
일리노이, 인디애나에서 '여행 왔다'는 두 백인 남성들과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들은 '몇 마디 물어볼 수 있냐'는 기자의 말에 "질문이 뭐냐"고 경계하듯 되물었다.
'평소와 다른 대통령 취임식을 맞이하게 된 소감을 듣고 싶다'고 물어봤지만, 그들은 끝내 "정치적으로 엮이고 싶지 않다"며 "대답하지 않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는 "지금 정치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어서"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하기도 했다.
'일반 시민으로서 말을 해달라'는 기자의 거듭된 요청에 그들 중 한 명은 "내가 볼 때는 미쳤다"는 말을 남기고 곧바로 사라졌다.
노란색 접근금지 테이프 앞쪽으로 놓여진 콘크리트 바리케이드에는 '게이스 어갠스트 건스(Gays against Guns)'라는 이름의 시민단체 회원들이 벽보를 붙이고 있었다.
'백인 우월주의는 애국이 아니다', '증오를 무장해제하라'는 글귀를 담은 A4용지 크기의 전단이었다.
그들은 "이 나라는 인구는 3억명인데, 총은 4억개나 소유중인 나라"라고 지적하며 "(무기소유 자유를 담은) 수정헌법 2조는 나라를 보호하자는 것이지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백인 우월주의는 테러의 한 형태다"고 말했다.
이들은 "오늘 할 일이 많다"며 D 스트리트 방향으로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이날 워싱턴DC 중심가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서 미소 띤 얼굴을 한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 측근들이 트럼프에게 건의했다는 계엄령 선포가 실제로 내려진 듯 을씨년 스런 분위기가 도시에 팽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