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학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어 관련법은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쳐 처벌 조항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지만, 동물학대 사건이 법원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동물권보다 인간 중심 시각…"객관적 검증 노력 안해"
18일 동물자유연대와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동변)이 최근 발간한 판례집 '동물학대 판례평석'에 따르면 불기소 처분된 동물학대 사례가 다수 언급된다.
이들 단체는 수사기관이 동물학대 사건에서 현장조사 없이 가해자에게 유리한 주변인 진술만 듣고 수사를 마무리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 동물보호단체가 2016년 국내 한 대학 수의과에서 내과실습과목 수업 중 유기견을 대상으로 동물실험을 한 혐의로 이 대학 총장과 수의과대 주임교수 등을 고소했으나 검찰은 관련자들 모두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권유림 변호사는 "유기동물을 실험에 이용했다는 수의대생들의 진술이 있었는데도 수사기관은 의혹을 객관적인 방법으로 검증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피의자들의 진술을 그대로 믿어 관련자 전원을 불기소 처분했다"고 비판했다.
2019년 서울의 한 펫샵에서 강아지들이 피부병에 걸린 채 제대로 된 사료를 먹지 못하고 방치돼 펫샵 주인이 고소당한 사건에서도 검찰은 목격자들의 증언을 배척하고, 펫샵 주인과 친분이 있는 인근 동물병원 수의사가 "학대로 볼 수 없다"고 한 진술을 토대로 불기소 처분했다.
동물을 인간의 소유물로만 보지 말고 동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의 동물보호법이 제정된 지 30년이 넘었는데도 동물학대 행위에 재물손괴죄만 적용하는 사례도 있었다.
◇"동물 학대행위 포괄적 처벌조항 마련해야"
동물학대 사건은 매년 급증하지만 법적 처벌을 받는 사례는 극소수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지난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동물보호법 위반 발생 건수는 2010년 69건에서 2019년 914건으로 10배 넘게 증가했다. 이 기간 총 발생 건수는 3천48건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인원은 304명이었다. 이 가운데 벌금형은 183명이었고 선고유예 21명, 무죄판결 4명 등이었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39명이었다. 이 중 집행유예는 29명이었고, 실형 선고는 10명에 불과했다.
이처럼 법적 처벌이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열거 방식'의 동물학대 조항이 지적된다. 동물보호법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야기되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학대행위를 일일이 열거하는 방식으로 '땜질식' 개정이 되다 보니 처벌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에 동물학대 행위를 포괄적으로 처벌하는 조항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예컨대 미국 플로리다주와 영국은 동물복지법에서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는 것'을 포괄적인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채일택 동물보호연대 팀장은 "동물학대 조항을 열거하면 행위가 해당 조문에 합치하지 않는 경우 처벌에 어려움이 발생한다"며 "포괄적 처벌조항을 마련하고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예외적으로 처벌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