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정인이 양부모 '살인죄' 적용 고심…전문가 "재감정 결과서 11일 제출"

검찰, 법의학 전문가 3명에게 사인 재감정 의뢰
재감정 참여 전문가 "오는 11일 남부지검에 결과 제출 예정"
"아동학대치사죄 공소유지 후 공판 진행과정서 혐의 변경 가능성"
살인의 '고의', 학대 '치명성' 입증 등이 관건 될 것으로 보여
13일 서울남부지법서 첫 재판

이한형 기자
16개월 정인이를 지속적으로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의 첫 재판이 오는 13일 열린다. 재판 과정에서 공소사실이 공개되는데, 양모 등에게 '살인죄'가 적용될지 여부가 주목된다.

10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검찰은 공소사실 변경을 염두에 두고 법의학 전문가 3명에게 재감정을 의뢰했다. 재감정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전날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오는 11일 서울남부지검에 결과서를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살인죄' 피해간 양천 아동학대 가해자들

이한형 기자
검찰은 지난해 12월 8일 양부모를 재판에 넘기면서 장모인 양씨에게 살인죄가 아닌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했다. 아동학대처벌법상 아동학대치사, 아동복지법 위반(상습아동학대, 아동학대, 아동유기·방임) 등 4개 혐의다. 양부인 안모씨는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아동유기·방임) 등 2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장씨의 '아동학대치사 혐의' 공소장을 보면, "10월 13일 불상의 방법으로 피해자의 등 부위에 강한 둔력을 가해 췌장이 절단되고 복강 내 출혈을 발생하게 하는 등 복부손상으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명시됐다. 사망 당일 촬영된 동영상과 '쿵' 소리가 들렸다는 이웃 주민의 진술, 범행 현장에 외부인 출입 흔적이 없던 점 등은 정황증거가 됐다.

살인죄를 적용하려면 살인의 고의가 있었음을 입증해야 하는데, 검·경은 관련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부모도 이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서 살인죄보다 입증책임이 덜한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하는 것은 관행처럼 여겨져 왔다. 현행법상 규정된 형량 자체는 낮은 편이 아니다. 아동학대치사죄의 법정형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살인죄와 달리 사형이 빠져있다.

하지만 양형기준은 크게 차이 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권고하는 살인죄의 기본 양형 기준은 징역 10~16년, 아동학대치사죄는 징역 4~7년이다. 전과와 반성 여부, 범행의 잔혹성 등을 따져 최소 2년 6개월에서 최대 10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폭행, 상해 등 추가 혐의가 있으면 최대 15년까지 가능하다.

그럼에도 살인죄로 의율하라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는 아동학대처벌법을 적용한 경우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처벌법 위반으로 전국 법원에 접수된 사건(267건) 가운데 유기형이 선고된 사건은 33건으로 전체의 12%에 그쳤다. 집행유예는 96건(36%)으로 실형보다 세 배 더 많았다.

◇검찰, 재판 진행하며 혐의 변경할 가능성에 무게

이한형 기자
검찰은 일단 법의학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공소장 변경 여부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첫 재판이 불과 사흘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공판이 개시된 이후 이들의 혐의를 변경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정인이의 앞선 진료기록과 부검 결과 등을 검토한 한 법의학 전문가는 전날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일부 내용을 손본 뒤 11일 검찰에 재감정 결과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살인죄 의율이 가능하다고 보는지, 재감정 결과 피고인의 구체적인 가해 행위가 의심되는 지점이 추가로 드러났는지 등에 대해선 함구했다.

양모인 장씨는 "정인이가 밥을 먹지 않아 화가 나 배를 손으로 때리고, 정인이를 들어 올려 떨어뜨렸다"는 취지로 진술해 살인의 고의는 없었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명백한 살인 의도가 없어도 자신의 행동으로 아동이 사망할 수 있다고 인식한 경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서 살인죄를 적용한 대법원 판례를 보면, 피고인이 피해 아동이 죽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그 가능성이 있음에도) 가해 행위를 한 경우 살인의 고의가 충분히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에서는 학대의 '치명성' 등을 입증하는 게 관건이 될 전망이다. 검찰은 정인이가 '췌장 절단'으로 복부가 손상돼 숨졌다는 부검 결과에 주목해 증거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의뢰를 받은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소청과의사회)는 지난 5일 검찰에 낸 의견서에서 "피고인은 피해자에 대한 살인의 의도가 분명하게 있었거나, 최소한 가해로 피해자가 사망할 가능성을 인지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검감정서와 아동학대 관련 의학 논문 등을 분석한 결과, 이 사건은 구체적인 가해 정황을 알기 어렵지만, 어떤 방법을 사용했든 교통사고를 당해서 배에 가해지는 충격 정도의 큰 충격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가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했다.

정인이를 떨어뜨렸다는 장씨의 주장을 두고는 "자유낙하로는 췌장이 손상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췌장 손상이 있는 경우 분명히 고의에 의한 비사고로 둔력이 가해졌을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해야 한다'고 여러 의학 논문이 밝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서울남부지검의 자문에 응한 또 다른 법의학 전문가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수사 의견과 의학적 소견을 종합할 때, 정인이의 사망은 단순 사고로 보기 어렵다"며 "법의학적 소견을 재판에 얼마나 참작할지는 판사의 재량이지만, 전문가들이 일관된 이야기를 한다면 무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공소장 변경 여부를 묻는 질문에 "재감정 결과서 외에도 기존 증거관계 등을 모두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검토해야 한다. 실체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13일이라는 시점에 방점을 두고 있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아동학대 사건의 기본적 프로토콜 고민할 때"

그래픽=고경민 기자
전문가들은 수사기관과 재판부가 아동학대 범죄의 특성을 고려해 사건을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학대가 가정 내에서 은밀하게 일어나며, 피해자가 진술 능력이 발달하지 않은 아동인 점 등이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인이가 숨지기 전 경찰에 접수된 3차례의 아동학대 신고는 학대가 얼마나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났는지 보여준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승재현 연구위원은 "(학대가) 줄었는지 늘었는지도 중요한 요인인데, 정인이를 향한 학대는 끊임없이 증대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양천 아동학대 사건처럼 피해 아동이 췌장 파열 등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 개연성이 부족한 폭행으로 숨진 경우, 검찰이 살인죄를 '주위적 공소사실'로, 아동학대치사죄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함께 기소하는 방안 등도 고려해봐야 한다"며 "아동학대 사건의 기본적 프로토콜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이수연 공보이사는 "(가해) 행위를 특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피고인들의 말만 듣고 처벌 수위를 낮출 것이 아니라, 현재로선 의학자들의 소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다른 살인 사건은 유가족이 있어 수사가 미흡하거나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항의 표시를 할 수 있지만, 아동학대 사망 사건은 가해자가 유족이다. 사회적으로 알려지지 않는 한 문제 삼을 수 없는 구조가 그동안의 '솜방망이 처벌'을 방기한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양모인 장씨의 혐의가 바뀌면 양부 안씨의 혐의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승재현 연구위원은 "장씨의 살인 혐의가 밝혀지고 남편인 안씨가 이를 인식·예견했을 가능성이 있었다면, 아동학대치사죄에 대한 공동정범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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