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고 또 맞아도 "죄송합니다"…대들지도 못하고 숨진 응급구조사

주종관계 상황에서 일방적인 폭행 이뤄진 듯, 12시간 맞고 숨져
사망 인지 7시간 후 신고, 그 사이 사건 현장 CCTV·메모리카드 모두 사라져
경찰, 응급구조단장 살인 혐의 검토

일러스트=고경민 기자
성탄절날 직장 상사의 12시간에 달하는 폭행으로 안타까운 생을 마감한 40대 응급구조사는 평소에도 잦은 폭행에 시달려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를 두고 "정신적으로 지배를 당한 주종관계 상황에서 일방적인 폭행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할 정도다. 그리고 폭행 현장이 담겼던 것으로 추정되는 CCTV와 메모리카드 등이 모두 사라져 증거를 은폐한 정황까지 포착됐다.

9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된 사설 응급구조단장 A(43)씨. A씨는 성탄절 전날인 24일 오후 1시부터 김해 사무실에서 동갑내기인 응급구조사 B(43)씨의 머리와 얼굴, 가슴 등을 여러 차례 폭행했다. 폭행은 다음 날인 새벽 1시까지 이어졌다.

폭행 원인은 이렇다. 폭행 하루 전인 23일 B씨가 사고를 냈고,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A씨가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폭행 현장이 녹음된 파일을 보면 "너 같은 XX는 그냥 죽어야 한다.", "사람대접도 해줄 값어치도 없는 개XX야"라고 말하며 폭행이 이뤄졌다. 쓰러진 B씨에게 "또 연기해"라며 다그쳤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B씨는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 과정에 본부장 직책을 가진 C(38)씨도 폭행에 가담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황진환 기자/스마트이미지 제공
12시간 이어진 폭행에 쓰러진 B씨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잔혹한 구타로 몸을 가누지 못해 사무실 바닥에 쓰러진 B씨를 그대로 방치했다. A씨와 이 업체의 법인의 등기 대표인 아내 D(33)씨는 B씨를 놔두고 사무실 옆 내실에서 잠을 잤다.

A씨는 25일 오전까지 의식을 잃은 B씨를 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아내와 본부장, 아내 지인인 E(35)씨와 함께 그를 사설 구급차에 태워 B씨 집 근처로 향했다. A씨 등은 "B씨가 집에 데려다 달라"고 말해 이동했고, 집 인근에서 사망했다고 진술했다.

국립수사과학연구원 부검에서는 B씨의 사인을 다발성 손상 및 외인성 쇼크사로 추정했다. B씨가 몸 여러 부위를 맞아 그 충격으로 숨졌다는 의미다. 사망 시간은 25일 오전 10시로 추정했다.

그러나 A씨는 B씨가사망한 뒤에도 7시간 가까이 신고를 하지 않고 차량 또는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에 머물렀다. 25일 오후 5시 30분쯤에야 119에 "사람이 죽었다"고 신고했다.

게다가 흘러간 7시간 사이에 이번 사건과 관련된 모든 CCTV 등이 사라졌다. B씨의 폭행 현장을 비추고 있던 사무실 CCTV 3대와 아내 식당 CCTV 2대, B씨 집에 설치된 CCTV 2대 등 7대의 CCTV 또는 메모리카드가 모두 사라졌다. A씨의 지시로 메모리카드 등을 수거해 모두 폐기 처분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B씨는 그동안 잦은 폭행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2018년부터 폭행이 이어졌고, 최근 두 달 사이에는 20여 차례 폭행이 있었던 부분에 대해 수사가 진행중이다. 잦은 폭행 탓에 2018년에는 한 차례 퇴사한 적도 있었지만, 몇 달 뒤 재입사했다. 시말서를 작성하게 하고 월급을 감액했다는 부분 등에 대해서도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경찰은 A씨에 대해 살인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범행에 가담한 혐의로 입건된 A씨 부인 등 3명에 대해서도 증거 인멸과 사체 유기 등의 혐의를 적용할지 검토하고 있다.

숨진 B씨의 친동생은 "이상 증세가 있었음에도 맞다가 쓰러져 기절하면 연기한다고 일으켜 세우고 동영상 촬영을 하며 구타하고 조롱하며 남의 고통을 즐긴 악마 같은 대표와 그 조력자들을 가만두고 볼 수 없다"며 살인 혐의를 적용해 달라고 청와대에 청원한 상태다.

9일 오후 1시 현재 9600여 명이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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