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한국 내 이란 동결자금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돼있어 전망하기 쉽지 않다. 더구나 한국의 재량권 밖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해결의 실마리라도 찾는다면 한-이란 관계에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곧 출범할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이란과 관계 개선을 원한다는 점에서 한미관계에도 보탬이 된다.
◇선박 억류 '해피엔딩' 가능할까…'해양오염' 사실이라면 조기해결
물론 억류 닷새째인 9일 현재까지도 환경오염에 대한 증거 제출을 미루고 있어 신빙성은 의문시된다. 해당 선사도 위반 행위를 극구 부인하고 있다.
만약 이란 측 발표가 사실이라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이란의 말마따나 외교협상 필요 없이 법대로 풀면 될 일이다.
하지만 여러 정황상 동결자금과 무관하다는 이란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란은 선박 억류와 동결자금은 별개라고 하면서도 동결자금 문제를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무관함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그 반대로 해석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선박 vs 10조원 동결자산…객관적 여건상 '인질극'은 이란에 불리
그러나 이란이 정세를 객관적으로 읽고 합리적 판단을 내린다면 사건을 굳이 오래 끌고 갈 이유가 없다.
우선, 이란 정부 대변인이 "만약 인질범이 있다면 그것은 70억 달러가 넘는 우리 자금을 동결한 한국 정부일 것"이라고 말한 것은 해석상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는 이란의 선박 억류가 인질극이라는 비판에 대한 반박 차원에서 나왔다. 극히 무례한 언사여서 우리로선 매우 불쾌하지만, 내용 자체만 보면 이 선박이 양국관계의 인질이 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만일 이란이 정말 선박을 인질로 삼는다면 이는 7~10조원의 한국 내 동결자산을 배 한 척과 바꾸는 어리석은 선택이다.
선원들이 있긴 하지만 기껏 환경오염 때문에 무작정 잡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비교적 중립적인 한국마저 적으로 돌려세웠다는 국제사회의 비판까지 감수해야 한다.
◇동결자금 주의 환기, 일부 목적 달성…민간선박 장기 억류도 부담
그렇다고 해도 미국의 확실한 입장 변화가 있을 때까지 민간 선박을 무한정 억류하리라는 가정은 별로 현실적이지 않다. 그러기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내외 난제가 산적한 바이든 행정부가 한-이란 간 억류 선박 문제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다.
이란으로선 동결자금 문제에 주의를 충분히 환기시키며 이미 웬만큼 목적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측의 뚜렷한 의지만 읽힌다면 사건을 조기 해결하는 게 길게 보면 더 남는 장사다. 어차피 호르무즈 해협의 제해권은 상당 부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는 10일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의 이란 방문 계기에 미국 새 행정부의 중동정책까지 염두에 두고 통 큰 합의를 이루는 게 현명한 처사다.
◇중동정세 변화 원치 않는 강경파가 변수…사태 장기화 배제 못해
'트럼프 변수'로 잠시 소원했던 양국관계는 최근 코로나19 백신 대리구매에 합의할 만큼 빠르게 회복되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사실여부도 확실치 않은 일개 선박의 해양 오염을 이렇게까지 문제 삼는 것은 국제관계에서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현 시점에 모종의 대외적 제스처가 필요했던 이란 내 강경파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2015년 이란 핵합의(JCPOA) 등 미국과의 관계 개선 시도 때도 강력 반발하는 등 역내 이슬람 혁명 수출을 과업으로 삼는 강경 기득권 집단이다.
만약 바이든 집권에 따른 중동정세의 변화를 원치 않는 이란 내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진다면 억류 사태의 장기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