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처벌 수위가 낮아지고, 소규모 사업장은 아예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실효성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 제정안이 지난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를 통과해 8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게 됐다.
하지만 법사위에서 내놓은 중대재해법 제정안은 그동안 국회 논의과정에서 처음 발의됐던 안이나 정부 조정안보다 처벌 수위와 적용 대상이 크게 후퇴하면서 1년에 약 2천명, 하루 평균 5~6명씩 일하다 죽는 현실을 바꿀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가장 먼저 지적되는 사항은 5인 미만 사업장을 중대재해법 적용대상에서 제외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3년 동안 적용을 유예했다는 점이다.
전체 사업체 중 5인 미만 사업장이 약 80%, 이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만 약 300만명으로, 여기에서 전체 산재 사망자의 약 30%가 발생하고 있다.
가뜩이나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도 제대로 적용되지 않아 장시간 노동 등 열악한 노동 조건에 시달리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을 다시 산업안전의 사각지대에 뒀다는 것이 노동계의 지적이다.
대한직업환경의학회 김형렬 총무이사(가톨릭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중대재해법은 산재가 발생한 사업장의 사업주를 모두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보건 조치를 어긴 위법한 산재가 발생한 경우에만 문제 삼는 법"이라며 "이를 왜곡해 마치 모든 소상공인, 영세 중소기업이 처벌받는 것처럼 과장하면서 법 적용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처벌 수위도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경영책임자는 '징역 1년 이상, 벌금 10억원 이하', 법인은 '50억원 이하' 벌금형으로 원안보다 대거 후퇴했다.
그동안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처벌의 하한선이 없어 대형 산업재해에도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됐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중대재해법을 추진하면서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의 '하한선'을 두는 것이 핵심규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벌금의 경우 하한선이 아예 사라졌고, 징역형도 1년 이상으로 대거 낮춰지면서 실제 사법 현장에서는 집행유예에 그칠 가능성이 커졌다.
이 외에도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발주처에게 하청과 공동의 안전보건의무를 부과한 조항이 아예 삭제됐고, 작업성 질환이나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규정도 모호한 수준에 그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근본적으로는 중대재해법이 실제 사례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현행 산안법 역시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는 산업재해에 대한 고의성 여부를 입증하기 어려워 아예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잦았다.
중대재해법에서는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조치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처벌하도록 해 문턱을 낮췄지만, 실제 법을 적용할 때에는 의무 위반과 중대재해 간의 인과성을 명확하게 입증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쟁점이 될 수 있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은 아직 명확성, 포괄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실제 처벌로 이어질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며 "중대재해법으로 처벌받을 사업주가 헌법소원 등을 제기할 가능성도 높은데, 산업안전에 대한 의무의 내용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사법현장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대학교 권혁 법학과 교수는 "처벌하려면 의무를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실제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데, (수사과정에서)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을 넘어 귀책사유가 존재한다고 판단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며 "자칫 규정만 엄격할 뿐,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아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실제 중대재해법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검찰, 법원이 산재를 단순한 일반 상해범죄, 사망사고와 동일하게 평가하지 않도록 감수성을 높여야 할 것"이라며 "경영책임자도 산업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한 기업성장 동력이자 투자전략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이 법의 진정한 목표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