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우습게 아느냐!" 투자 사기범에 재판장 일갈 왜?

신축 공동주택 투자 명목으로 5억 원 가로챈 40대
재판부, 수차례 선고 기일 연기하며 합의 기회 줬지만…
재판 불출석 하는가 하면 피해 회복도 여태껏 안 해
징역 3년 선고…코로나‧합의 기회 감안해 구속 면해

그래픽=고경민 기자
공동주택 투자 명목으로 수억 원을 가로챈 건설회사 운영자가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법정 구속은 면했다. 평생 모은 돈을 날린 피해자가 돈을 돌려받을 수 있게끔 재판부가 배려한 것이다.

◇제주법원 징역 3년 선고…법정구속은 면해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모(47)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고 6일 밝혔다.

다만 피해 회복 기회를 주고, 현재 코로나19 사태를 감안해 김씨를 법정 구속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 A씨로부터 5억 원을 가로채고, 모 건설회사에서 A씨로부터 송금 받아 보관 중이던 5억 원 중 2억3640만 원을 횡령하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모 건설회사 운영자인 김씨는 지난 2017년 2월 A씨에게 "서귀포시 동홍동에서 공동주택 신축사업을 하는데 토지매매 계약금으로 5억 원을 투자하라"고 꼬드겼다.

김씨는 A씨에게 "5개월 안에 투자 원금을 반환하고, 수익금으로 5억 원을 주겠다"고 한 뒤, "건설회사 대표가 자신의 부친이며 토지가 많은 재력가다. 안전한 투자처"라고 안심시켰다.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 고상현 기자
이 말을 믿은 A씨는 건설회사에 5억 원을 송금했다. 그러나 김씨는 별다른 자본이 없는 상황에서 해당 사업을 추진하는 등 투자 원금을 돌려주거나 수익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었다.

이후 김씨는 공공주택 신축사업 부지 매입과는 상관없이 회사명의 계좌에서 A씨의 돈 5억 원 중 2억 3640만 원을 지인들에게 송금하는 등 임의로 사용하기도 했다.

◇평생 모은 5억 원 날린 피해자 '처벌 불원' 왜?

평생 모은 5억 원을 투자 사기로 날려버린 피해자 A씨는 공판이 열릴 때마다 참석했다. 눈물을 흘리며 재판을 지켜봤다. 또 돈을 돌려받기 위해 불가피하게 '처벌 불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김씨가 A씨에게 피해 회복을 해주겠다며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추진 중인 콘도미니엄 3채를 대물로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구속되면 사업에 차질이 빚어질까 봐 우려한 것이다.

재판부도 A씨의 사정을 딱하게 여겨 애초 지난해 10월 22일 예정됐던 선고기일을 두 차례 연기해줬다. 김씨가 A씨에게 피해 금액을 돌려줄 시간을 마련해주기 위해서 배려한 것이다.

그러나 김씨는 지난해 12월 10일 선고 기일 당일 돌연 재판에 불출석했다. 이 때문에 재판부는 한 차례 더 연기해 선고를 해야 했다. 선고 당일까지도 김씨는 피해 회복을 하지 않았다.

재판장은 우여곡절 끝에 열린 선고 공판 당일 김씨에게 "피고인이 합의한다고 해서 선고 기일을 연기했는데, 마음대로 재판에 불출석했다. 법을 우습게 아느냐"라고 일갈했다.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 고상현 기자
아울러 '피해자의 처벌 불원서'도 피해자가 피해 회복을 받지 못할 것을 염려해 어쩔 수 없이 처벌 불원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보고 양형에 감형 요소로 참작하지 않았다.

다만, "구속을 면해달라"는 A씨의 호소에 재판부는 김씨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도 법정 구속하지 않았다. 재판장은 "징역 3년 그대로 복역하지 않으려면 피해 회복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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