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가 DH와 우아한형제들의 기업 결합에 대해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린 것은 기업의 자유권은 보장하되, 특정 기업의 산업 독과점은 막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DH는 'DHK 매각'과 '우형 인수 포기' 갈림길에 서게 됐다. 앞서 DH는 지난달 공정위가 심사보고서를 통해 'DHK 매각'을 제안하자 "동의하지 않는다"며 "추후 열릴 공정위 전원 회의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공정위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결국 설득에 실패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이번 공정위의 결정은 디지털 경제의 역동성을 외면한 시대를 역행하는 판단"이라면서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에 상당한 우려를 나타냈다.
◇후발 주자 등장에도 배달 시장 점유율 99.2%25…공정위 '배달 공룡 폐해 우려"
공정위는 "배민-요기요 간 경쟁 관계는 유지해 소비자 후생을 증진하고 혁신 경쟁을 촉진하는 동시에 DH와 우형 간의 결합은 허용해 DH의 기술력과 우형의 마케팅 능력 결합 등 협력을 통한 시너지 효과는 달성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배민과 요기요, 배달통 3사의 배달 시장 점유율은 2019년도 거래금액 기준 99.2%에 이른다. 즉, 국내 배달 앱 1·2위 사업자가 결합할 경우 시장 독점적인 사업자가 탄생해 경쟁 제한성이 크고, 배달료 등 가격 인상 압력이 높은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쿠팡이츠 등 후발주자의 시장점유율이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배달의민족-요기요의 경쟁압력으로 작용하기는 미흡한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또 두 회사의 합병으로 주문이 몰릴 경우, 혼잡효과로 인해 배달 시간 증가 등 소비자 후생이 악화될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성탄전야 '배민 먹통 사태'… "배달 독점 폐해 미리보기 됐다"는 지적도
코로나19 확산 속에 그나마 크리스마스 특수를 기대했던 자영업자들은 배달하지 못했고 음식 주문한 고객들은 배달을 기다리다 결국 취소하고 말았다. 라이더들도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도로에서 방황해야 했다.
배민의 후속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배민은 라이더에겐 6만원, 주문 고객들에겐 3만원 쿠폰 등을 지급했다. 그러나 정작 대목을 놓친 자영업자들에겐 주문 취소된 건에 대해서만 보상한 것이다. 먹통이 된 4시간 동안 주문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선 언급조차 없었다.
공정위가 DH의 우형 인수 조건으로 DHK 매각 명령을 내린 것도 이같은 독점 기업의 서비스 오류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기업 간 혁신 경쟁으로 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공정위 관계자는 "음식점, 라이더 등 배달 외식 분야의 여러 중소상공인과 배달음식을 이용하는 국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점을 감안해 면밀하게 심사를 진행했다"며 "배민과 요기요 간의 경쟁 관계는 유지되도록 해 배달 앱 관련 시장의 소비자 후생을 증진하고, 상호 간 혁신 경쟁을 촉진할 수 있는 기반은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M&A 무산 시 글로벌 진출하려던 배민 '발목'…"스타트업 생태계 약화될 것" 우려
우형은 물론 투자자들도 타격을 받게 된다. 국내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DH와 다시 출혈 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2018년 567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던 우형은 DH코리아와 경쟁이 격화된 2019년 86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4조7500억원에 달하는 규모로 재매각하기도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스타트업 업계 전체에도 투자 위축과 생태계 경쟁력 약화를 가져올 수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선순환을 위해서는 엑시트(자금 회수)가 중요한데 공정위 제재로 M&A가 없던 일이 되면 글로벌 자본의 국내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그동안 배민에 투자했던 벤처캐피털(VC) 등도 자금을 회수하지 못해 국내 벤처 투자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국내 스타트업 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는 입장문을 통해 "공정위는 이번 결정으로 플랫폼 사업자가 네트워크 효과를 바탕으로 얼마든지 음식배달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을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코스포는 "국내 대표 유니콘 기업인 우형과 글로벌 DH의 결합은 국내 최대규모 스타트업 M&A인 동시에, 글로벌 진출의 중요한 이정표였던 만큼 공정위 결정은 우리 스타트업의 글로벌 가치 평가에 악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글로벌 진출에도 막대한 손실을 초래했다"며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결정의 과정과 결과 모두 혁신성장을 저해하고 국내 스타트업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음을 무겁게 인식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코스포는 음식배달 시장을 국내 국한해서 볼 게 아니라 글로벌 시장으로 넓게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 최대 유통업체 아마존이 음식배달 플랫폼 '딜리버루'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 플랫폼 알리바바도 중국 1위 음식배달 플랫폼 '이러머'를 인수하는 등 기업간 합종연횡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시장이라는 것이다.
규제 혁신을 모토로 하는 시민단체 '규제개혁 당당하게'의 대표활동가 구태언 변호사는 "넓게 보면 쿠팡이나 마켓컬리, 이마트 새벽배송과 같은 신선식품 배달도 음식배달 시장으로 볼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조리된 음식 시장으로만 좁게 볼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공정위가 아날로그 시각으로 디지털 산업을 규제하려다 보니 나타난 결과"라고 했다.
정미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책실장은 "산업이 융합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스타트업 M&A에 나서지 못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시장 전체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2조짜리 배달앱 2위 요기요 팔아야 하나? 갈림길 놓인 DH
우선 DH는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에 나설 것으로 점쳐진다.
업계에서는 당장 요기요 매각 여부를 결정하기보다 시간을 벌며 실익을 따져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DH는 배달의민족을 인수해 한국 시장에서의 출혈 경쟁을 막고, 아시아 시장 개척 등을 창출하려 했다. 그러나 요기요를 이대로 포기한다면 이같은 합병의 목적이나 취지가 사라진 격이기 때문에 쉽게 결정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공정위의 결정을 무시할 수도 없다. DH가 공정위 조건을 따르지 않고 인수합병을 강행하면 일(日) 단위로 강제 이행금을 물어야 한다.
강제 이행금은 거래대금의 1만분의 3 수준이다. 100일이면 3%, 1년이면 11% 수준이다. 우아한형제들 인수금액 4조 7500억원 기준으로 계산하면 매년 5천억원의 강제 이행금을 내야 한다. 지난해 우아한형제들의 연간 영업수익(매출액)이 5654억원이었다.
배달 업계 관계자는 "DH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막대한 피해가 따른다"면서 "이번 기업결합 불승인 사례는 향후 스타트업의 사업 확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