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의 법안에서는 도급과 위탁관계에서의 위험방지의무에 대한 원청사업주 공동책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법안심사소위에서는 도급의 범위를 제한해서 임대, 용역, 위탁은 제외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것 같다.
법 적용 시기와 관련해서 50인 미만 중소기업에게는 4년 유예하자는 얘기가 진즉부터 나왔다. 중소기업에 대한 입법 영향에 대해 중소벤처기업부 등 관계부처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법안심사소위의 논의방향이 단지 법안 후퇴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함은 아닌지 우려된다.
원청사업주의 공동책임을 묻는 도급의 범위를 축소하자거나, 50인 미만 사업에 대해서 법 적용을 상당기간 유예하자는 것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입법취지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얘기다. 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흔한 격언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의 '공공기관 사망사고 경영진 책임강화 방안'과 관련해서 대부분의 공공기관들이 지난 9월에 '안전사고 발생 시 임원 문책 규정'이란 것을 만들었다. 임원에 대한 문책 사유로 산업안전보건법 제2조(중대재해), 제44조(중대산업사고)는 들어가 있는데 제63조(도급인의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는 없다. 도급, 용역 등으로 운영되는 간접고용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기에는 미흡할 수밖에 없다.
사업은 외주화해도 위험은 외주화할 수 없다는 것을 이번 법 제정을 통해 보여줘야 한다. 2018년 산안법 전면개정으로도 담보되지 못했던 위험의 외주화 금지가 이번 법의 핵심 내용이다. 도급 범위의 축소, 50인 미만 기업 적용 유예는 이러한 핵심 내용을 희석시키는 것이다.
도급 범위 축소와 중소기업 적용 유예 문제는 간접고용 노동자의 안전을 배제하거나 유예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용역, 파견, 민간위탁, 사내하청, 하도급, 아웃소싱, 소사장제, 사내분사 등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고 있는 간접고용 노동자는 국가인권위 연구에 의하면 전체 임금노동자의 17.4%에 달하는 350만 명 내외이다.
바이러스는 평등하지만 전염병으로 인한 피해는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코로나19가 보여줬듯이, 위험은 기다려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위험발생구조는 취약노동자를 더욱 집요하게 공격한다. 입법으로 인한 중소기업 부담을 걱정하는 법안심사소위에게 몇 가지 감안해야 할 점을 제시해본다.
첫째, 원하청 관계의 중소기업은 입법이 오히려 중소사업주의 안전관리 부담을 덜어주게 될 것이다. 사고 예방 및 안전관리를 위한 자원과 권한은 주로 원청기업이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원청사업주에 대한 공동책임 부과는 중소영세기업의 '책임 몰빵'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둘째, 대기업의 도급, 용역 등 사내하도급 활용은 대개 50인 내외 규모로 분산 운영된다. 도급계약 해지를 통해 인력운영의 유연성을 극대화하는 것과 노조효과를 차단하기 위함이다.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을 유예한다는 것은 대기업의 책임을 또 다시 유예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김용균 특조위 보고서를 보면 발전5사 1차 협력사의 절반 가량, 2차 협력사는 예외없이 50인 미만이다. 지난 9월 태안화력발전소 석탄하역업무 중 사망사고, 영흥화력발전소 석탄회 상차업무 중 사망사고 등도 50인 미만 하청기업에 소속된 노동자였다.
셋째, 원하청 관계에 있지 않은 중소기업의 경우는 안전 유지 비용이 당장은 순증할 것이다. 하지만 이를 걱정해서 중소기업 적용을 유예하거나 제외한다는 것은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는 실체없는 허상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예외없이 1인 고용 사업장에도 적용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안전 유지 비용은 기업규모와 상관없이 경영적 고려사항이 되어야 하고, 이는 기업의 장기이익을 도모하는 길이다.
마지막으로 박영선 중기부 장관에게 요청한다. 대통령령에 따른 장관의 직무는 '중소기업의 보호·육성, 대·중소기업 간 협력 지원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것이다. 장기적 안목으로 중소기업 육성의 초석을 놓기 위해서는 법 제정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