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법원의 시간'은 왜 정경심 편이 아니었나

재판부 "진실 말한 사람들 비난…정신적 고통 줘"

※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2020.12.23. 서울중앙지법 정경심 1심 선고
재판장 "피고인은 조국에 대한 청문회가 시작할 무렵부터 본 재판의 변론종결일까지 단 한번도 자신의 잘못에 대해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한 사실이 없습니다. 피고인은 이번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입시비리 혐의에 관해 진술한 사람들이 정치적 목적이나 개인적 이익을 위해 허위진술을 했다는 등의 주장을 해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법정에서 증언한 사람을 비난하는 계기를 제공해 진실을 이야기한 사람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했습니다. 객관적인 물증과 신빙성 있는 관련자들의 진술이나 증언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이 모든 공소사실을 부인하면서 설득력 없고 비합리적인 주장을 계속하는 태도는 방어권 행사의 측면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쉽게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자녀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투자 의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박종민 기자)
1년간 34번의 재판을 진행한 끝에 내놓은 재판부의 결론은 "피고인은 유죄"였습니다. 지난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임정엽 부장판사)는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게 징역 4년과 벌금 5억원, 추징금 1억40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선고를 들은 정 교수 측 지지자들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이날 선고 후 법원 앞에서 한 지지자는 "(검찰)총장 장모는 그렇게 사기를 쳐도 가만 두면서, 표창장 만드는 거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곧바로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해당 판사들을 탄핵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유죄' 자체도 불만스럽지만 정 교수의 태도를 지적한 재판부의 양형사유도 편향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정 교수 측 변호인은 "압도적인 여론의 공격에 대해 스스로 방어하고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려 했던 노력들이 오히려 피고인의 형량에 아주 불리한 사유로 언급이 되면서 마치 괘씸죄처럼 적용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판결도 사람이 하는 것이라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인권의 수호자'로 불리는 판사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수성을 잃었거나 법적 정당성보다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고려한 판결을 할 때는 더욱 그렇겠죠. 또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긴 커녕 "네 죄를 네가 알렸다"는 식으로 처벌하려 한다면 법원 내부 징계는 물론이고 국회의 탄핵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재판부의 이번 양형사유는 다른 형사재판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형법 제51조 '양형의 조건'에서는 '범행 후의 정황'도 양형사유로 고려하고 있습니다. 범행 후 증거인멸이나 거짓 진술 등은 불리한 정황이 되고, 자수하거나 피해를 변상하려는 노력은 유리한 정황으로 반영됩니다.
최성해 전 총장(사진=연합뉴스)
2020.3.30. 서울중앙지법 정경심 1심 공판 중 최성해 증인신문
최성해 동양대 전 총장 "조○(조국·정경심 딸)에게 표창장을 수여 한지도 몰랐습니다. … (그런 표창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언론 보도를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 정 교수와 딸을 몇차례 만났지만 동양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검찰 수사의 출발점이었던 '동양대 표창장 위조'와 관련해 정 교수는 최성해 동양대 전 총장이 법정에서 불리한 증언을 하자 그 증언의 목적과 신빙성을 문제 삼았습니다. 정 교수 측 변호인은 "최 전 총장이 정 교수를 통해 조 전 장관에게 동양대를 재정지원 제한 대학에서 제외해 달라고 청탁했지만 이를 들어주지 않자 앙심을 품었거나 야당으로부터 국회의원 공천을 받으려 허위진술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기존 동양대 총장 표창장의 일련번호 등 양식과 기재사항 △상장 발급일자와 봉사활동 기간 △'전자직인'을 사용하지 않던 시기에 프린터로 직인이 출력된 점 △총장의 표창장 발급 권한 위임 여부와 피고인 진술 일관성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표창장은 위조된 것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정 교수 측 주장과 달리 최 전 총장이 해당 의혹과 관련한 야당 의원들의 질의를 받자 오히려 정 교수와 동양대를 보호하려 했다는 관계자들의 주장이 법정에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최 전 총장이 청탁을 거절당한 2018년 8월부터 2019년 8월 사이 정 교수나 조 전 장관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정 교수에게 불이익을 줬다고 볼만한 자료도 없었습니다.

한편 검찰의 '먼지털이식 수사'를 비판하며 '법원의 시간'을 기다린다던 조 전 장관은 정작 정 교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서는 "형소법 148조에 따르겠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친족이 공소제기를 당하거나 유죄판결을 받을 염려가 있는 증언은 거부할 수 있다'는 조항에 따른 정당한 증언거부권 행사지만,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진실을 밝히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은 셈이죠.

모든 피고인에겐 방어권이 있지만, 그것이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에 반하는 내용까지 거짓말을 하도록 장려하는 권리는 아닐 겁니다. 절도 현장이 CCTV에 찍혔는데도 부인하거나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고 변명하는 행위, 성범죄 피해자가 평소 행실이 나쁜 편이며 특정한 목적을 위해 고소했다고 비난하는 행위 등은 가중처벌되기도 하니까요.

재판이 실체적 진실을 향해 가는 과정임을 생각한다면, 피고인의 이러한 자세는 수사와 재판절차를 방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개전의 정'(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이 없음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정 교수 측 변호인은 선고 이후 "무죄 판결한 사유까지도 법정구속이나 양형의 사유로 삼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 법적인 검토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 교수의 증거은닉 행위가 '자기 증거 인멸' 법리에 따라 무죄가 선고됐는데도, 재판부가 불리하게 언급한 것을 지적한 것이죠.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이미 관련 범죄의 양형기준들에 답이 나와 있었습니다. '범행 후 증거은폐 또는 은폐 시도'는 부정적 사유로 반영된다고요. 또 정 교수가 처벌을 면한 대신 그 일을 도운 자산관리인 김모씨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받았다는 점은 정 교수의 증거은닉이 무죄이더라도 사회적 비난가능성이 높은 부분입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김씨가 고객 관리를 하다가 전과자가 됐으니까요.

법조계 일각에서 정경심 교수 측의 1심 재판 전략 자체가 잘못됐다는 충고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검찰이 제기한 수많은 혐의를 냉정하게 판단해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부인할 것은 부인하는 유연한 전략으로 맞섰다면 재판부에 좀더 신뢰감을 심어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피고인과 검찰측이 상반된 주장을 놓고 재판부를 설득시켜나가는 '경쟁'이 공판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정 교수 측은 재판 시작 전부터 선택의 여지가 없어보였습니다. 본인 뿐만 아니라 남편인 조 전 장관이 '검찰개혁을 무산시키려는 정치검찰의 누명씌우기'라고 이 사건을 정의하면서부터 정 교수가 법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일관된 부인' 밖에는 없었습니다. 항소심 재판에서는 유·무죄 다툼만큼이나 1심 양형을 얼마나 줄이냐는 것도 피고인 입장에서 중요한 사안입니다. 정 교수측은 1심 전략을 그대로 밀고 나갈까요? 아니면 뭔가 변화를 시도할까요? 관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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