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확장을 내걸었던 김종인 비대위의 이같은 결정이 당 안팎 태극기세력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태극기세력으로부터 전폭 지지를 받는 김‧전 전 의원 대신 '총선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한 민 전 의원과 '달님 영창' 현수막 논란의 김 변호사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태극기 강경 우파 세력 못쳐낸 김종인
국민의힘은 지난 24일 민 전 의원(인천 연수구을 당협위원장)과 김 변호사(대전 유성을 당협위원장)를 포함 원외 당협위원장 24명을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당무감사위원회는 전국 49개 당협위원장 자리 교체를 권고했지만 비대위는 결국 물갈이 대상을 절반으로 줄였다.
문제는 당초 49개 교체 권고안에 포함됐던 김 전 의원(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갑 당협위원장)과 전 전 의원(인천 동구·미추홀구갑 당협위원장직) 등은 최종 명단에선 제외됐다는 점이다.
김종인 비대위 출범 후 지난 10월 당무감사가 시작될 당시만 해도 이번 감사가 태극기세력 교체를 노린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김 위원장 취임 후 정강‧정책과 당명 개정 등을 통해 중도확장을 내건 만큼 총선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된 강성 우파 인사들에 대한 교체가 이뤄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당무감사위의 교체안 보고 후 비대위에서 재차 원점검토 결정 등 엎치락뒤치락 끝에 나온 결과는 예상 밖이라는 게 당내 지배적인 의견이다. 이른바 태극기세력이라 불리는 강성 우파 지지자들을 기반으로 한 김‧전 전 의원은 빠지고, 민 전 의원과 김 변호사 등만 교체대상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한 지도부 관계자는 26일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솔직히 보궐선거를 3개월 앞두고 당내 지분이 많은 태극기세력을 건드린다는 게 쉽지 않다"며 "비대위 출범 초기 지지율이 높았을 때라면 가능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을 회생시키는 과정에선 김 위원장이 상당 부분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김 전 의원에 대해 '보수층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게 비대위 회의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일각에선 '5‧18 무릎 사과'까지 강행하며 당이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김 위원장이 결과적으로 보궐선거 승리를 위해 태극기세력과 타협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 전 의원은 황교안 대표 체제였던 지난해 '5·18 폄훼' 발언으로 징계(경고 조치)를 받은 바 있다. 지난해 2월 김 전 의원은 5‧18 관련 공청회에 영상 메시지를 통해 "5·18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우파가 물러서면 안 된다"고 언급해 논란이 됐다.
5‧18에 대한 평가를 두고 그동안 당이 폄훼 및 왜곡 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 사죄하는 차원에서 무릎까지 꿇었던 김 위원장이 '망언' 당사자인 김 전 의원을 옹호하는 모습이 연출되면서 사과의 진정성까지 의심받고 있는 셈이다.
광주북구갑 등 호남 지역 6개 당협위원장 자리를 교체 대상으로 지목한 부분도 도마에 올랐다. 강원 지역은 교체 대상이 전무했고, 충청지역은 4개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많은 수치다.
당내 핵심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다른 건 몰라도 호남 지역 위원장들을 대거 잘라낸 점은 이해할 수 없다"며 "솔직히 호남은 당선 가능성이 거의 0%에 가까운데 김진태 전 의원은 살리고 호남에서 고생한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쳐내면 누가 납득하겠냐"고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하면 내년 4월 임기 만료를 앞둔 김 위원장이 정치적 생명 연장을 위해 포석을 두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또 다른 지도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내부 회의에서도 팽팽한 논의가 있었는데 요새 김진태 전 의원이 잠잠해서 정상 참작을 받은 거 같다"며 "김 위원장이 비대위 임기 후 또 다른 다음 스텝을 준비하기 위한 한발짝 양보한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당내 한 관계자는 "민 전 의원과 김 변호사는 당에서 피해를 본다고 해서 태극기세력이 들고 일어나 보호해줄 만한 대상이 아니다"라며 "노회한 김종인 위원장이 이미지만 태극기세력과 관련 있는 사람은 교체시키고 진짜 실세들과는 타협하는 등 고수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