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권에 힘을 싣는 검경수사권 조정과 이에 따른 경찰개혁이 내년 1월 시행됨에 따라 여성 치안 정책도 진화를 예고하고 있다. 특히 속도를 내고 있는 '스토킹 처벌법'은 수사권 조정을 국민들이 실제 체감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경찰은 강조한다. 부임 1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23일, 조 기획관을 서울 통일로 사무실에서 만나 그동안의 소회와 향후 계획 등을 들어봤다.
"국민들 일상에 영향을 주고 수사권 조정을 체감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으로 보여요."
조 기획관은 이번에 정부가 마련한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 처벌법)에 대해 이 같이 평가했다. 그간 '경범죄'로 분류돼 온 스토킹 범죄는 이번 법안이 통과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흉기를 사용한다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 수위가 높아진다.
처벌뿐만 아니라 경찰이 주목하는 것은 가해자, 피해자 분리를 할 수 있는 '예방응급조치'다. 이제까지 해당 조치를 위해선 경찰이 검찰에 신청하고, 검찰에 법원에 청구하는 '3단계'를 거쳐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지체되는 시간은 빠른 분리 조치를 해야 하는 스토킹 범죄 특성상 '치명타'였다. 법안 제정 과정에서 경찰은 법원에 바로 조치를 청구할 수 있는 '2단계' 단축을 거세게 주장했고 관철시켰다. 조 기획관은 "협의 과정에서 마치 '녹음기'를 튼 듯이 반복해서 의견을 주장했다"라고 말했다.
조치가 받아들여지면 가해자는 피해자나 주거지로부터 100m 이내 접근할 수 없고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도 금지된다. 만약 이를 어긴다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아울러 경찰은 조치가 긴급해 판사의 승인을 받을 수 없을 경우 경찰서장이 직권으로 분리 조치를 할 수 있는 '긴급응급조치'도 법안에 반영했다.
스토킹 처벌법은 지난 24일 차관회의에 상정됐고, 다음 주 국무회의 심의가 예정돼 있다. 이후 대통령 재가를 거쳐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조 기획관은 "1999년 15대 국회 때 발의된 이후 5대 국회에 걸쳐 꾸준히 발의돼 왔는데 통과가 안 된 유일한 법이 스토킹 처벌법"이라며 "이번 정부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21대 국회에서 발의돼 있는 의원 입법안과 병합 심사해 내년 초나 상반기에는 통과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여성안전전략협의체 정례화"…"n번방 피해자 1011명 보호·지원"
지난해 12월 부임한 조 기획관은 "데이트 폭력을 규제할 수 있는 법안이 미비해 빠르게 통과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스토킹 처벌법은 그 일환이다. 또 다른 각오는 "경찰 각 부서에 흩어져 있는 여성 안전 관련 업무를 모으고 정부부처, 시민단체, 학회 등과 소통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지난 1년 업무 연계와 소통에 집중했다.
조 기획관은 "여성 안전과 관련된 경찰청 내 9개 과와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회의를 하는 '여성안전전략협의체'를 끌어온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대외적으로는 각계, 여성단체와 NGO 등으로 자문단을 지난 5월 꾸려 분기별로 회의를 진행했다"라고 말했다.
부임 후 호기롭게 시작한 협의체지만 경찰 생활에 익숙해질수록 부담도 느꼈다고 한다. 9개 과가 여성 안전과 관련된 업무를 하긴 하지만 대부분 직제상 조 기획관 산하의 과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러 기능 소속 과들이 경찰청장 및 차장 주재 외에 정기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처음에는 당당하게 소집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본청 과장들은 총경급으로 최소 각 지역의 경찰서장은 한, 두 번 거치신 분들"이라며 "외부에서 와서 쟁쟁한 인원을 대상으로 추동력을 발휘해 이끈다는 게 쉽지 않았다"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조 기획관은 여기에 굴하지 않았다. 경찰에 오기 전 국회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상임위 전문위원이나 베테랑 보좌관을 섭외해 '법안 통과' 노하우 등 강연을 하게 했다. 예산 시즌에는 '국회 200% 활용하기' 등을 교육했다. 코로나19가 잠잠했던 시절에는 회식을 주재해 상식 퀴즈 등을 내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조금씩 조직에서 "신선하다", "재미있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협의체 출석률은 계속해서 상승세를 그렸다.
조 기획관은 피해자 보호 매뉴얼과 체크리스트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9개 항목의 체크리스트로 △가명조사 △동성(同姓) 경찰 조사 △신뢰 관계인 동석 △국선 변호인 선임 등을 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일선서에 정착한 피해자 보호조치로, 현재까지 보호‧지원을 받은 피해자 규모는 1011명에 이른다. 특수본은 연말 해체되지만 보호 체계는 그대로 가동된다.
조 기획관은 '제2의 n번방'을 막기 위한 대책과 관련 "디지털성범죄는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계속 진화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과기정통부 등과 협조해 첨단 수사기법을 개발해야 한다"며 "수사관이 잠입할 수 있는 '함정 수사' 합법화도 빨리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성범죄가 한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중대한 사회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이 중요하다"며 "피의자 중에 닉네임 '와치맨'이 있는데 우리는 역으로 '와치유', 대한민국 사회는 너희들을 보고 있고 감시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국수본 신설, 수사와 정책 파트 협업 체계 강화해야"
수사권 조정과 경찰개혁에 따라 내년에는 수사를 전담하는 국가수사본부가 신설되고 자치경찰제가 도입된다. 경찰은 경찰청장이 지휘하는 '국가경찰', 국수본부장이 지휘하는 '수사경찰', 시도자치경찰위원회가 지휘하는 '자치경찰'로 나눠지며 '한지붕 세가족' 형태가 된다.
경찰 내 여성청소년계가 맡는 수사 기능도 국수본으로 넘어간다. 지난 2015년 여청계가 출범한 지 5년 만에 내부 기능이 갈라지는 셈이다.
이어 "수사와 이를 뒷받침 하는 정책 파트가 유기적으로 갈 수 있게끔 협업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며 "내년부터는 여성안전전략협의체가 기존 9개과에서 12개과 참여로 확대되는데,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 기획관이 속한 생활안전국 개편에 따라 그의 역할도 커졌다. 아동·청소년 안전 업무를 추가로 맡으면서 직책명은 '여성청소년안전기획관'으로 변경된다.
그는 "앞으로 중앙부처 차원에서 협업을 해서 풀어야 할 문제가 많을 것"이라며 "예를 들어 가정폭력 피해 청소년의 경우 여성가족부는 운영하는 쉼터가 있지만 여러 기준으로 경찰이 피해 청소년을 보내는 것이 한계가 있다. 차비 지원조차 쉽지 않아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2009년부터는 국회에서 입법조사관으로 근무하며 여성·가족·청소년 지원업무를 맡았다. 10년 가까이 일한 직장이자 정년이 보장된 자리였지만, 2019년에 당시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의 정책보좌관으로 미련없이 자리를 옮겼다. 이후 11개월 근무를 마친 뒤 경찰청 첫 여성안전기획관에 임명됐다. 조 기획관은 "뭔가를 계획하진 않았고, 매 순간을 열심히만 살면 그 대가로 뭔가 길이 열리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라고 회상했다.
최근 조 기획관의 고민은 공직사회에서의 '여성주의 리더십' 실현이다. 그는 "경찰이라는 촘촘한 계급사회에서 평등, 연대, 상생, 공존의 리더십을 어떻게 행사할지 항상 고민하고 있다"며 "새로운 세상에 대한 조금 더 넓은 시야, 인간에 대해 우리에 대해 좀더 깊게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직원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