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미개봉 중고"…20학번 대학 새내기의 자조

[코로나19 1년을 돌아보다③]코로나 세대 덮친 우울감
일상 뺏긴 새내기들 "있었는데 없었다", "고교 4학년"
입학식부터 엠티, 축제까지 모두 취소…"이게 아닌데"
청년 덮친 '코로나블루', 실업·자살률 모두 심각
전문가들 "최소 2년 동안 온라인·공적지원 늘려야"

※지난해 말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11개월 전인 올해 1월 20일 국내에 처음으로 상륙했다. 누적 확진자는 5만여명을 돌파하며 언제 끝날지 모를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공장이 멈추고 집 앞 상가의 문은 닫혔다. 가족과 친한 친구를 떠나보내게 될까 마음을 졸여야만 했다. '가장 큰 규모이자 장기적인 유행'이 될 것이라는 '3차 대유행' 위기 속 2020년을 돌아봤다.[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지독했던 코로나가 남긴…확진과 완치 그 사이에서
②'코로나 돈가스집' 누명에 폐업…아직 배상 못받았다
③"우린 미개봉 중고"…20학번 대학 새내기의 자조
(계속)
(사진=연합뉴스)
"저희가 딱 미개봉 중고품이죠."

미개봉 중고.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흔히 쓰는 말로 중고품이지만 포장조차 뜯지 않은 새 물건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최근 사람을 수식할 때도 쓴다. 바로 올해 대학에 입학한 20학번 '새내기'들의 자조섞인 한탄이다.


한양대 1학년 이아현(19)씨는 "설레는 대학생활을 꿈꿨지만 입학식, 엠티(MT), 축제 어느 하나도 하지 못 했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대부분 대학은 한 해 동안 비대면 강의를 진행했다. 신입생들은 중간·기말고사 기간을 제외하면 학교조차 가지 않고 1학년을 마쳤다.

◇무너진 새내기 낭만…"꿈꾸던 대학생활은 어디에"

위 사진은 아래 기사와 관련없음(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새내기들은 처음부터 일상을 뺏겼다. 연초 새터(새내기배움터)나 예비대학 일정이 취소되더니 입학식까지 없던 일이 됐다. 1년이 지났지만 선배는 물론, 동기들조차 직접 만나 밥을 먹거나 시간을 보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20학번들은 그야말로 '랜선 친구'다.

대학생활의 꽃인 동아리나 학회 활동은 먼나라 이야기다. 선배나 동기 권유로 가입했더라도 줌(ZOOM)이나 카카오톡 등 온라인 활동만 하다보니 소속감도 즐거움도 크지 않다. 건국대 1학년 이태희(19)씨는 "사진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한 번도 선배들을 만난 적은 없다. 서로 찍은 사진만 카톡으로 올리는 게 전부"라면서 "이런 대학생활이라면 군에 입대할 걸 그랬다는 말을 친구들끼리 자주 한다"고 했다.

집에만 있는 답답함에 우울감을 호소하는 경우도 적잖다. 명지대 1학년 김모(19)씨는 "아는 사람도 없고 온라인 수업만 듣다보니 차라리 다시 수능을 볼까 생각도 했다"며 "공부를 하든 영화를 보든 운동을 하든 시시때때로 오는 우울감이 그닥 해소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20학번들 "등록금 아깝다…내년 신입생 맞이도 막막"

(사진=연합뉴스)
신입생들은 비대면 온라인 강의에 대한 만족도가 대체로 낮은 편이었다. 건축학과에 다니는 이씨는 전공수업이 부실하게 이뤄진다는 점을 짚으면서 "온라인 강의라지만 사실 인강(인터넷강의)을 보는 기분이다. 실습이나 과제도 생각만큼 못 해 등록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몇달 뒤 새내기를 맞이하는 '옛 새내기' 심정은 어떨까. 한국외대 1학년 박모(19)씨는 "'있었는데 없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다"며 "학생식당 밥을 먹은 기억도 없고 교내 헬스장이나 동아리방이 어딘 지도 모른다. 후배한테 알려줄 학교 앞 숨은 맛집도 없다"고 말했다.

건국대에 다니는 이씨는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라 21학번도 우리랑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로 학교를 다니게 될 것 같다"라며 "피차 모르니 같이 하나씩 배워가면 될 것 같다"라고 웃었다.

◇청년층 파고든 코로나 우울…2030세대 30%25가 "코로나 실업 경험"

(사진=연합뉴스)
코로나 재난은 사회 진출을 앞둔 청년들의 삶에도 깊게 파고들었다. 청년층의 '코로나 우울'은 새내기 만큼,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한 상태다. 이들의 우울은 단순한 감정이 아닌 삶과 현실에 기반해서다.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가 서울시 거주 청년(19~34세) 201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지난 2월 이후 실업을 경험한 청년은 30%에 이른다. 최종학력이 고졸 이하(44%)나 전문대 재학(39%)인 응답자가 4년제 대학을 졸업(19.7%)한 응답자보다 2배 이상 실업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일터에서 권고사직이나 해고를 당한 '비자발적 실업'을 겪은 경우 10명 중 6명(57%)은 실업급여를 못 받고 있었다. 응답자의 29%가 월세나 생활비를 연체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코로나19 영향으로 주거를 이전한 청년도 전체의 11%나 됐다.

◇여성이 더 취약…전문가들 "온라인서비스 도입 등 '청년맞춤지원' 늘려야"

20학번 신입생 생활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SNS(페이스북) 페이지 만화(사진=페이스북 '대학생 몽글이' 캡처)
청년 중에서도 여성이 남성보다 코로나19에 더 취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자살 사망자는 모두 9755명이다. 남성 6732명, 여성 3023명으로 남성이 여성의 2배 이상이다. 문제는 추세다. 남성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9%포인트 줄었지만 여성은 5%포인트 늘었다.

특히 올 상반기 20대 여성 자살자는 296명으로 전년(207명)보다 30% 증가했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20대 여성의 자살 및 심리상담 건수도 지난 3월 약 200건에서 7월 450건까지 급증했다. 주지영 부센터장은 "20대 여성은 낮은 자존감과 외로움, 경제적 문제, 주거불안, 범죄노출 등을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모(26)씨는 "취업 준비차 찾은 컨설팅 회사에서 코로나19 때문에 인턴도 쉽지 않다는 말을 듣고 더 좌절감을 느꼈다"며 "카페까지 못 가게 돼 집에서 거의 모든 취업준비를 한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집 밖도 거의 안 나가 의지가 사라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청년지원 서비스가 너무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박건우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원은 "청년층일수록 온라인 기반의 자살예방 전략이 필요하다"라며 "라인(LINE)을 기반으로 자살예방 서비스를 도입해 고위험 청년층 관리에 성공한 일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코로나19가 2021년 말까지 계속된다고 생각하면 최소한 앞으로 2년 동안은 공공일자리나 생계 지원금, 교육훈련 기회 등 실질적인 공적지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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