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중간간부이자 다주택자인 B씨(48)는 요즘 살맛이 난다. 갭투자로 3주택을 보유했던 그는 최근에 서울의 아파트 한채를 수억원의 차익을 남기고 매각했다. 내년부터 세금이 크게 올라 한채를 더 팔까도 고민도 했지만, 오르는 세금보다 집값이 더 많이 올라 그냥 몇년 더 보유할 생각이다. 수중에 들어온 목돈을 어디에 투자할지 고민중이라는 B씨는 "일단 차를 한대 사고, 주식에 좀 투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돈 풀어 위기대응…시중 풀린돈 3150조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 5월 기준금리를 0.50%로 인하했고,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0%대 기준금리 시대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부 역시 1,2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비롯한 전례없는 확장적 재정정책과 자영업자 등을 대상으로 한 각종 대출 지원책을 펴면서 위기에 대응하고 나섰다.
돈을 푸는 방식으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소득층, 그리고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등을 지원하겠다는 것으로, 실제 시중에 풀린 돈은 연일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지난 1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0월중 통화 및 유동성'에 따르면 시중 통화량은 광의통화(M2) 기준 3150조 5천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월 대비 278조 6천억원(9.7%) 늘어난 수치다.
◇돈은 자산시장으로…부동산·주가 '폭등'
문제는 풀린 돈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에 쓰이기도 하지만, 상당액이 부동산과 주식시장 등 자산시장으로 향하고 있다는데 있다.
전년 동월 강북지역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6억 3812만원, 강남지역은 10억 3386만원이었다는 점에서 단 1년 사이 각각 26%(1억 6548만원)와 18%(1억9074만원) 상승한 것.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한 전국적인 집값 폭등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맞물려 있기는 하지만, 저금리와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인한 유동성 공급 역시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다.
◇자산격차 심화…'부자는 더 부자됐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지난 6일 발표한 소득 상위 10~30% 대상((4천가구)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평균 순자산은 6억 4600만원으로 1년 전에 비해 2억 1300만원(49.2%) 늘었다.
근로소득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득 상위 계층은 보유한 부동산과 주식 등 금융자산이 늘어나며 1년 만에 순자산이 50% 가까이 증가했다.
통계청 등이 17일 발표한 ‘2020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저소득층인 소득 1·2분위의 부채 증가율은 각각 8.8%, 8.6%로 지난해 0.2%, 2.9%보다 크게 늘었다.
또,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현재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755조 1천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0.25%(70조 2천억원) 늘어나며 반년만에 지난해 한해 증가율을 웃돌았다.
대출자 수도 같은기간 191.4만명에서 229.6만명으로 16.6%(38.2만명) 증가했다. 역시 반년 사이 지난해 전체 대출자 증가폭(14.4만명)의 2.5배를 넘어섰다.
◇"양극화 심화는 한국경제 전체에 부담"
연세대 경제학부 성태윤 교수는 "최근 생계자금이나 사업자금 형태로 자금을 조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는 소득이 낮은 분들의 생활이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이것은 개인의 문제 뿐만 아니라 전체 가처분 소득을 감소시키면서 전반적인 경기상황을 끌어내리고, 이후 이들이 부채 원리금 상환 압박에 시달리면서 전반적인 금융위험도 증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한편으로 경기위기 속에서도 자산가격 상승으로 '부익부(富益富)'가 심화되는 것 역시 장기적으로 한국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뚜렷한 해법도 없는 상황이다. 원로경제학자 윤원배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유동성이 많이 풀렸다고 하지만 저소득층이나 영세 자영업자 등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은 이들 수중에는 돈이 없다"면서 "그렇다고 가계부채가 늘어나고 자산시장 가격이 급등한다고 돈줄을 조일 수도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금융정의연대 김득의 대표는 "제로금리 수준으로 금리가 낮아져도 신용등급이 좋은 고소득자만 더 이득을 보지 고금리 대출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저소득층이나 영세 자영업자에게는 사실 큰 혜택이 돌아가기 힘들다"라며 "취약계층이 저금리는 아니더라도 중금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당장 필요한 임대료 지원 등 맞춤형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