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공급의 딜레마…'부익부빈익빈' 뉴노멀이 되다

[코로나 시대 한국경제①]
돈 풀어 위기대응…시중 풀린돈 3150조원
돈은 자산시장으로…부동산.주가 '폭등'
자산격차 심화…'부자는 더 부자됐다'
"양극화 심화는 한국경제 전체에 부담"

코로나19 사태로 한국경제는 전에 없던 위기에 봉착했다. 마이너스 성장률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자영업자가 폐업하는가 하면 실업자가 양산되는 등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반면, 최악의 실물경제와 달리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다른 한편에서는 코로나19 극복을 얘기하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극과극의 상황이 공존하는 코로나19 사태 속 2020년 한국경제를 되돌아 보는 연속기획을 마련했다.[편집자 주]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자영업자이자 무주택자인 A씨(43)는 최근 유행하는 '벼락거지'라는 말이 누구보다 가슴에 와닿는다. 물건 하나라도 더 팔기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빚만 늘어날 뿐이다. A씨는 "코로나 이전에는 그나마 버틸만 했는데 지금은 희망이 안보인다"라며 "주변에 부동산·주식에 투자해 돈 벌었다는 사람들도 많던데 왜 나만 죽기살기로 일해도 자꾸 뒤쳐지는지 모르겠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대기업 중간간부이자 다주택자인 B씨(48)는 요즘 살맛이 난다. 갭투자로 3주택을 보유했던 그는 최근에 서울의 아파트 한채를 수억원의 차익을 남기고 매각했다. 내년부터 세금이 크게 올라 한채를 더 팔까도 고민도 했지만, 오르는 세금보다 집값이 더 많이 올라 그냥 몇년 더 보유할 생각이다. 수중에 들어온 목돈을 어디에 투자할지 고민중이라는 B씨는 "일단 차를 한대 사고, 주식에 좀 투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돈 풀어 위기대응…시중 풀린돈 3150조원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사상 유례없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몰고온 역대급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가 돈을 풀어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 5월 기준금리를 0.50%로 인하했고,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0%대 기준금리 시대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부 역시 1,2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비롯한 전례없는 확장적 재정정책과 자영업자 등을 대상으로 한 각종 대출 지원책을 펴면서 위기에 대응하고 나섰다.

돈을 푸는 방식으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소득층, 그리고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등을 지원하겠다는 것으로, 실제 시중에 풀린 돈은 연일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지난 1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0월중 통화 및 유동성'에 따르면 시중 통화량은 광의통화(M2) 기준 3150조 5천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월 대비 278조 6천억원(9.7%) 늘어난 수치다.

◇돈은 자산시장으로…부동산·주가 '폭등'


문제는 풀린 돈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에 쓰이기도 하지만, 상당액이 부동산과 주식시장 등 자산시장으로 향하고 있다는데 있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KB국민은행이 집계한 월간 KB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 11월 서울 강북지역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8억 360만원, 강남지역은 12억 2460만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월 강북지역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6억 3812만원, 강남지역은 10억 3386만원이었다는 점에서 단 1년 사이 각각 26%(1억 6548만원)와 18%(1억9074만원) 상승한 것.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한 전국적인 집값 폭등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맞물려 있기는 하지만, 저금리와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인한 유동성 공급 역시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부동산과 함께 대표적인 자산시장인 증시 역시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팬데믹 초기인 지난 3월 19일 1439.43까지 폭락했던 코스피 지수는 코로나19 이전 수치를 회복한 것은 물론이고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며 2800선을 바라보고 있다.

◇자산격차 심화…'부자는 더 부자됐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코로나19 사태로 실물경제는 사상 최악을 경험하고 있지만 위기 극복을 위해 풀린 유동성을 바탕으로 자산시장은 활황을 거듭하면서 자산 격차 확대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지난 6일 발표한 소득 상위 10~30% 대상((4천가구)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평균 순자산은 6억 4600만원으로 1년 전에 비해 2억 1300만원(49.2%) 늘었다.

근로소득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득 상위 계층은 보유한 부동산과 주식 등 금융자산이 늘어나며 1년 만에 순자산이 50% 가까이 증가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반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저소득층과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은 빚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실정이다.

통계청 등이 17일 발표한 ‘2020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저소득층인 소득 1·2분위의 부채 증가율은 각각 8.8%, 8.6%로 지난해 0.2%, 2.9%보다 크게 늘었다.

또,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현재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755조 1천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0.25%(70조 2천억원) 늘어나며 반년만에 지난해 한해 증가율을 웃돌았다.

대출자 수도 같은기간 191.4만명에서 229.6만명으로 16.6%(38.2만명) 증가했다. 역시 반년 사이 지난해 전체 대출자 증가폭(14.4만명)의 2.5배를 넘어섰다.

◇"양극화 심화는 한국경제 전체에 부담"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한국경제의 약한 연결고리인 저소득층과 영세 자영업자들이 코로나19 사태로 빚만 급격하게 늘어나는 '빈익빈(貧益貧)' 현상이 가속화 되는 것은 결국 경제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연세대 경제학부 성태윤 교수는 "최근 생계자금이나 사업자금 형태로 자금을 조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는 소득이 낮은 분들의 생활이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이것은 개인의 문제 뿐만 아니라 전체 가처분 소득을 감소시키면서 전반적인 경기상황을 끌어내리고, 이후 이들이 부채 원리금 상환 압박에 시달리면서 전반적인 금융위험도 증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한편으로 경기위기 속에서도 자산가격 상승으로 '부익부(富益富)'가 심화되는 것 역시 장기적으로 한국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7일 "자산가격 상승이 자산 불평등 확대와 금융불균형 누증과 같은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코로나19 확산 이후 저금리 지속에 대한 기대가 높은 가운데 자산가격이 급등하고 있지만, 과거와 같이 '부의 효과'를 통해 성장을 촉진하는 선순환 효과는 제한적인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그렇다고 뚜렷한 해법도 없는 상황이다. 원로경제학자 윤원배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유동성이 많이 풀렸다고 하지만 저소득층이나 영세 자영업자 등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은 이들 수중에는 돈이 없다"면서 "그렇다고 가계부채가 늘어나고 자산시장 가격이 급등한다고 돈줄을 조일 수도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금융정의연대 김득의 대표는 "제로금리 수준으로 금리가 낮아져도 신용등급이 좋은 고소득자만 더 이득을 보지 고금리 대출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저소득층이나 영세 자영업자에게는 사실 큰 혜택이 돌아가기 힘들다"라며 "취약계층이 저금리는 아니더라도 중금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당장 필요한 임대료 지원 등 맞춤형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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