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굽실대고 뒷통수쳐야 안 잘리지"…동양극장 2020

국립극단 신작 '동양극장 2020' 온라인으로 선보여
무대와 객석 위치 바꿔 공연…객석을 안방처럼
블랙코미디에 실소, 신파극에 눈물
빨리감기, 나레이션 후시 녹음 등으로 온라인 관극 재미 높여

1부 천국에서 왔다는 사나이 중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제공)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온라인으로 공개한 국립극단 신작 '동양극장 2020'은 무대와 객석의 위치를 바꿨다. 배우는 간이 무대가 놓인 객석에서 연기하고, 관객은 의자를 배치한 무대에서 연극을 관람했다.

동양극장 안내원으로 분한 배우들을 따라 극장에 들어선 관객을 처음 맞는 건 디자인이 제각각인 60개의 의자다. 의자 옆에는 조명이 은은한 스탠드와 차 한 잔, 손수건이 놓여 있다. 안방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기 위한 배려다. 윤시중 연출은 "코로나19 시대이다 보니 관객의 의미가 더 중요하게 다가왔다. 관객이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고 했다.


동양극장 안내원으로 분한 배우들(사진=국립극단 제공)
안내원들은 관객에게 '연극 차림표'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1부 '천국에서 왔다는 사나이'는 공연시간이 30분이지만 앵콜을 부르는 마성의 연극이죠. 2부에서는 '어머니의 힘'을 준비했습니다. 50분 동안 맛있게 보시다가 눈물이 나면 전용 손수건을 사용해 보세요."

동양극장은 일제강점기 우리 힘으로 세운 첫 연극 전용 극장이었다. 동양극장 2020은 당시 국민에게 삶의 위안과 즐겨움을 안겨준 두 작품을 동시대에 맞게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준다. 천국에서 왔다는 사나이는 국내 초연이고, 어머니의 힘은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와 함께 1930년대 동양극장 최고 히트작이었다. 당시 극장들은 관객의 다양한 취향을 충족시키기 위해 하루에 여러 편의 공연을 연속으로 선보였다.

"솥까지 빼앗겼으니 이제 어째요?"(극중 아내)
"쌀도 없는 판에 솥은 있어 뭐해. 다 가져가라고 하지. 하하(남편)

천국에서 왔다는 사나이는 시인 김기림의 희곡이 원작이다. 30분 동안 실업, 산업화, 자살 등 1930년대 사회적 이슈를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풀었다. 일터에서 쫓겨난 주인공이 "불경기라서 사장님이 30명 목을 잘랐다"고 하소연하자 되레 "굽실거리고 뒷통수칠 줄 알아야 안 잘리지"라고 나무라는 장면, 차라리 천국행을 택한 주인공에게 천국 문지기가 "천국은 대만원"이라며 지상으로 돌려 보내는 장면 등이 실소를 머금게 한다.

동양극장 전속극단 '호화선'의 인기작인 어머니의 힘은 기생 출신 여성이 폐병을 앓다 죽은 화가 남편과 자유연애로 낳은 아들 양육 문제를 놓고 남편 집안과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형적인 신파극이지만 곳곳에 따뜻한 인간애가 스며들어 있어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적잖다. 윤시중 연출은 "시대가 변해도 모성과 사랑 같은 감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빨리 감기, 나레이션 후시 녹음을 도입하는 등 온라인 상에서 보는 재미를 높이기 위해 편집에 공을 들였다.

당초 지난 9월 백성호장민호극장에서 대면 공연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가 심해지면서 온라인 극장에서 선보였다.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의 일환이다. 국립극단 온라인 극장은 올해 시범 운영 후 내년 정식으로 문을 연다.
2부 어머니의 힘 중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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