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동안 정호다완(井戶茶碗)을 연구해온 도예가 김종훈(48)의 말이다. 정호다완으로 불리는 찻사발들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 작품이다. 일본에서는 '이도다완'으로 불린다. 막사발과 혼동해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임진왜란 이후인 17~19세기에 제작돼 서민들이 사용했던 도자기를 일컫는 막사발과는 다르다.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은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조선에서와 달리 기술직으로 존중받는 일본에 눌러앉은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조선에서는 도공이 없어 왕실에서도 목기로 제사를 지낸 시기가 있을 정도였다. 18세기 중반부터는 오히려 일본에서 도자기를 들여오는 처지가 됐다. 결국 조선에서는 명맥이 끊겼고 일본에서 그 전통이 이어지게 됐다.
김종훈은 수십 차례 일본을 찾아 보물급 다완(찻사발)을 직접 보고 조선 도공들의 맥을 잇고자 했다. 좋은 흙을 찾아 전국을 다녔고, 수백 번의 실험을 거듭하며 유약을 만들었다. 아내인 도예가 문지영과 함께 경기도 여주로 집을 옮겨 장작가마를 짓고 작업 중이다.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 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춘추 IV. 황중통리: 김종훈 도자' 전은 김종훈이 최근 3년간 제작한 찻사발 78점과 백자 대호 6점을 전시 중이다.
차를 담은 정도에 따라 빛깔이 다른 사발 3개에서 세월에 따라 차가 스며들어 완성되는 찻사발의 빛깔과 모양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김종훈은 이를 "다인(茶人)이 하는 소묘"라고 했다.
일본에 끌려간 조선 도공이 표면에 '朝鮮八道'(조선팔도) 등을 써넣은 17세기 '팔도 다완'도 함께 전시 중이다. 17세기 일본에 끌려간 조선 도공의 후예로 추정된다. 고향의 지명을 떠올리며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평안도, 강원도를 나란히 한문으로 남겼다. 슬프고도 아련한 사연을 담았다.
찻사발 굽 부위에 매화피(梅花皮)가 피어있다. 유약이 뭉쳐 매화나무 등걸처럼 표면에 나타난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18세기 달항아리 1점과 김종훈의 달항아리 6점도 함께 선보였다. 17~18세기 도자기와 나란히 놓인 김종훈의 찻사발과 달항아리가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옛것을 배우고 익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학고창신'(學古創新)에서 이름을 딴 학고재는 학고창신 실현을 목표로 지난 2010년부터 '춘추'라는 제목의 기획전을 열어왔다. 이번이 네 번째 전시다. 전시 제목 중 '황중통리'(黃中通理)는 주역 곤괘에서 땅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말이다.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정호다완에 한없이 깊은 대지의 색과 자식만을 위하는 어머니의 덕이 담겨 있다는 생각에서 전시 주제로 삼았다. 전시는 오는 27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