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런치송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본인의 감성이 가득 담긴 '자기 노래'를 발표하기 시작한 권태은 음악감독이 지난달 26일 두 번째 정규앨범 '누구도 섬이 아니다'로 돌아왔다. 2018년 4월 낸 '여담'(餘談) 시리즈 파트 6 이후 2년 7개월 만이고, 정규앨범으로만 따지면 무려 7년 만의 신작이다. 그동안 'K팝스타', '슈퍼스타K', '팬텀싱어', '판타스틱 듀오', '더 팬', '슈퍼밴드', '보이스 코리아', '트로트의 민족', '싱어게인', '포커스'까지 매년 다양한 음악 방송 음악감독을 맡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던 탓이다.
'누구도 섬이 아니다'에는 동명의 1번 트랙 '누구도 섬이 아니다'를 시작으로 총 13곡이 실렸다. 호피폴라의 홍진호가 피처링한 타이틀곡 '행복이 널 찾아내길', 김현철이 피처링한 '엄마가 해준말', 포레스텔라가 피처링한 '딴따라 블루스', 임선호와 협업한 '소리', 조정현과 함께한 '브레이킹 블루'(Breaking Blue), 이서연과 같이한 '1985', 포르테 디 콰트로의 손태진이 피처링한 '바라만봐도 좋아요', 브릴란떼 어린이 합창단이 부른 '행복이 널 찾아내길' 등 어느 때보다 협업의 비중이 높다.
권태은 음악감독은 지난 7일 CBS노컷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모두 단절되고 섬처럼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연결돼 있고 좋은 영향을 나눌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이번 앨범의 테마를 '누구도 섬이 아니다'로 정했다고 밝혔다. 13곡으로 꽉 찬 앨범에 관한 풍성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바쁜 일상 중간 잠시 쉴 수 있는 점심시간 같은 음악을 만들겠다는 의미로 '런치송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권태은 음악감독. 그는 여전히 좋은 음악을 찾아 듣고 감동받으며, '이런 작품을 나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아직 있기에 조금 덜 지치며 음악을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다음은 권태은 음악감독과 나눈 일문일답 전문.
1. 지난달 26일 두 번째 정규앨범 '누구도 섬이 아니다'를 발매했습니다. 정규앨범으로는 2013년 '어쿠스틱 에너지'(Acoustic Energy) 이후 7년 만인데요.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 음악감독을 하느라 바쁠 것 같은데 언제부터 작업을 시작했는지 궁금합니다.
런치송프로젝트는 2010년부터 시작했고 올해 2020년이 딱 10주년 되는 해가 되었습니다. 정규 1집 발매 이후 런치송 프로젝트 '여담' 시리즈로 싱글 음원도 간헐적으로 발매를 하였는데요. 곡을 만드는 작업은 수년 전부터 틈틈이 해 왔고, 본격적으로 이번 10주년 앨범 발매를 목표로 곡을 정하고 녹음 작업을 시작한 건 올해 6월부터인 거 같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절이잖아요. 누구나 살면서 외로움이 더해지는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데요. 한 명 한 명이 섬처럼 사는 것 같지만 결국 우리는 외로운 섬이 아니고 모두 물밑으로는 연결되어 있고 좋은 영향을 주고받고 나눌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섬이 아니다'를 제목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3. 타이틀곡 '행복이 널 찾아내길'뿐 아니라 네 곡을 제외한 모든 곡에서 다른 가수들과 협업했습니다. 어떤 배경으로 섭외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또 녹음할 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협업을 해주신 아티스트분들이 모두 오랜 시간 저와 함께 인연을 맺어온 분들인데요.
클래식 크로스오버 그룹 포레스텔라는 '딴따라 블루스'라는 곡에 그리고 포르테 디 콰트로의 손태진씨는 '바라만봐도 좋아요', 호피폴라의 첼리스트 홍진호씨는 타이틀곡 '행복이 널 찾아내길'에 함께해줬는데요. 모두 '팬텀싱어'와 '슈퍼밴드'라는 오디션 프로에서 음악감독과 참가자로 만나게 된 인연으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작곡가로 일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멘토가 되어주고 계시는 김현철 선배님께서도 '엄마가 해준말'이라는 의미 있는 곡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음악프로와 음반 작업에서 오랜 시간 함께해오고 있는 연주자들이 협업을 해 주셨는데 가장 신경을 많이 쓴 주제 음악인 1번 트랙 '누구도 섬이 아니다'에는 팝 클래식 재즈 씬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피아니스트 이진주씨가 피처링으로 함께 해줘서 그동안 제가 발표해온 음악 중에 가장 스케일이 크고 다이내믹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던 거 같구요. 이외에도 기타리스트 임선호씨와 재즈트럼페터 조정현씨와 첼리스트 이서연씨가 참여한 연주곡들도 다수 수록되어 있습니다.
4. 전반적으로 다양한 악기가 풍성하게 쓰여서 귀를 기울이게 되는 동시에, 가창자의 목소리도 묻히지 않고 존재감을 발휘한다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프로듀싱하면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그동안 발표한 음악들은 모두 제가 혼자 노래를 하는 방식의 작업이어서 고민의 지점이 단순한 반면에 이번 앨범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피쳐링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참여한 아티스트들의 성향과 결에 맞는 멜로디와 가사 편곡 등을 구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세심하게 작업을 하였습니다.
5. 6번 트랙 '브레이킹 블루'는 '정해진 코드와 화성이 없다'라는 설명을 보았습니다. 그게 오히려 더 만들기 어렵지 않았나요? 또, 즉흥 연주가 필요한 만큼 트럼페터의 역량도 중요했을 것 같은데 조정현 씨에 관한 이야기를 같이 들려주세요.
이번 음반에 개인적인 음악적 실험이나 해보고 싶었던 중요한 작품이 있다면 앞서 말씀드린 피아니스트 이진주씨와 함께 한 '누구도 섬이 아니다'였구요. 그리고 또 한 곡이 '브레이킹 블루'입니다. 일렉트로닉 기반의 리듬과 음향으로만 트랙이 진행되는데요. 화음과 조성이 잘 인지되지 않고 타격감이 주가 되는 무조성 음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조정현씨는 재즈와 대중음악 씬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스팅 내한 공연 때 협업하기도 했던 트럼페터인데 스튜디오에 놀러 온 날 트랙을 들려주고 즉흥적으로 연주를 녹음 받은 결과물 그대로를 수록했습니다. 그래서 더 날것의 느낌, 그리고 조정현씨가 처음 들은 무조성 음악의 낯선 이미지가 잘 반영된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생소한 시도이지만 의미 있는 결과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이 점심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치열하고 바쁜 일상의 중간에 잠시 쉴 수 있는 점심시간 같은 음악을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아 이름을 런치송 프로젝트라고 지었습니다.
7. 음악 쪽으로 진로를 생각한 계기는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음악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동경과 생각이 있었고 조금 늦은 나이지만 군 제대를 하고 나서 작곡가로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그때부터 습작물을 많이 만들기 시작했고 그 데모 작품들을 들고 기획사에 무작정 찾아다닌 시절이 있었네요. 99년 무렵부터 핑클, 샤크라, 디바 등등 그 당시 아이돌 작업을 시작으로 작곡가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8. 작사, 작곡, 편곡, 가창, 연주, 프로듀싱 등을 두루 경험해서 각각의 매력을 더 잘 알 것 같은데 어떠세요?
작사·작곡은 호흡과도 같이 늘 생활하면서 떠오르는 걸 메모해두는 편이구요. 편곡은 하면 할수록 작사·작곡보다는 훨씬 고민하고 공부해야 할 부분이 많은 어려운 영역인 거 같아요. 연주자와 악기 특성 등등 매번 다 경험한 것 같지만 작업할 때마다 어렵다고 느껴집니다. 두 영역 모두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즉흥성과 꾸준한 지속성 그 사이에서 고민하다 만족할 만한 음악적인 결과물이 나올 때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9. 음색과 창법이 깨끗하고 담백해서 듣기 더 편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본인의 목소리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는 노래를 하는 가수라기보다 제 이야기를 담담히 말하는 화자, 즉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더 그런 맘이었던 거 같습니다. '엄마가 해준말', '소리'라는 두 곡에서는 그냥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누고 싶다는 맘으로 노래했거든요. 노래는 잘하지 못해도 이야기는 잘 전달할 수 있는 목소리일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은 해봅니다.
'가족의 힘'이라는 곡을 추천드리고 싶은데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 만든 노래인데 얼마 전 고등학교 기술가정 교과서에도 수록되었다고 들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애착이 가는 노래입니다.
11. '슈퍼스타K'부터 최근 '싱어게인', '포커스'까지 무수히 많은 음악 프로그램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음악감독은 주로 어떤 일을 하는지, 개인적으로 프로그램을 맡았을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이 무엇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작진, 참가자들과 함께 무대를 만드는 게 주 업무인데요. 선곡을 하고 편곡하고 가수와 연주자들과 함께 연습을 진행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프로그램의 성격을 파악하고 TV로 보시는 시청자분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공감할 수 있는 음악과 무대를 만들어야 하는 부분을 많이 고민하는 편입니다.
12. 저작권이 등록된 작품만 300여 편 이상이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끊임없이 창작할 수 있는 동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한테는 일이 음악이기도 하고 역설적으로 쉼이 음악이기도 한 거 같습니다. 좋은 음악을 찾아서 듣고 감동받고 이런 작품을 나도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맘이 아직 남아 있어서 조금 덜 지치면서 다행히 아직 음악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13. 코로나19로 많은 것이 단절된 상황에서, 특히 '음악'을 하는 이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매우 컸을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활동 중인 음악인으로서 가장 크게 체감한 변화가 있다면요.
일단 콘서트와 뮤지컬 공연 업계의 위축이 크게 와닿습니다. 콘서트를 즐기시던 관객분들이나 관계자분들 모두 힘들어하는 게 느껴지거든요. 연주하고 노래하던 무대가 사라지는 건 음악인들에겐 생업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어서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고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14.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주세요.
모두 코로나로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는 걸, 언젠가는 이 상황을 함께 지나 추억할 날이 올 거라는 걸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