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켓 시위도, 철야 농성도 무력…필리버스터 카드 꺼내
민주당의 공수처법 강행은 일찌감치 예고됐다. 지난달 25일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에서 합의가 무산된 이후 즉각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에 돌입했다. 더 이상 야당의 '시간끌기' 전략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판단에서다.
국민의힘은 지난 7일 공수처법 개정안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 회의장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며 총력 저지에 나섰다. 법사위 소위 논의 과정에서 안건조정위원회 회부 등 지연 전략을 썼지만 수적 우위를 앞세운 민주당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본청 로텐더홀에서 철야농성을 진행하던 국민의힘은 9일 본회의가 열리자 곧장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판사 출신의 4선 중진 김기현 의원이 첫 주자로 나섰다. 정기국회 회기가 이날 자정에 끝나면서 김 의원은 저녁 9시쯤부터 자정까지 약 3시간 동안 시한부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특히 지난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과정에서 당시 민주당 의원들의 비토권 관련 발언을 소개하며 모순을 지적했다. 김 의원은 여당 법사위 소속 김종민, 송기헌, 박주민 의원 등이 당시 '공수처장 추천 과정에서 비토권이 부여돼 있어 야당의 우려는 기우'라고 했던 발언을 자료 화면으로 제시했다. 야당에 비토권이 보장돼 있다고 설득해놓고선 이제 와서 그 권한마저 뺏기 위해 개정안을 강행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연설 도중 민주당 측에서 야유가 나오자 김 의원은 "오늘은 시간이 많다"며 말할 시간을 주겠다며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직무배제' 명령을 내리면서 정면 충돌한 사태에 대해서도 현 정권이 자신들의 비리를 막기 위해 윤 총장을 탄압하고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이 추 장관에게 물어보라고 호응하자 김 의원은 "물어볼 곳에 물어봐야죠. 또 '소설 쓰시네'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추 장관을 비꼬기도 했다.
공수처법 개정안 통과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국민의힘은 향후 대응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이변이 없는 한 10일 오후 2시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은 단독으로 공수처법을 통과시킬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은 이날 본회의 직전과 직후 각각 의원총회를 열고 원내 의원들 의견을 수렴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자정 본회의 종료 직후 열린 의총에서 "내일과 모레도 법안 상정을 앞두고 있어서 필리버스터 명단과 순서 등을 논의했다"며 "일단 우리가 꼭 막아야 하는 법안 3건에 대해서만 필리버스터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선 공수처법의 통과 이후엔 여론전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이 때문에 김종인 비대위 체제 이후 자제해왔던 장외투쟁과 1인 시위 등이 거론된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외투쟁 가능성에 대해 "그런 것도 상의하고 있다. 전국에서 1인 시위를 한다든지 등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일단 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문재인 정권 폭정 종식을 위한 정당·시민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무소속 홍준표, 윤상현 의원과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 등의 참석이 예상되는 가운데 무소속 세력 및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범야권 연대를 구상 중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코로나19 재확산 사태 속에서 장외투쟁을 강행할 경우,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인구가 밀집된 수도권에선 코로나19 확산 위험이 높아 광화문 집회 등은 사실상 어렵다는 관측이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과 문제를 놓고 당내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김 위원장은 최근 두 전직 대통령 구속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검토했지만 당내 반발에 직면했다. 지난 8일 당내 3선 의원들 10여명은 김 위원장을 직접 찾아가 대국민 사과에 우려를 전달했고, 서병수‧배현진 의원 등도 페이스북을 통해 반대 입장을 보였다.
대국민 사과 일정을 당초 국회의 박 전 대통령 탄핵 의결 4주년인 9일로 잡았던 김 위원장은 반발을 고려해 정기국회 이후로 연기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원내 지도부 관계자는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공수처법은 거대 여당 의석수에서 밀려 원내에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며 "지금 민주당이 밀어붙이겠지만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 유일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