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와 노동계 모두 개악안이라며 반발하는 가운데, ILO 핵심협약도 올해 안에 비준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해고자·실업자도 기업별 노조 가입 허용…勞 지적한 독소조항 일부 삭제
이번 노조3법 개정에서 가장 주목받은 지점은 해고자·실업자의 노조할 권리에 관한 부분이다.
기존 노조법은 제2조 4호 라목에서 '근로자가 아닌 자'는 노조에 가입할 수 없도록 막고, '해고자가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한 경우 중앙노동위원회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는 근로자가 아닌 자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단서조항을 달고 있었다.
이 단서조항을 근거로 뒤집어 해석하면, 노동자가 부당해고로 다투는 경우가 아니면 해고자는 기업별 노조에 가입할 수 없다는 것이 기존의 대법원 판례였다.
개정안에는 문제의 단서조항을 삭제해 해고자, 실업자도 기업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노조 임원, 대의원은 사업장에 종사하는 조합원만 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이처럼 해고자, 실업자의 기업별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대신, 정부가 제출했던 개정안에는 사업장에서 근무하지 않는 비종사자 조합원이 사업장에 함부로 출입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사실상 해고자 등 비종사자 조합원이 사측 동의를 받아 노조 활동을 하도록 한 셈인데, 이 날 새벽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관련 내용을 삭제된 수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와 함께 노동계가 정부안의 독소조항으로 지적했던, 쟁의행위 중 사업장 내 생산, 주요 업무 시설 점거를 금지하는 조항도 환노위 논의과정에서 빠졌다.
아울러 노조 가입이 가능한 공무원의 범위에서 직급 기준을 삭제해 5급 이상 고위 공무원도 원칙적으로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됐고, 소방공무원도 노조 가입 대상에 포함됐다.
이 외에도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2년에서 최장 3년으로 연장됐고,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 금지 규정을 삭제한 대신 근로시간 면제(타임오프) 한도를 초과하는 단협은 무효로 규정했다.
이번 법 개정에 대해 경영계는 과도하게 노동자에 유리한 법 개정이라며 경영권을 방어할 보완입법을 요구하고 있다.
앞서 정부가 제출했던 개정안만 해도 친(親)노동적인데, 환노위에서 여당이 노조법 개정을 강행하면서 노동계의 주장을 받아들여 일부 조항을 삭제한 것은 과도하다는 주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이준희 노사관계법제팀장은 "이번 노조법 국회 심의과정에서 경영계 요청 사항은 전혀 반영되지 않고 노동계 요구사항만 반영된 것은 유감스럽다"며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쟁의행위 중 사업장 점거금지 등을 담은 보완입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노동계는 ILO와 유럽연합(EU)이 지적한 핵심 항목인 노조할 권리에 관한 조항들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비판지점은 '근로자의 정의'를 좁게 정의한 노조법 2조를 수정하지도 않았고, '근로자가 아닌 자'의 노조 가입을 막은 2조 4호 라목 전체를 삭제하지도 않은 대신 단서조항만 뺐다는 점이다.
현행 노조법 2조에서는 간접고용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등을 노동자로 규정하지 않고 있어서 이번 법 개정에도 2조 4호 라목에 발목이 잡혀 여전히 이들의 노조할 권리는 보장받을 수 없다.
이에 대해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행정당국이 노동자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며 2조 4호 라목 전체를 삭제하고, 노동자가 결사의 자유 영역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노조법 2조를 개정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또 노조의 임원, 대의원 자격에 대한 제한을 두는 것 자체가 ILO 협약 87호 2조를 위반한 것으로 해석돼 역시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가 관련 조항을 폐지하라고 권고했지만, 이번 법 개정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가 권고했던, 행정관청이 노조 설립신고 반려할 수 있도록 한 12조 역시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남았다.
여전히 비종사자 조합원의 노조활동 범위를 사용자의 효율적인 사업 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제한하는 등 해고자, 실업자의 노조 활동이 방해받을 여지도 남았다.
이처럼 노조할 권리에 관한 핵심 조항들은 사실상 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한국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더라도 국제사회로부터 '추가로 노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할 가능성도 남아있다.
민주노총 류미경 국제국장은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와 유럽연합이 명시적으로 협약에 위배된다 지적했던 조항들은 전혀 개정되지 않았다"며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지키고, 자유로운 노조 설립과 임원 선출을 보장하도록 해야 국제 기준에 부합한 법 개정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여곡절 끝에 노조3법이 개정됐지만, 정작 이번 법 개정의 원동력이었던 ILO 핵심협약은 올해 안에 비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ILO 핵심협약 비준 동의안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도 통과하지 못했는데, 외통위의 올해 일정은 모두 마무리됐다.
그동안 환노위의 노조법 개정 상황에 따라 외통위가 따로 일정을 마련해 추가 논의를 진행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환노위에서 노조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는 과정에서 국민의힘이 불참한 채 민주당이 수정안을 단독 처리하면서 논란을 빚었다.
국민의힘 외통위 관계자는 "ILO 협약 비준에 관한 일정에 대해서는 아직 여야 간에 논의된 것이 없다"며 "노조법이 통과됐다고 해서 반드시 동의안이 통과돼야 하는 것이 아니고, 엄밀히 말해 분리해서 볼 수 있는 사안이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현재진행형인 EU와의 분쟁해결절차다. EU는 한국 정부가 ILO 핵심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기로 한 FTA 규정을 어겼다고 주장했고, 이 때문에 양국은 '분쟁 해결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와 관련해 소집된 전문가 패널의 최종 보고서가 이 달 안에 발간될 예정인데,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에 대해 핵심협약 비준 등을 권고, 조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EU는 전문가 패널의 질의에 대해 '기타 적절한 대응책'을 거론하며 직접적인 무역 보복 조치가 아니라도 다양 한 방식의 간접적인 불이익 조치를 내릴 수 있다고 공식 답변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와 국회가 ILO 핵심협약 비준을 목표로 관련 노조법을 실제로 개정한 것이 보고서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