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경제 3법'본회의 처리 목전…재계 '당혹·'반발

감사 선임시 3%룰 완화·,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공정위 전속고발권 유지로 궤도 수정
박용만 상의회장 "정치적 처리 당혹"긴급회견

국회 본회의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국회의 공정경제 3법 통과가 본회의 절차만을 남겨뒀다. 국회상임위를 통과하면서 재계 등의 반발을 고려해 이른바 ‘3%룰’ 등 상법개정안의 핵심 내용이 당초 정부안 보다 완화됐고 폐지하려했던 공정거래법의 전속고발제는 유지됐다. 정부여당은 경제민주화의 핵심으로 밀어붙였지만 재계의 우려는 더 커졌다.

공정경제 3법은 상법 일부 개정안·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말한다. 지난 8월 2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뒤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를 앞두고 있다.

대주주 견제 기능 강화, 대기업집단의 부당한 경제력 남용 근절, 금융그룹의 재무 건전성 확보 등을 목적으로 입법이 추진됐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으로 제기되면서 그동안 여러 차례 입법이 시도됐다. 하지만 경영권 침해, 규제 강화 등을 이유로 재계 등의 반대 목소리도 높아 입법이 무산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상임위에서 의결된 만큼 공정경제 3법은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전망이다.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렸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상법 개정안,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및 다중대표 소송제 도입…3%25룰은 완화

상법개정안의 핵심은 감사위원 분리선출제의 도입이 꼽힌다. 현행 감사위원 선임은 모든 이사를 일괄 선출한 뒤 그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임하고 있다. 이로 인해 회사를 감시해야 하는 감사가 지배주주의 영향력 안에 있어 감사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이번에 개정된 상법은 감사위원 중 1명 이상을 이사와 분리해 선출하도록 했다. 또 이 경우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3%만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이른바 ‘3%룰’이다.

하지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모두 더해 3%까지만 인정하기로 했던 당초 정부 개정안에서 한발 물러났다. 사외이사인 감사위원 선출에 한해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산하지 않고 의결권을 ‘각각 3%씩’으로 인정하도록 했다.

이럴 경우 감사선임에 지배주주의 의사가 더 많이 관철될 수 있다. 경영계 불만이 수정안에 상당 부분 반영된 것이지만 당초 입법취지인 대주주 견제가 제대로 될지 의문시된다.

이번 상법 개정안의 또 하나의 핵심은 다중 대표소송제이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신설됐다. 현행법상 재벌 자회사의 불법행위로 모회사가 손해를 볼 때 일반주주가 사측에 책임을 물을 마땅한 법적 수단이 없었다.

개정안에서는 비상장회사의 경우 지분 1% 이상을 보유한 주주에게, 상장회사는 0.5% 이상 지분을 6개월간 보유한 주주에게 소송 제기 자격을 주도록 했다.

하지만 당초 정부안의 지분 요건이 상장사 0.01%, 비상장사 1%였던 점을 보면 소송자격을 더 까다롭게 해서 원안보다 완화한 것으로 보인다. 경영계의 반발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유지…사익편취 규제대상 강화

전속고발제는 가격 담합, 공급제한 등 경성담합에 대해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 검찰이 수사, 기소를 할수 있는 제도이다. 1980년도에 고발권 남용을 막아 기업활동을 지원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공정위가 대기업 담합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지적에 따라 이번에 법 개정이 추진됐다.

그러나 공정거래법 개정안 국회 상임위 통과 과정에서 전속고발권 폐지 조항이 빠지면서 공정경제 사건은 앞으로도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수사에 나설 수 있고, 시민단체나 기업은 관련 사안을 고소·고발할 수 없게 됐다.

무분별한 고발이 이뤄질 경우 기업경영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재계의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애초 전속고발권 폐지에 반대하다가 관계 부처 논의 끝에 폐지안을 내놨던 공정위로서는 공식적으로는 아쉽다는 반응이지만 내심 반기는 분위기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다른 한 축인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대상 확대는 원안대로 통과하면서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망에 오를 회사는 많이 늘어날 전망이다.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 기준은 현행 총수일가 지분 상장 30%·비상장 20% 이상에서 상장·비상장사 모두 20%로 일원화하고 이들 회사가 지분을 50% 넘게 보유한 자회사도 규제 범위에 들어간다.

재계에선 삼성생명과 SK,현대글로비스 등이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에 포함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해당 기업들이 이 규제를 피하려면 총수는 기본 보유지분을 팔아야 하고 지주사는 자회사 지분을 더 많이 사들여야 한다. 기업으로서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과징금도 2배로 늘어난다. 개정안에 따르면 담합에 대한 과징금은 관련 매출액의 10%에서 20%로, 시장지배력 남용행위는 3%에서 6%로, 불공정거래행위는 2%에서 4%로 상향된다.

대기업 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보유 허용은 별도로 추진되어 왔으나 이날 공정경제 3법과 함께 상임위를 통과했다.

일반지주회사가 보유한 CVC는 자기자본의 200% 이내 차입이 가능하며, 펀드 조성시 총수일가, 계열회사 중 금융회사의 출자는 받을 수 없다. 총수일가 관련 기업, 계열회사, 대기업집단에는 투자할 수 없다.

CVC 투자금을 회수하는 '엑시트' 단계에서 지분·채권을 총수일가나 지주회사 체제 밖 계열사에 매각하지 못 하게 하는 조항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추가됐다.

CVC 관련 행위 금지조항을 어겼을 경우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형벌규정도 새로 마련됐다.

◇ 금융그룹감독법…삼성 현대차 등 6개그룹 당국 관리

금융그룹감독법안은 '금융복합기업집단의 감독에 관한 법률'로 이름이 바뀌어 통과됐다. 여수신, 금융투자, 보험 중 2개 이상의 금융사를 운영하는 자산 5조원 이상의 금융그룹을 당국이 관리 감독하는 것이 골자다.

이에 따라 삼성, 현대차, 한화, 교보, 미래에셋, DB 등 6개 그룹이 감독을 받게 된다.

금융그룹에 속하는 금융사들은 건전한 경영과 위험 관리를 위해 금융그룹 수준의 내부 통제 정책과 위험 관리 정책을 공동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부통제와 위험관리를 위한 협의회와 기구를 설치해 운영해야 한다는 내용도 법안에 담겼다.

금융당국은 금융그룹의 부실화 예방 등을 위해 대표 금융회사에 그룹 차원의 경영개선 계획을 제출할 것을 명령할 수 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8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공정경제3법 상임위 의결 관련 긴급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대한상공회의소 제공)
◇ 법안 수정 요구한 경제계 긴급회견 등 반발

법안 수정을 줄기차게 요구해 온 경제단체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6개 경제단체는 "사실상 여당 단독으로 기습적으로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며 관련 상임위에서 재심의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감사위원 분리선임과 의결권 제한,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내부거래 규제 대상 확대, 지주회사 의무지분율 상향 등이 기업 경영체제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며 반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국내 기업이 해외 투기 자본의 공격에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투기 자본이 선임한 감사위원에 의해 영업 기밀과 핵심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계열사 간 정상적인 거래가 위축돼 경쟁력이 약화되고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며 신중한 검토를 주문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불만을 나타냈다.

박 회장은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경제 법안을 이렇게까지 정치적으로 처리해야 하는지 당혹감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지금이라도 개정 법안 상정을 유보하고, 기업들의 의견을 조금 더 반영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박 회장은 특히 상법 개정안 중 감사위원 분리선출 조항의 수정이 필요하다면서 "감사위원회 효율성을 높이는 문제와 이사회 이사 진출 문제는 분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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