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대북 전략에서 중국을 배제했던 트럼프 행정부의 퇴임을 앞두고 중국이 우리나라에 대한 적극적인 접근에 나서는 것과 맞물려 있다.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최근 방한 기간에 "한반도의 운명은 남북 양측의 손에 주어야 한다"면서 우리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중국의 지지 입장을 재확인했다.
왕이 부장은 특히 "아시아의 번영과 평화, 안정에 있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비핵화는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라며 이를 위한 미국과 중국의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 상황을 언급하며 "한중 양국은 100년 동안 없었던 변곡점에 처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측근으로 외교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이는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 재단 대표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지난달 27일 평화재단 주최 온라인 포럼에서 "(바이든 당선인이) 한반도 문제는 미국도 중국도 아닌 한반도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미국과 중국은 코로나19와 복잡한 자국내 사정으로 인해 잠시나마 휴전이 필요하다. 신냉전을 방불케 하는 트럼프 시절의 무제한적 경쟁을 지속하기 힘든 것이다.
양시위 중국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관영 글로벌타임스 인터뷰에서 "중국은 '투키디데스의 덫'에 뛰어들 생각이 없고 바이든도 마찬가지"라며 "불확실성이 남아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양국관계에 일시적으로 안정된 기간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는 규범에 입각한 다자주의 질서를 통해 동맹의 힘으로 중국을 포위·압박하되 기후변화, 보건, 북핵문제 등에선 중국과도 협력한다는 전략이다.
이는 북핵 문제가 미중 갈등을 격화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완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리 정부로선 미중 간 선택의 압박에서 다소나마 벗어나는 것은 물론, 중국을 활용한 북핵 문제 관리와 비핵화 협상의 동력 마련도 시도해볼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핵 문제에서 중국의 역할을 대북제재의 성실한 이행자 역할로만 한정하고 북미협상에는 배제해왔다. 그러던 차에 북핵 문제에 대한 안정적 관리자로 역할을 확대하는 것은 모두에게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으로선 중국이 맡게 될 그 이상의 '건설적 역할'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과 대북 정책이 아직 불투명하기 때문이지만, 어떤 경우에도 미중 간의 협력은 궁극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바이든 행정부가 이란 핵협정(JCPOA)을 북핵 해결의 모델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과 협력할 공간은 충분하다. 이란 핵협정은 중국 등이 참여하는 다자주의 해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최근 이스라엘의 소행으로 보이는 이란 핵과학자 암살 사건의 여파로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