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리씨의 선택은 여전히 '제도 밖' 출산에 냉랭한 한국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왔다. 전통적 가족상이 깨지는 데 대한 우려도 나오지만,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며 반기는 여성들도 많다. 결혼은 삶의 필수 불가결한 과제라는 시각이 깔려있는 '미혼'(未婚)이 아니라,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한 '비혼'이란 개념 역시 점차 익숙한 용어가 되어가는 중이다. CBS노컷뉴스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걷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모든 출생은 이기적"…"비혼 가정 우려는 차별적 시선 내포한 것"
"용기 있는 결정이다. 출산이란 무엇이고, 누구에게 결정권이 있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지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대학원 시절부터 '이성애 연애'만을 정상으로 간주하는 사회에 반기를 들고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역설하는 잡지 <계간홀로>를 7년간 발행해온 이진송(32) 작가는 사유리씨의 출산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 작가는 "'주변에서도 '결혼은 싫은데 아기는 낳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좀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새삼스레 다시 대화를 했다"며 "정상 가족에 속하지 않고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출산하고, 사랑하며 양육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그는 '아빠 없는 아이가 잘 성장할 수 있겠느냐'며 비혼 출산을 '이기적 선택'이라 폄하하는 일부 시각에 대해 "모든 출생은 이기적"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작가는 "(결혼한 남녀커플이 이루는) 정상 가족 안에서 태어나면 아기에게 동의를 받고 낳나? 아기에게 모든 것을 완벽하게 지원하나?"라고 반문하며 "세상에 나쁜 아빠가 얼마나 많은가. 아빠는 진짜 필요하다기보다는 온 세상이 아빠가 필요하다고 주입하는 가운데 원래 (한부모 가정을) 차별하는 사람이 이를 구실로 삼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차별을 걱정하는 척하며 자신이 그 차별을 더 생산하는 셈"이라며 비혼모 지원 프로그램에서 잠깐 일했던 경험을 회상했다. 당시 아기들을 잠깐 맡겼던 외부 센터의 선생님이 '아빠 없는 아이들은 티가 난다'는 말을 한 것이다. "제가 '선생님, 제가 아빠 없이 컸으면 어쩌려고 그런 말을 하세요?'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당황하시더라고요."
팟캐스트 '비혼세'(비혼이 사는 세상)를 진행하며 독립출판 '아말페'를 운영하고 있는 또 다른 30대 여성 곽민지 작가 역시 "'아버지 없이 자라는 아이가 잘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말은 아버지 없는 모든 가정에 대한 모독"이라며 "우리 사회가 가부장적 질서 하에 남녀가 결합한 가정만을 정상 가정으로 인정하는 순간 그 밖의 가정을 포용하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개인은 자신이 태어난 가정을 디폴트로 생각하게 되어 있고, 사유리씨의 아이는 엄마와 자신의 관계를 기준으로 가족의 개념을 받아들일 텐데 거기에 결핍을 말하는 것은 무례하다"며 "아버지 없는 가정을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의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임신과 출산에 전혀 뜻을 두지 않고, 홀로 사는 '1인분의 삶'에 자족하는 여성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이같은 결정이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결과임을 강조한다.
곽 작가는 "비혼을 (특별히) 선택했다기 보다 살면서 자연스럽게 '이변이 없는 한 내가 결혼을 택하지는 않겠다'고 느꼈다"며 "나에겐 자연스러웠던 선택이 너무 특이하고 급진적인 것으로 비치고 비혼자의 자연스러운 삶이 미디어에 많이 나오지 않는 것이 신기해 팟캐스트도 만들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제 운신의 폭, 불규칙한 일상 등 기본적으로 누군가와 같이 동거하는 생활이 제게 적합한 삶의 방식은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라며 "사랑의 결실이 결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결혼으로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또 다른 관계를 맺게 하면서 관계에 영향을 주는 게 불편하다 생각되는 지점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발행 초기 300부 남짓을 찍었던 <계간홀로>의 수요가 1300부까지 증가한 것을 놓고 "인식이 많이 바뀐 걸 느낀다"면서도 "여전히 연애와 결혼의 이데올로기가 너무 강력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연애·결혼을) '하는 것'을 디폴트로 설정하고 '하지 않음'을 낙오, 탈락, 실패, 잉여로 규정하는 목소리에 저항하고 싶었다"라며 "하는 것만큼이나 하지 않음 역시 동등하고 독립된 선택이며, 어떤 '하지 않음'은 '해야 한다'는 폭력과 억압에 저항하는 정치적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들은 "아직까지 비혼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비혼이란 사실을 말하면 소외되기도 하고,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아 회원 중 소속 사실을 밝히지 않은 분들도 있다"며 "저희는 일반 동호회처럼 비혼이란 삶의 방식을 선택한 사람들이 모였을 뿐인데 마치 사회와 단절하려는 사람들처럼 보는 것 같아 아쉽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들은 "모임을 하는 동료들이 있어 고립에 대한 걱정이 해소됐고, 다양한 도전을 즐기며 살아가게 됐다"며 '지속가능한 비혼라이프'를 구체적으로 계획하게 됐다고 말한다. 인생을 함께할 동반자들이 생겨 삶이 한층 더 여유로워진 점, 함께 반찬을 만들고 혼자 살며 불편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점 등도 공동체의 순기능으로 꼽았다.
500여명이 넘는 비혼여성들이 가입돼 있는 경상도 비혼여성공동체 'WITH(Wolves In The Hell)' 또한 지역별 정기모임과 여행, 북스터디부터 페미니즘 행사와 여성 대상 태권도 클래스 등 다양한 활동을 함께 도모하고 있다.
위드(WITH) 공동대표 가온(활동가명)은 "여성들만이 모인 공간에서는 가부장제를 지워내고 새로운 사회가 형성되고 있다는 생각을 늘 한다. 일상에서 겪었던 성차별이나 여성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 위로하고 응원하기도 한다"며 "위드가 있어 힘이 되고 든든하다는 이야기를 공동체 내 사람들에게 많이 듣곤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비혼 출산가정뿐 아니라 동거인이 있는 '비혼 가구' 등 다양한 형태의 삶을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고 포용하려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비혼지향공동체 공덕동 하우스를 운영 중인 홍혜은 대표는 사유리씨의 비혼 출산 과정을 보며 한국 사회가 생각하는 '국민'의 얼굴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일하고 아이 키우기 행복한 나라'라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슬로건이 모두를 위한 것인 줄 알았다"며 "정작 비혼 출산이 불법은 아니지만, 지원대상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정부를 보며 '행복한 국민'의 얼굴로 누구를 상상하고 있는지가 미심쩍어졌다"고 비판했다.
이어 "비혼 여성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곧 제도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라며 "정상 혈연가족을 중심으로 한 경제, 복지 제도, 노동 환경에 이르기까지 전 사회적인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아이를 낳거나, 낳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을 오롯이 여성에게 쥐여주되 태어난 아이에게는 다방면의 지원을 해야 한다"며 "어떤 배경의 아이든 존중받고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현행제도로 포섭되지 않는 파트너십이 폭넓게 수용될 수 있도록 "결혼을 하지 않고도 가족을 이뤄 살 수 있고 서로의 보호자가 될 수 있도록 인정하는 생활동반자법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위드 가온 대표도 "평등한 관계를 기반으로 한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싶다"며 "정상 가족 규범을 토대로 지어진 사회에서 제도권 밖 여성 1인 가구들이 있을 곳이 필요했기에 비혼여성공동체도 존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더 나아가 '개인을 개인으로 보는 노력이 가장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곽 작가는 "우리나라는 유자녀기혼자가 아닌 사회구성원 모두를 '임시'로 바라본다. 그러다 보니 1인 가구를 위한 주택마련 혜택도 적고, 지인이나 돌봄 형태로 결합한 가정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짚었다.
아울러 "이런 시스템 자체가 차별적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1인 가구나, 비혼자, 혹은 우리 사회가 포용하지 않는 결혼의 형태에 대한 통계적 조사도 활발해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