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가족'이 뭔가요?"…사유리가 댕긴 '가족구성권' 확장 논의

자발적 비혼출산 선택한 사유리, '가족구성권 확장' 논의 촉발
전문가들 "한국사회, 가족 구성권 보장에 큰 진전 없어"
비혼모·동성 파트너십·장애인 공동체 등, 지원 사각지대
"민법·건강가정기본법 등 상위법 손질해야…'시민권' 보장 차원"
관련 개정안 번번이 폐기…최근 '가족 정의' 삭제 개정안 발의
여가부 등 관련기관 "'가족 구성권 확대' 논의 중"…이성애 중심 등은 한계

KBS 1TV '뉴스 9' 속 방송인 사유리 (사진=연합뉴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급하게 찾아서 결혼하는 것은 어려웠다. 한국에서는 모든 게 불법이다. 결혼한 사람만 시험관(시술)이 가능하다."

자발적 '비혼 출산'을 선택한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씨는 '아이를 낳을 권리'를 말했다. 그는 임신할 권리, 임신을 중단할 권리가 그 주체에게 있음을 보여줬다. 이는 '가족 구성권' 확대 논의와도 맞닿아 있다.

결혼과 혈연으로 맺어진 전통적 가족 제도로부터의 탈피는 '시민권' 보장의 연장선이다. 비혼모, 동성 파트너십, 장애인 공동체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의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가족구성권연구소 이유나 연구위원은 "가족을 구성할 권리, 자신이 원하는 가족과 함께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는 데에는 아직 큰 진전이 없다"고 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 "가족 구성 변하는데…법은 제자리걸음"

'가족 구성권' 확대는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다. 부부와 자녀로 이뤄진 '전통적인' 가족은 2045년 우리나라 전체 가족의 16%에 그칠 것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망도 나왔다.

한국사회가 규정해 온 이른바 '정상가족'의 범주 바깥에 있는 이들은 법·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다. 비혼모, 동성 파트너십 등은 '정상가족'을 전제로 만들어진 제도 탓에 임신·출산·양육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받지 못할 뿐 아니라 의료·주거·직장·연금 등의 영역에서 소외돼 있다.

현행 민법 779조는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만을 가족의 범위로 규정했다. 건강가정기본법 역시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정의한다.


가족 구성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상위법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박복순 위원은 "가족(구성)은 항상 유동적이고 변해가고 있는데 법은 고정적"이라며 "가족 다양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짚었다. 가족구성권연구소 이유나 연구위원은 "가족 범위를 확대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게 아니다"라며 "민법, 건강가정기본법 등 상위법에서 규정한 '가족' 정의가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하위법을 통해 정책 대상을 확대하려고 해도 (정부당국) 회의가 겉도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족을 고정·제한적으로 정의하는 법과 제도, 인식이 바뀌어야만 생활 동반자 관계, 파트너 관계에 대해 '시민권'을 보장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며 "대통령령이나 기타 정책 대상을 확대할 수도 있지만, (당국이) 이 같은 의지를 발휘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상위법(민법 등)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사진=방송인 사유리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 캡처)
◇ '정상가족' 중심 제도에 끼워 맞추기식…"우리도 가족입니다"

비혼모나 동성 파트너십, 장애인 공동체 등은 정부의 지원을 받으려 해도 기존의 '정상가족' 중심 제도에 간신히 끼워 맞춰질 뿐이다. 법·제도의 공백 탓이다.

사유리씨가 적용받을 수 있는 제도는 한부모 가족지원법 정책 등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소득 기준 등 경제력을 따져 지원하기 때문에 필요한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자발적 비혼모에게 파트너가 생겼을 때, 친권이나 양육권을 부여할지에 대해서도 현행법은 뚜렷한 답이 없다.

사유리씨 사례를 계기로 정자 기증을 통한 비혼 여성의 출산이 보다 쉬워지면, '보조생식술을 통해 태어난 동성 커플 등의 자녀는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뒤따른다.

성소수자 등 법적 혼인관계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도 전 영역에 걸쳐 차별당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지난 2월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은 한 동성 커플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 신청을 받아들였다가 돌연 취소했다. 건보공단은 "이들이 사실혼 관계여도 동성혼이 법률상 인정되지 않아 동성 커플의 피부양자 등록은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함께 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지만,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상대방이 아파도 의료조치에 대한 의사결정권 내지는 의료 정보마저 얻지 못한다. 육아휴직 등의 제도에도 접근할 수 없다.

(일러스트=연합뉴스)
◇ 정부, '가족구성권 확대' 논의…"인구정책적 관점 벗어나야"

지난 19대 국회 때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생활동반자법)'이 논의됐지만, 반대에 부딪혀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생활동반자법은 다양한 '동반자'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하며 결혼 없이도 서로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질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혼인과 동거의 중간 단계로서 법적인 결합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적 제도로 기능할 수 있는데, 보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었다"고 전했다.

최근 국회에는 현행법 명칭을 '가족정책기본법'으로 바꾸고 '건강 가정'이라는 표현과 전통적 가족의 정의를 삭제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됐다. 개정안은 "누구든지 가족 형태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 같은 국회 움직임과 함께,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가족 구성권을 확대하는 등의 내용의 '4차 기본계획'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가족부도 함께 계획을 수립하며 가족 구성권 확대를 논의하고 있다. 여가부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건강가정기본법 가족 개념에서 '가족 정의'를 삭제하는 개정안을 바탕으로 국회와 협의하고 있다"며 "국민들 인식 수준에 따라 생활 동반자, 사실혼 등으로 가족 개념을 확대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동성 파트너십 등 특정 관계를 지원하는 대책은 아직 논의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해외는 이미 기존의 혼인관계에서 탈피해 다양한 동반자 관계를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 1999년 결혼을 하지 않아도 이성·동성 관계없이 함께 생활하는 이들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시민연대계약(팍스·PACS) 제도를 도입했다. 미국은 '지역 파트너십', 독일은 '생활동반자 관계' 제도 등을 두고 있다.

가족구성권연구소 이유나 연구위원은 "(해외의 경우) 결혼했냐, 안 했냐. 결혼 제도 안에서 태어난 아이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이 필요한 대상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사회 보장'을 따진다"며 "결혼했다고 지원하고, 결혼하지 않은 가정이라고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식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가족 정책이 '출생률 제고'(생명 기술에 대한 접근권 확대)에 맞춰져 있다며 정부가 인구정책적 관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이유나 연구위원은 "정부의 현재 관점은 사람들이 실제 살아가고 있는 '관계'를 보장한다거나, 법적으로 가족(관계)을 맺지 않고 서로 돌보고 양육하는 관계를 포착해 그 관계에 대해 지원해주는 관점이 아니다"라며 "민법, 건강가정기본법 등 상위법 개정과 함께, (비혼모·한부모 가정 등의 경우) 가사 유지 활동에 대한 지원 정책 등 전반적인 정책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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