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수십명씩 참여한 계파 그룹들이 법안 처리를 공개 요구하고 나섰지만, 원내지도부 중심 '신중론'도 점차 목소리를 키워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기국회 회기가 3주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이낙연 대표가 최종적으로 어떤 결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더미래·민평련 각각 '지도부 압박'
당내 최대 계파로 꼽히는 '더좋은미래' 소속 의원 50여명은 18일 기자회견에서 "노동자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중대재해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산업재해는 특정 노동자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기업 내 위험관리 시스템 부재, 안전불감 조직문화가 복합 작용한 결과"라며 "제도적 안전조치가 설계되고 위반 시 형사처벌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그룹은 모두 국내 산재 사망사고가 연간 2천명, 하루 7명씩 발생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당론 추진에 소극적인 당 지도부를 넌지시 압박했다.
◇원내지도부·정책위는 '신중론'
반면 복수의 당 관계자는 이 법이 책임을 묻는 대상의 범위가 과도하게 넓다는 지적이 당 원내지도부, 정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이 '처벌'에 초점을 둔 중대재해법 제정 대신 '예방' 중심인 기존 산업안전보건법 강화로 갈음할 수 있다는 관측에 점차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아울러 최근에는 '이 법이 통과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재계·산업계 민원이 정부나 정책위 쪽을 통해서 전달되고 있다는 전언도 내부에서 흘러나온다.
기업 입장에선 당장 안전장치를 보강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드는 건 아니지만 사업주가 처벌 대상으로 적시됐다는 점이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고 한다.
시선은 결국 당 지도부에 쏠린다.
중대재해법과 산안법, 두 법안의 각론은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다듬겠지만 그 취지와 내용이 각각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낙연 대표는 두달 전 본회의장 연설에서 법안 처리를 촉구했고 최근까지 당론 채택에 관해 "어려운 문제가 아닐 것"이라고 했었으나, 지난 16일부터는 "상임위에 맡긴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를 두고 한 중진 의원은 사석에서 "이 대표 입장에서는 법 제정에 따라 어떤 결과가 나오든 본인이 책임져야 할 상황"이라며 "산재사고 패러다임 자체가 바뀔 수 있어 신중론을 고수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의당이 띄우고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화답한 법안에 끌려 가기보다는, 민주당이 주도권을 쥐고 당내에서 논의를 충분히 꾸려가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도 있다.
다만 굵직한 선거가 예고된 내년, 내후년에는 개혁 법안 처리에 부담이 더 커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말이 가까워져 오도록 이견 조율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정의당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중대재해법에 대한 민주당 지도부 입장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며 "어떻게 책임을 지고 연내 법안을 처리할 것인지 그 분명한 입장을 즉각 밝히길 촉구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