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 : 김종대 (연세대 객원교수)
■ 대담 : 정세랑 소설가
◇ 김종대> 여러분, 소설 장르 중에 SF소설이라고 들어보셨죠? 요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정세랑 작가님 오늘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정세랑> 안녕하세요.
◇ 김종대> SF장르가 요즘 굉장히 인기라고 합니다. 이 장르에 애착이 있으신 이유 여쭤봐도 될까요.
◆ 정세랑> 저는 SF랑 판타지를 둘 다 쓰고 있는데요. 보통 이런 장르문학의 경우 큰 비유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것 같아요.
◇ 김종대> 큰 비유.
◆ 정세랑> 작은 비유가 아니라 어떤 세계 조건 하나를 격하게 바꿔볼 수도 있고 시간을 옮겨볼 수도 있고 공간을 옮겨볼 수도 있고 점프의 폭이 굉장히 큰 문학이고 여러 가지 도구들이 있어서 더 매력을 느끼는 것 같고.
◇ 김종대> 그렇군요. 저희 코너의 공식질문이 있습니다. 항상 모든 출연자가 답해 주시는 질문인데요. 요즘 나를 가장 업시킨 뉴스 뭘까요.
◆ 정세랑> 미국이 기후협약에 다시 가입할 것이라는 뉴스가 저를 무척 업되게 했습니다.
◇ 김종대> 그렇군요. 1월 20일 새로운 대통령이 취입하고 바로 가입한다는 뉴스 같죠?
◆ 정세랑> 네네.
◇ 김종대> 그렇군요. 이 뉴스가 특별히 관심 있고 업된 이유가 뭡니까?
◆ 정세랑> 환경에 관심이 많은 편인 것 같아요. 소설을 쓰면서 청소년분들을 많이 만나는 기회가 있었는데 요즘 청소년들 혹은 그보다 어린 어린이 친구들이 기후우울증이 굉장히 심하더라고요.
◇ 김종대> 기후우울증.
◆ 정세랑> 어른들이 망쳐놓은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지 이런 두려움이 굉장히 큰 것 같아서 어른으로도 작가로도 좀 책임감을 느껴서 세계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나 이런 뉴스들에 좀 귀를 많이 기울이게 되더라고요.
◇ 김종대> 어린이들은 그렇게 우울증에 걸리는데 어른들은 별로 감이 없는 것 같아요.
◆ 정세랑> 그래서 정말 심각한 문제인 것 같아서 자꾸 환경소설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 김종대> 그렇군요. 조류에 대한 소식지도 받아보고 계시다고요.
◆ 정세랑> 네네.
◇ 김종대> 어떤 내용을 보십니까?
◆ 정세랑> 보통 전 세계의 조류협회나 혹은 애호가들이 인터넷에 많은 계정들을 운영하고 있어서 제가 다 찾아가서 직접 희귀한 새들을 볼 수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때 그분들이 올려주신 사진을 많이 보고 있었는데 조류 쪽에 계신 분들도 개체수가 급감한다고 걱정이 많으시더라고요.
◇ 김종대> 조류의 개체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그것도 어떤 기후위기와 관계가...
◆ 정세랑> 아무래도 기후위기가 원인이 아닐까. 살충제라든가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어서 콕 집어 말할 수 없지만 전반적으로 기후위기를 원인으로 생각하고 계시더라고요.
◇ 김종대> 그렇군요. 이렇게 새를 많이 관찰하신다면서요.
◆ 정세랑> 네. 멀리서, 방해 안 하고 멀리서 이렇게.
◇ 김종대> 어떤 느낌으로 보세요.
◆ 정세랑> 너무 신기하고 다양한 빛깔, 크기 여러 가지 요소들이 정말 사람이랑 너무 다르잖아요. 그런 것들 되게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 김종대> 어디 가서 보셨어요? 새 여행을 다니신다면서요.
◆ 정세랑> 올해는 많이 상황이 그래서 가지 못했고 재작년에 순천만에 다녔고 작년에 또 연천도 갔었는데.
◇ 김종대> 어땠어요?
◆ 정세랑> 너무 좋았어요. 일단 순천만은 새들도 새들이지만 그 습지가 펼쳐진 모습이 상상보다 더 좋더라고요.
◇ 김종대> 저도 가봤습니다. 거기에 새가 이렇게 다닐 때 이렇게 뭔가 좀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십니까? 어떤 느낌이세요?
◆ 정세랑> 그 발자국이 되게 고운 진흙에 막 찍힐 때 너무 아름다워서 사진으로 찍었는데 사진으로는 그 감흥이 잘 안 남더라고요, 역시. 눈으로 보는 게 제일 좋지 않나 싶고 여러 가지 종류의 새들을 본 다음에 조그만 도감 들고 가서 맞혀보는 거죠. 무늬가...
◇ 김종대> 이 새가 무슨 새냐.
◆ 정세랑> 네. 그래서 이렇게 맞힐 때도 있고 잘 모를 때도 있고 그렇게 다녀왔고. 연천은 사실 두루미를 보려고 간 거였는데 그때 멧돼지병이 돌아서 두루미 서식지까지 못 들어가고 대신 그 근처에서 황조롱이라든가 여러 가지 매의 종류를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거기에 고구려 성도 있는데 정말 멋지더라고요.
◇ 김종대> 새도 이렇게 좋아하시고 환경에도 굉장히 관심이 많다 보니까 친환경 인쇄술까지도 이야기하셨네요?
◆ 정세랑> 요새 좀 관심 있는 분야인데요. 제가 아무래도 제일 많이 생산하는 게 책이라서 어떻게 하면 책을 환경에 나쁜 영향이 없는 방식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전자책이 제일 좋을 것 같기는 한데 사람마다 전자책이 잘 읽히는 분들이 있고 종이책으로 읽어야 책을 잘 읽는 분들이 계시고 사람 몸마다 다른 것 같아서.
◇ 김종대> 저 같은 세대는 종이책이어야 책 같아요. 전자책은 책 같지가 않아요.
◆ 정세랑> 그런 게 여러 가지 꼭 책제품만 아니라 여러 조건 때문에 사람마다 선호하는 책의 형태가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종이책을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런 게 관심이 좀 가서.
◇ 김종대> 방법을 찾았나요?
◆ 정세랑> 여러 가지가 있더라고요. 지속 가능한 삼림을 계속 가꾸면서 만드는 종이들이 있고 재생지가 있고 아예 펄프에서 벗어나서 폐기된 어떤 농산물들로 만든 종이들도 있어요.
◇ 김종대> 그것도 가능한가요?
◆ 정세랑> 사탕수수가 펄프보다 더 건강하다고 하더라고요.
◇ 김종대> 그렇군요.
◆ 정세랑> 그런 것들도 알아보고 인쇄하는 잉크도 중금속이 있는가 하면 콩기름이 있고 여러 가지 종류의 기름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것들도 보고 본드. 책에 의외로 본드가 많이 쓰여서 이게...
◇ 김종대> 본드?
◆ 정세랑> 네, 그런 본드가 수용성이냐 지용성이냐에 따라 토양 오염에 굉장히 영향을 많이 끼친다 그러더라고요. 역시 수용성 본드를 쓸 수 있을까 이런 것들에 관심이 가서 어떻게 하면 제 책을 그런 식으로 만들 수 있을까.
너무 비용이 넘치면 또 출판사가 부담이 되잖아요. 그래서 어느 선까지 비용에 너무 크게 부담이 안 되면서 친환경적으로 인쇄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개인적으로 알아보고 있는데 재미있더라고요.
◇ 김종대> 재미있어요. 아니, 작가면 대부분 글 쓰는 데 관심을 가지시는데 굉장히 경계선이 없어 보이세요.
◆ 정세랑> 정보를 끌어모으는 걸 좋아하는 종류의 작가인 것 같아요.
◇ 김종대> 이것저것?
◆ 정세랑> 네.
◇ 김종대> 그러다 보면 또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 정세랑> 그렇죠, 이야기랑 연결이 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렇게 끌어모은 정보들이. 사실 그냥 관심 있는 분야들을 가리지 않고 다 몇 년에 걸쳐 축적해 놨다가 그것들 사이에서 어떤 연결점들이 생겨서 작품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 김종대> 그렇군요. 그럼 버리실 게 별로 없겠어요. 항상 다 많이 잡동사니라도 다 많이 넣으면 어느 날 갑자기 연결이 될 거 아니에요.
◆ 정세랑> 그렇죠, 그렇죠.
◇ 김종대> 그렇군요. 놀랍습니다. 우리 업터뷰 시간에 제 동생 종순이라고 있어요. AI, 인공지능 종순이인데요. 출연자들한테 5개의 질문을 드립니다. 그런데 이건 바로바로 즉답을 해 주셔야 됩니다. 답변시간은 30초 이내거든요. 일단 생각나는 대로 질문이 나오면 바로바로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MC 종순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묻는 질문에 빠르게 답해 주세요. 지구상에서 딱 한 마리의 동물만 구할 수 있다면 어떤 동물을 구하겠습니까?
◆ 정세랑> 오리.
-로맨스소설을 잘 쓰는 정세랑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사랑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 정세랑> 제인 오스틴의 책들이요.
-우리나라 정치인 중 SF소설 주인공으로 삼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있다면 누구인가요?
◆ 정세랑> 류호정 의원.
-모든 SNS,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끊어버리고 싶으셨던 적이 있나요.
◆ 정세랑> 있습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지금 뭘 하고 싶은가요?
◆ 정세랑> 책 읽고 싶어요.
◇ 김종대> 수고하셨습니다. 뭐 거침없이 답변하세요. 아주 단문으로 답변하셨는데요. 아니, 왜 오리를 구하고 싶습니까?
◆ 정세랑> 오리들... 제가 사실 박경리 선생님을 되게 좋아하는데 박경리 선생님 생전에 오리랑 거위 이렇게 키우셨던 거 알고 계신가요.
◇ 김종대> 어디 원주에 가셨을 때요?
◆ 정세랑> 네. 그걸 보고 저도 오리를 키우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아파트에 사니까 사실 키울 수 없죠. 저 좀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생각보다 되게 오래 살고 지능도 높고 사랑스러운 동물이더라고요.
◇ 김종대> 보건교사 안은영. 그 소설에도 오리가 등장하죠.
◆ 정세랑> 네네네. 오리에 대한 사랑으로 작품 속에 자주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 김종대> 사랑의 상징으로?
◆ 정세랑> 그냥 이웃한 종의 느낌인 것 같아요.
◇ 김종대> 이웃한 종. 그렇군요. 류호정 의원. 그 경계를 많이 뛰어넘는 의원이죠? 그래서 SF소설의 주인공 같아 보이신 건가요.
◆ 정세랑> 시간여행자를 해도 어울릴 것 같은 분인 것 같아서.
◇ 김종대> 시간여행자. 사실 정치권이 그렇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옷차림을 가지고 어느 시대 국회의원이냐 이런 식으로.
◆ 정세랑> 미래에서 오신 것 같은.
◇ 김종대> 직관적으로 딱 떠오르셨습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저 같으면 떡볶이 먹고 싶은데.
◆ 정세랑> 떡볶이 너무 좋죠.
◇ 김종대> 책 읽는 거는 조금 그렇지 않습니까?
◆ 정세랑> 새 책을 너무 많이 사두고 못 읽은 책이 너무 많아서 아쉬운 것 같아요, 멸망한다면.
◇ 김종대> 그거 마저 다 읽고 죽을 거야.
◆ 정세랑> 꼭 읽어야지 했는데 미뤄둔 책들이 너무 많아서.
◇ 김종대> 모든 SNS 끊어버리고 싶었던 적 있다 이런 말씀하셨어요. 언제 그랬어요?
◆ 정세랑> 잘못된 정보들이 너무 잘 퍼져나갈 때가 있더라고요.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그런 순간에 굉장히 이로울 때도 있지만 해로울 때도 있구나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SNS들을 생각하면 약간 늘 부담스럽고 스트레스기는 한데 또 막 희귀혈액 이런 것을 찾을 때 SNS가 큰 도움이 된다 그러더라고요. 역시 양면이 있구나.
◇ 김종대> 도망간 사기꾼도 잡아냈대요.
◆ 정세랑> 정말요?
◇ 김종대> 지명수배자. 많은 작품이 주목을 받으셨어요. 특히 넷플릭스 드라마로 나와서 화제가 된 소설이 보건교사 안은영. 사실 조금밖에 못 읽었습니다. 그런데 초입부터 굉장히 재미있어요.
사람의 어떤 애증을 이렇게 잡아내는 능력을 가진 특별한 보건교사 안은영 이렇게 설정이 돼 있더라고요. 저는 이 설정이 그냥 굉장히 좀 충격적이랄까 파격적이랄까 이런 어떤 느낌을 받았는데 이 안은영 교사를 둘러싼 이야기 어떻게 전개됩니까?
◆ 정세랑> 안은영은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산 것들과 죽은 것들의 욕망을 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인 거예요.
◇ 김종대> 욕망을 눈으로 보는 재주.
◆ 정세랑> 욕망의 흔적들을 눈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욕망의 흔적들은 젤리처럼 이렇게 눈에 보이는 편이고 해롭지 않은 젤리들은 그냥 두고 해로운 젤리들을 없애면서 사실은 보건교사이면서 일종에 퇴마사로 투잡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죠.
◇ 김종대> 해로운 욕망을 없애는 방법이 BB총으로 막 쏘고...
◆ 정세랑> 그렇죠.
◇ 김종대> 또 플라스틱 칼로 막 자르고 이런 것 같아요. 그 설정도 참 재미있던데요.
◆ 정세랑> 그렇게 설정한 이유는 안은영이 쓰는 무기들이 가볍고 고장났을 때 교체가 쉽고 핸드백 속에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거나 플라스틱으로 된 장난감 같은 무기들을 줬고 선생님도 원래 학교에서 막 단소도 들고 다니시고 효자손도 들고 다니시고 갖가지 것들을 들고 다니시기 때문에 그렇게 부자연스럽지는 않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설정을 했고. 기본적으로는 학생들을 지키는 책임감 있는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 김종대> 그렇군요. 굉장히 흥미 있게 진행이 되더라고요. 바로 이런 특성 때문인가요? 이 소설이 영상, 드라마로 나오게 된 것 같네요. 이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 정세랑> 너무 즐거웠죠. 제 머릿속에만 있던 어떤 이미지들이 그대로 나온 것은 아니지만 여러 사람들의 해석을 거쳐 되게 구체화돼서 나왔기 때문에 일치하는 부분들도 있고 제가 상상하지 않았던 부분들도 있고 그래서 저도 되게 놀라고 즐거워하면서 본 것 같아요.
◇ 김종대> 아니, 소설 쓰시는 거하고 이런 시나리오 작업하는 거하고는 굉장히 같으면서도 다를 것 같거든요. 어떻던가요.
◆ 정세랑>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 김종대> 어떠셨어요?
◆ 정세랑> 소설 같은 경우 제가 정말 한 글자,쉼표, 마침표 다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드라마 같은 경우는 제가 뼈대 정도에 관여하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 김종대> 뼈대에.
◆ 정세랑> 큰 뼈대를 만드는 데 관여하고 그다음부터는 각 분야의 여러 분들이 참여해서 자기 전문성을 빛내는 그런 협업인 거죠. 그래서 제가 막연한 학교를 생각했다면 로케이션 담당자분은 구체적으로 어떤 시대에 세워진 어떤 건물 찾아야겠다라고 작업하시는 거잖아요.
◇ 김종대> 그렇군요.
◆ 정세랑> 그리고 안은영이 제가 생각하기에 가운 정도를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렸으면 정말 의상 담당자분은 안에 위에는 뭐 입고 밑에는 뭐 입고 신발은 뭐 신고를 다 상상하셔야 되는 그런 거죠.
◇ 김종대> 제2의 창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 정세랑> 그렇죠. 그래서 여러 전문가분들이 일하시는 걸 보는 게 되게 즐거웠고 그런 것들 컨트롤 제가 다할 수 없지만 오히려 컨트롤을 놨을 때 생기는 풍부함이 있는 것 같아서 또 경험해 보고 싶어요.
◇ 김종대> 그러니까 어떤 외골수 작가가 아니신 것 같아요. 막 넘나들면서 종합하고 같이 참여하고 이런 모습이 참 신선해 보입니다. 넷플릭스에 방영이 됐다고요? 이 책은 일단 재미도 있지만 작가의 말은 이 책을 쓸 때 오로지 쾌감을 위해서 썼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게 무슨 뜻입니까? 어떤 쾌감이죠?
◆ 정세랑> 저는 정말 읽을 때 페이지 터너라고 하잖아요. 계속계속 넘기게 되는 책들이 좀 저평가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늘 가지고 있었어요. 특히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고 스트레스가 많고 독서인구가 줄어드는 데는 모두 너무 피곤하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거든요.
그래서 책을 멀리하게 되는데 그럴 때는 오히려 페이지 터너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지 않을까? 즐겁기만 한 책에도 어떤 가치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해서 정말정말 즐겁고 정말 빠르고 쾌감으로 가득한 책을 쓰고 싶다라고 생각해서 쓴 책이 보건교사 안은영이었어요.
◇ 김종대> 그렇군요.
◆ 정세랑> 작가의 말에 그렇게 썼습니다.
◇ 김종대> 하기는 우리도 학교 다닐 때 아주 싫어하는 과목이 있어도 선생님이 재미있으면 수업이 너무 즐겁고 재미있으면 공부하게 되거든요. 말하자면 그런 효과로 책을 읽게 만드는 작가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 정세랑> 아무래도 그 재미라는 측면을 다른 이야기매체에 많이 뺏긴 것 같아서 재미를 추구하는 것 같아요.
◇ 김종대> 그렇군요. 책이 재미를 다시 소환하는 이제 어떤 문학의 사명을 또 말씀하고 계시네요. 자신이 책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이렇게 독특한 상상력으로 표현한다. 이런 것들이 우리같이 규범에 얽매인 세대들은 잘 상상이 안 가는 얘기거든요.
세계작가축제 폐막연설이라든가 여러 다른 기록을 보면 지금의 문명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이십니다. 어떤 비정상적인 소비, 성장 또 이런 어떤 우리 삶이 정상이냐를 끊임없이 물으시는 것 같아요. 기후 얘기, 지구온난화 이런 얘기들도 같은 맥락에서 하신 게 아닌가 생각이 들던데요.
◆ 정세랑> 지금처럼 쓰레기를 많이 만드는 시대는 사실 없었던 것 같아요. 예전... 문명 전체를 두고 상상하는 모습이 아무래도 SF나 판타지 작가들이 자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되게 통시적인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인데 그랬을 때 고대 사람들은 만들어봤자 조개 무덤 정도?
◇ 김종대> 그렇죠, 아주 친환경 제품들이죠.
◆ 정세랑> 산업혁명 전까지 물건들이 너무 귀했죠. 그래서 몇 세대나 내려서 물려쓰는 물건들이 있었고 그런 다음에 이제 지난 세기에 플라스틱이 등장하고 너무 많은 것들이 이제 나빠지기 시작했는데 물론 플라스틱이 구한 생명들도 굉장히 많을 거라 생각해요.
일회용 의료용품이라든가 모든 플라스틱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정말 15분 식사를 위해 400년 동안 안 썩는 물건을 만든다는 건 굉장히 부조리한 일이고 이 풍요가 아주 최근에 일어난 풍요라는 걸 우리가 좀 똑바로 직시해야 되지 않나.
이 시대가 지나고 나면 그때 그 사람들 왜 그랬지?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하게 쓰레기를 많이 만들었지라고 분명히 미래 세대가 저희를 원망할 것 같은 거예요. 아주 먼 얘기는 아닌 게 지금 지방에 쓰레기 무단 투기 뉴스가 정말 며칠에 한 번씩.
◇ 김종대> 쓰레기 뉴스가 많이 나오죠.
◆ 정세랑> 허락받지 않은 장소에 막 버리고 가버리는 경우도 많고 허락받은 장소도 이미 넘쳐서 어떻게 해야 될지 다들 고민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풍요는 풍요인데 이게 건강한 풍요인가 그것들에 대해서 이제 작가로서 독자분들과 같이 호흡해 보고 싶어요.
◇ 김종대> 쓰레기 같은 걸 소설에 앞으로 재료로 삼아서 뭔가 또 한번 상상력을 작동시키면 어떻겠습니까?
◆ 정세랑> 계속 그런 자료들 찾아보고 있어요. 쓰레기를 분해하는 곰팡이가 있다, 쓰레기를 먹는 애벌레가 있다 이런 것들이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어떤 발견들이 있는데 따라읽다 보면 재미있는 게 탄생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종대> 아이고, 기대하겠습니다. 혹시 어떤 보건교사 안은영처럼 본인이 갖고 싶은 초능력이 있다면 어떤 초능력.
◆ 정세랑> 저는 항상 순간이동인 것 같아요.
◇ 김종대> 순간이동.
◆ 정세랑> 여행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비행기를 타는 게 너무 많이 타는 거 요즈음 윤리적이지 않은 시대가 온 것 같아서.
◇ 김종대> 그렇습니다.
◆ 정세랑> 그래서 순간이동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 김종대> 역시 또 환경과 관련된 그런 말씀이시군요. 소설 목소리를 드릴게요에서 작가의 말 중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2020년은 SF 단편집을 내기에 완벽한 해. 그런데 진짜 와버린 2020년 어떤 해입니까?
◆ 정세랑> 생각보다 어두운 해가 돼버려서.
◇ 김종대> 어두운 해가.
◆ 정세랑> 정말 많은 분들이...
◇ 김종대> 짐작이 갑니다.
◆ 정세랑> 돌아가셨고 한국의 피해도 피해지만 정말 전 지구적으로 너무 큰 손실이 있었죠.
◇ 김종대> 더욱더 SF적이네요.
◆ 정세랑>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이 더 많이 못 쓴 분들도 있고 너무 슬프고 충격을 받아서 글을 많이 못 쓰신 분들도 있고 오히려 더 미래에 대한 혹은 지금 문명에 대한 걸 써야겠다 해서 더 많이 쓰신 분도 있고 올해는 그랬던 것 같아요.
◇ 김종대> 본인은 어느 경험일까요?
◆ 정세랑> 저는 많이 쓴 편에 속하는 것 같아요.
◇ 김종대> 그렇군요. 2020년 이후에 펼쳐질 세계 우리는 낙관해야 됩니까, 비관해야 됩니까?
◆ 정세랑> 사람들은 다 원래 익숙했던 것들로 돌아가려는 어떤 자연스러운 태도가 있는데 이제는 좀 익숙하지 않은 방향으로 성큼성큼 가야 하지 않을까.
◇ 김종대> 익숙하지 않은 방향. 어떤 방향?
◆ 정세랑> 예를 들면 석유나 석탄과 멀어진다거나.
◇ 김종대> 화석연료.
◆ 정세랑> 혹은 인구가 감소하는 게 문제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어쩌면 거대한 위기가 오면 기후위기가 크게 온다면 인구를 좀 감소하는 것도 사회체계를 바꿔서 감소된 인구에도 맞게 준비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사람마다 쓰는 에너지가 너무 많고 만드는 쓰레기도 너무 많기 때문에 항상 커지는 쪽으로만 지금 역사가 진행되어왔는데 이제는 조금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 쪽으로 움직일 때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좀 하고 있습니다.
◇ 김종대> 마구마구 팽창되고 성장되는 게 아니라 그 반대 방향.
◆ 정세랑> 정말 중요한 것들을 남기고 약간 자연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그쪽으로 움직여야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김종대> 아직까지 성장을 이데올로기로 삼는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불편하게 받아들이겠죠.
◆ 정세랑> 그렇죠. 제가 아주 철없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런데 지금 이대로는 한계가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 김종대> 그러니까 한계점으로 왔다고 보시는 것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이 팬데믹 시대 문학의 역할, 작가의 역할? 역시 또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어요.
◆ 정세랑> 익숙한 것들을 끝없이 의심하는 것 그게 작가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김종대> 아주 단호하고 명쾌한 결론이신데요. 그동안 우리가 익숙했던 것. 예컨대 어떤 것들?
◆ 정세랑> 풍요, 성장. 인류가 지구의 온 주인이다 이런 생각들.
◇ 김종대> 그렇죠.
◆ 정세랑> 사실 나눠 쓰는 행성이죠.
◇ 김종대> 이렇게 경쟁이 첨예화된 시대에 어릴 때부터 경쟁의 이데올로기를 주입받은 이런 어떤 미래 세대들이 과연 수용할까요? 받아들일 준비가 될까요.
◆ 정세랑> 오히려 미래 세대들은 지속되지 않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서 전환의 마음이 열려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김종대> 전환의 마음이 열려 있다. 오늘 우리 정세랑 작가님이 좋아하는 노래 한곡 들어볼까요. 어떤 곡 골라오셨나요?
◆ 정세랑> 오마이걸의 돌핀 골라왔습니다. 이 노래가 정말 돌고래에 대한 노래는 아니지만 돌고래가 되게 사랑스러운 비유로 나오고 듣다 보면 정말 뭔가 퐁퐁 뛰어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노래라서 실제로 돌고래를 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보고 싶은 마음에서 골라보았습니다.
◇ 김종대> 아이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SF소설에 대한 기준을 업시킨 정세랑 작가였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정세랑> 감사합니다. 좋은 겨울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