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조현병 아들 시인했지만…일가족 숨진 가평 화재 수사 난항

경찰, 부검과 감식에도 증거나 단서 하나도 안 나와
조현병 환자 "불 질렀다"고 했지만, 신빙성 떨어져

지난 6월 23일 오전 1시 13분쯤 가평군 가평읍의 한 샌드위치 패널로 된 1층짜리 단독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해 일가족 3명이 숨졌다. (사진=가평소방서 제공)
일가족 3명이 숨진 경기 가평 주택 화재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방화를 인정한 조현병 환자의 진술 외에 아무런 증거가 없어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 6월 23일 오전 1시 13분쯤 가평군 가평읍의 한 샌드위치 패널로 된 1층짜리 단독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인근 주민은 '펑'하는 소리와 함께 집안에서 불길이 일었다며 119에 곧바로 신고했다.

불은 주택 1동(158.12㎡)을 모두 태워 1억 3773만 원(소방서 추산)의 재산피해를 내고 약 40분 만에 꺼졌다.

집안에서는 A(82)씨 아들 B(51) 씨는 각각 방안에서, A씨의 부인 B(65)씨는 화장실에서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

소방 당국은 집에 함께 사는 막내아들 D(46)씨가 보이지 않아 약 3시간 동안 포크레인 등을 동원해 인명 수색을 벌였다.

그런데 오전 5시 38분쯤 현장 근처에서 흉기를 들고 횡설수설하던 D씨가 발견됐다.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경찰에 임의동행한 D씨는 환청 등 조현병 증상이 심해 조사가 불가능할 정도로 횡설수설해 정신병원에 입원 조치됐다.

◇경찰, 부검과 감식에도 증거나 단서 하나도 안 나와

가평경찰서는 D씨의 치료 경과를 보며 상태가 호전되면 진술 조사를 하기로 하고 그동안 화재와 일가족의 사망 원인, 범죄 혐의점 등을 찾는 데 주력했다.


경찰과 소방 등 관계기관의 합동감식에서는 화재 원인을 파악할 만한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 집이 뼈대만 남기고 완전히 불에 탔기 때문이다.

국립과학수사원의 부검 결과 시신들도 불에 심하게 훼손돼 외상이나 방화 등으로 인한 범죄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D씨가 당시 들고 있던 흉기에서는 혈흔 등이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이날 D씨가 입고 있었던 옷부터 신발까지 모두 감식을 맡겼지만, 화재와 관련된 흔적도 없었다. 심지어 인근에는 폐쇄회로(CC)TV와 목격자도 없었다.

◇조현병 환자 "불 질렀다"고 했지만, 신빙성 떨어져

경찰은 정신병원에 있는 D씨를 불러 조사하던 중 "내 방에서 라이터로 옷에 불을 붙인 뒤 던지고 나왔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D씨는 "벌레들이 엄청나게 달려들어 옷에 불을 붙여 던진 뒤 뛰쳐 나왔다"면서도 "부모가 그 불로 죽었는지는 모르겠다"고 진술했다.

(사진=자료사진)
경찰은 이에 다양한 소재의 옷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시연까지 했다. 하지만 불이 붙지 않아 D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또 합동감식에서는 발화점이 거실로 추정돼 방으로 지목한 D씨의 주장과도 달랐다.

D씨는 당시 흉기를 들고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귀신을 쫓아야 했다"고 말했다.

이에 정신질환자의 진술을 어떻게 봐야 할지도 고심에 빠진 경찰은 법학전문대학교 교수나 소방방재학과 교수 등 각계 전문가들을 통해 자문을 구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사람의 죄 없는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 되는 미란다원칙과 인권 수사를 위해서라도 함부로 기소 의견으로 송치할 수 없다"면서 "증거도 없는데 조현병 환자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진술만 가지고 살인범으로 몰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인천지법 형사15부(표극창 부장판사)는 지난 3일 체중이 100㎏을 넘는 건장한 아들을 살해했다고 자백한 70대 노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 현장에 제3자가 있었거나 노모가 다른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허위로 범행을 자백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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