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한미관계에 미칠 영향도 중요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와 비교하면 긍정적 변화가 예상되는 점에서 일단은 북미관계에 더 신경이 갈 수밖에 없다.
◇ '전략적 인내' 트라우마는 여전…급한 美 내부 사정도 대북접근 걸림돌
바이든 후보가 집권할 경우 대북접근에선 '전략적 인내' 미명 하에 북핵 문제를 사실상 방치했던 '오바마 3기'가 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바이든 후보가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이었고 현재 그를 둘러싼 외교안보 참모진도 당시 손발을 맞췄던 인사들이 주축이다.
국무장관으로 거론되는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과 수전 라이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그들이다.
우리 정부는 바이든 후보가 실패한 옛 전략을 답습할 이유가 없다면서, 그보다는 전향적 대북접근에 나섰던 '클린턴 3기'가 되기를 희망하지만 가능성은 미지수다.
바이든 후보는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톱다운' 정상외교를 비판하고 상향식 실무협상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해왔다.
아무래도 진행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고, 관료집단의 보수적 성격상 아예 실무단계에서 막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다 인권 문제를 중시하는 미국 민주당의 정책 기조도 북핵협상의 문턱을 높이는 요소다.
뿐만 아니라 바이든 후보로선 코로나19와 경제난, 인종갈등으로 분열된 미국을 치유하는 게 훨씬 급선무일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전례 없이 심각한 선거 후유증이 예상되는데다 정권 출범 후 대외정책 수립에 최소 6개월 이상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 문제의 우선순위는 더 밀려날 수도 있다.
제재와 코로나, 수해 등 3중고를 겪는 북한이 그만 참을성을 잃고 도발을 감행할 경우 바이든 시대의 북미관계는 시작도 해보기 전에 파탄 날 우려가 크다.
바이든 후보가 지난달 TV토론에서 김 위원장을 '폭력배'(thug)로 지칭한 것은 양측의 취약한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전망이 꼭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는 북핵을 둘러싼 환경과 조건이 '전략적 인내' 전략이 시작된 10년 전과는 크게 달라졌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간주되고 미사일 능력도 갈수록 고도화되는 마당에 언제까지나 무시 전략으로 일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반영하듯 바이든 참모진 내에서도 단계적 접근법이 제기되고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거명되는 제이크 설리반은 지난 9월 한 세미나에서 "장기적으로는 북한 비핵화가 목적이나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핵 확산을 감소시키는 데 외교적 노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후보가 최근 핵능력 축소를 조건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5일 CBS에 출연해 "바이든 캠프 내에 여전히 대북 강경파도 많지만, 북한의 핵 메뉴가 되게 다양해졌다. 그래서 한 방에 비핵화는 못 시킨다는 것이 내부에서 계속 제기되고 있다"며 "그렇다면 북한이 원하는 일종의 단계론이 (수용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정부 출신들이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파기된 이란 핵협정(JCPOA)을 주요 외교 치적으로 여기고 향후 북핵협상의 참고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도 긍정적 요소다.
따지고 보면 오바마 정부가 북핵 문제에 소홀했던 원인 중 하나도 이란 핵 협상과 중동 문제를 더욱 중시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한미 양국에서 진보색채의 정부가 동시 집권한 것이 가장 중요한 기회 요인이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1998년부터 클린턴 정부의 후반기인 2001년까지 3년을 제외하고 한미 양국은 진보와 보수 정권이 서로 엇갈렸다.
'코드'가 비교적 잘 맞는 정권끼리 보다 허심탄회한 소통과 협력을 통해 건설적 대북공조를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 후보의 대북 공약이 북핵 해결에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조하는 것은 트럼프 정부 때와 달리 한국의 '운전자' 입지를 넓혀준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5일 국회 답변에서 "우리 정부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미국의 대북전략이나 남북관계 개선 속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해 한국 역할이 더 중요해졌음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