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단체들 "공천 위해 당헌 졸속 개정한 민주당, 성(性)적폐"

4일 민주당사 앞 규탄회견…"피해자 대한 사과 없이 LTE 개정"
"대한민국 '미투' 이전으로 돌려" "어떤 책임있는 조치 취했나"
"성폭력 가해자들이 만든 선거…양심 있는 공당인가" 비판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당헌 개정을 통해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로 한 결정을 두고 여성단체들은 4일 "권력만을 좇는 파렴치한 정치의 온상"이라며 강력 규탄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와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불꽃페미액션 등 여성단체들은 이날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재보궐 선거는 민주당 소속 선출직 정치인들의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 만든 세금낭비 선거"라며 "민주당이 양심을 지닌 공당이라면 '유권자의 심판'을 운운하기 이전에 스스로 세운 기준에 비춰 자성하고 피해자의 편에 서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난 4월 부산의 오거돈 시장, 지난 7월 서울시 박원순 시장이 위력에 의한 성폭력 가해행위로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한 것은 자칭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 여당의 수치"라며 "그 수치를 모르고 시민들 앞에 성찰하고 개선하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피해자의 목소리에 모르쇠로 일관하다 돌연 전 당원 투표에 부치더니 당헌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고 후보를 공천하겠다 나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1일까지 이틀 동안 권리당원 투표를 진행했다. 민주당에 따르면, 전체 당원 80만 3959명 중 26.35%(21만 1804명)이 참여한 가운데 86.64%가 당헌 개정과 공천에 찬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 선거를 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당헌 96조 2항을 수정할 표면상 명분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공당이 세운 원칙을 스스로 부정한 '자기 모순'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낙연 대표는 이에 대해 서울·부산 시민과 피해여성들에게 거듭 사과의 뜻을 표하며 "유권자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공당의 책임 있는 자세다. 철저한 검증과 공정한 경선으로 가장 도덕적이고 유능한 후보를 찾아 유권자 앞에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여성단체들은 민주당이 피해자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는 뒷전으로 하고, 기득권을 지키는 데 급급한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신지예 대표는 "박원순 전 시장은 '모두에게 미안하다'는 짤막한 유서에 피해자를 뺀 모두에게 사과했고, 이낙연 대표는 보궐선거 투표를 하기 전 국민들에게 '마음을 담아 사과한다'고 말했다"며 "피해자는 '도대체 무엇에 대해 사과하신다는 뜻인가'라고 물었지만 민주당은 묵묵부답"이라고 말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이어 "대신 당헌당규 개정은 LTE급으로 개정했다. 이른바 '문재인 조항'으로 불리던 무공천 조항에 '단, 전 당원 투표를 통해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가 추가되며 후보를 내는 길이 열렸다"며 "26.35%는 당헌 개정 성사 투표율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제는 여론조사일 뿐이었다고 한다. 민주당은 선거란 국면을 앞두고 자기 야욕을 챙기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는 괴물로 변해버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대표는 "박원순은 죽지 않았다. 민주당이 박원순이 되어 전방위적 성폭력 가해를 용인하고, 묵인하고, 행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시간을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이전으로 돌려놓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의 황연주 사무국장 역시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않는 것만이 책임 있는 선택은 아니라 했다. 그렇다면 충남·부산·서울 등 세 자치단체장의 성범죄 이후 어떤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셨나"라며 "시민의 심판이 아니라 시민들로부터 면죄부를 받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또 급작스럽게 추진된 당원 투표를 두고 "당내 절차적 민주주의를 가장해 권력형 성폭력 문제를 지우고, 지도부가 져야 할 책임을 당원들에게 떠넘긴 것"이라며 "민주당 내 여성당원들, 여성운동에 헌신했던 여성의원들, 민주당이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이라며 표를 던졌던 여성 유권자들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이들은 현 정권의 출범에는 많은 여성 유권자들의 힘이 있었다며,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당내 근본적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불꽃페미액션 한솔 활동가는 "근 몇 년 사이 한 조직에서 3명의 단체장이 권력형 성폭력 가해자로 나왔다는 건 그 조직에 문제가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불러 일으킨다"며 "여당이기도 한 민주당은 당과 정부조직의 문화 및 구조를 바꾸는 데 앞장서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아울러 "현 정부와 여당의 자리는 국민이 촛불로 앉혀 준 자리다. 그 국민 안에는 자칭 '페미니스트 대통령'에게 촛불로, 표로 열렬한 지지를 보낸 많은 젊은 여성들이 있었다"며 "제발 지금이라도 책임 정치를 통해 공당의 품위를 회복하라. 자칭 '진보 정당'으로서 권력형 성폭력 문제를 조직 차원에서 성찰하고 개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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