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토함산 석탈해 사당지서 '신라·고려시대 유물' 다량 발견

동쪽 축대 앞에서 출토한 명문기와. (사진=경주시 제공)
경북 경주 토함산 석탈해 사당지에서 다량의 유물이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경주시와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토함산 석탈해 사당지 유적 긴급 발굴조사 과정에서 건물지 2동, 통일신라시대 암막새·평기와, 고려시대 명문기와·청자·분청사기·철제마·청동방울·토제마 등의 유물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삼국유사에는 서기 680년 문무왕 때에 석탈해의 뼈로 소상(塑像)을 만들어 토함산에 동악신으로 모시고 국사(國祀)를 끊이지 않고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연구원은 발견한 건물지는 고려후기에 마지막으로 중건한 건물 흔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심 건물지는 동서 2칸, 남북 1칸으로 기반층 상부에 황갈색 점토로 대지를 정지한 후 조성했다.

출토된 막새 및 명문 기와. (사진=경주시 제공)
중심 건물지의 서편에서는 토석축으로 벽체를 조성한 1칸의 부속 건물지도 발견했다.

청자와 분청사기는 화로나 잔 받침 등 제사 관련 기종이 많았다. 기와 중에는 '癸巳年 分施主 尹山 崔字 李堅'의 명문이 찍힌 기와가 다량 나왔다. 이 기와는 불국사 성보박물관 부지 발굴조사에서도 이미 다수 나왔었다.


시주자 중의 한 명인 이견(李堅)은 고려 후기 무인으로 1350년 종 2품인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에 임명됐고 1360년 홍건적 침입 당시 함종(咸從)전투에서 전사한 인물로 추정된다.

고려 후기 몽고족의 침입 이후 계사년(1353년)에 불국사와 함께 탈해 사당도 중건됐음을 알 수 있는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남쪽 축대 모습. (사진=경주시 제공)
또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경잡기' 등 지리지와 여러 문집들의 기록에서도 탈해 사당은 조선 전기까지 제사가 유지됐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

사당지 주변에는 조선시대 봉수대 관련 시설과 넓은 면적에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친 기와와 토기 파편이 흩어져 있었다.

사당 뿐 아니라 군사 관련 시설도 분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체계적인 조사와 성격 규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한편, 이번 발굴은 문화재청의 긴급 발굴조사 사업의 하나로 지난 9월부터 진행했다.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